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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Feb 27. 2023

자유로운 남자, 스케쥴러 여자

남편은 희망퇴직을 원했다

<자유로운 남자, 스케쥴러 여자>


  남편과 나는 평소에도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고 퇴근 후에는 그날 있었던 일이나 생각에 대해 나눈다. 누군가를 후원하거나 모임에 나가거나 신앙이나 가치관에 있어서 비슷한 결을 가졌다. 다른 대학을 나왔지만 같은 동아리 활동을 했고, 취향이나 관심사도 비슷하다. 양가 부모님도 한두 살 나이차에 대화가 잘 통하셔서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남편은 밖으로 나가 햇살 한 줌, 공기 한 뼘 쐬며 두 발로 어딘가를 딛고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타인의 시각이나 사회적 인정, 명품이나 치장에는 무관심하다. 새롭게 꿈꾸고 생각이 나면 일단 한번 해본다. 끊임없이 가지 치며 나아가는 우람한 나무처럼 자유롭게 뻗어간다. 반면 나는 돌다리도 열 번은 두드려봐야 성미가 찬다. 새로운 안건이 생기면 알아볼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가상 시나리오를 돌리고 변수에 대한 대응 마련까지 정리가 되어야 실행에 옮긴다. 마음을 먹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한번 시작한 일은 최대의 효율과 성실로 최선의 결과로 이루어낸다. 한결같은 토지처럼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멈추지 않는 마그마가 들끓고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남편은 희망퇴직을 원했다. 한 번에 몇 년 치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으니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여행도 다니고 재점검도 한 뒤에 무엇이든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그 '무엇이든'이라는 말이 걸렸다. '무엇이든'이라는 말속에 담긴 무책임함과 불안정함을 꼬집었다. 대략적으로라도 방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희망퇴직 이후는 실업인데, 실업 상태에서 나는 도저히 여행을 갈 수 없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이 답답했고, 남편은 내가 완벽한 답을 원한다며 불평했다. 


  이게 본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늘 같은 패턴으로 충돌이 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크게 다퉜다. 남편이 원하는 유럽으로 여행지를 택하는 조건으로 본인이 계획을 짜오기로 했다. 공항에서 남편의 계획표를 보곤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스케줄표가 텅텅 비어있던 것이다. 오고 가는 비행 편과 숙소,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표만 예약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 정보도 없고 계획도 없는 우리 여행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 카페에서 커플룩을 입은 채 남편에게 말했다.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찾는 게 힘들었다면 미리 말을 하지. 그럼 나라도 알아봤을 텐데."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이게 왜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다 찾았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


  남편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직접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이토록 다른 사람이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울고, 남편은 내내 여행 책자를 뒤적였다. 결혼 전에는 남편의 자유로움이 멋있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불안하다. 서로 양보하며 살아가지만 희망퇴직같이 큰 사건이 터지면 서로의 본성이 폭발하고 만다. 일을 그만둬야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다는 남편과 희망 퇴직금을 못 받더라도 안정적으로 이직을 꿈꾸는 나의 거리는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해결지향형인 나는 감정을 이성 뒤에 묶어 버렸다. 최대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효율적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검색을 총동원해 남편의 퇴직 후 삶과 우리 가족의 미래를 그려 보려 애썼다. 남편이 침묵할수록 믿기 어려웠고 혼자서라도 이 문제를 극복해야겠다는 결의에 불탔다.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았다. 누군가 툭 치면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들키기 싫은 모습인데, 지인에게 안부 전화라도 올까 이마가 지끈거렸다. 


  내가 찾은 답은 공기업이었다. 정년까지 보장해 주는 안정적인 직업. 나에게 아직 그런 머리가 남아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공기업이 지방에 있으니 운 좋게 합격하더라도 주말 가족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 인가?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면 당장 길거리에 나앉는 것 아닐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얼굴 보기 힘든 사이가 되는 건 아닐까, 극단의 상황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찌 됐든 뭐든 해봐야겠단 생각에 공기업 지원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으니 어느 정도 지식이 남아 있길 바랄 뿐이었다.

  대부분의 공기업이 서류 전형으로 최소 4개의 자격증을 요구했다. 컴퓨터 활용능력 1급, 한국사 1급, 영어 점수, 한국어 능력 시험이었다. 컴활은 2급이 있고, 한국어는 수능 때 언어는 만점을 받았으니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사도 마음 독하게 먹고 달달 외우고, 영어는 오랜만이라 자신이 없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었다. 각 시험별 공부방법과 시험 일정을 찾아보고, 걸리는 시간과 대략적인 공부 기간을 나눠 계획을 세웠다. 분야별 유명한 강의를 찾아 수업을 듣기까지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남편에게 희망퇴직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부터 내 공부는 시작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제때에 밥을 먹고 밤에 잠을 자며 말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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