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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Feb 28. 2023

최대의 변수, 아이들

"엄마 뭐 하는 거야? 엄마 어디 가?"

<최대의 변수, 아이들>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난 뒤에도 하늘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했다. 아이는 베란다 창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뭔가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급하게 나를 불렀다.

"엄마 이리 좀 와봐. 누가 하늘을 까만색으로 다 칠해놨어."

나는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깜짝 놀랐다는 듯이 대답했다.

"누가 그랬지? 저기 저 까만 까마귀나 까치 아냐? 나쁘다!"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아니야 안 나빠. 까만 하늘도 좋아."

까만 하늘이 좋다는 아이의 말에 궁금함이 샘솟는다.

"까만 하늘이 좋다고? 파란 하늘이 더 예쁘지 않아?"

그러자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계속 파랗기만 하면, 비가 언제 오는지 잘 모르잖아."


  아이의 말들을 적어 놓은 어록이 있다. 아이의 말을 듣다 보면 작은 눈망울에 그려진 세상과 조밀한 입을 통해 나오는 말속에서 지혜를 얻는다. 세상이 파랗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먹구름이 몰려와야 파란 하늘도 그리워하고 비가 올 걸 대비해 우산도 준비할 수 있다. 희망퇴직이란 것도 우리에게 먹구름과 같았다. 회사에 대한 불평과 육아에 대한 어려움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어떻게 퇴직이라는 무서운 말에 희망이라는 밝은 단어를 갖다 붙였는지 잔인한 부름이라 여겨졌다. 지칭어가 바뀌면 인식에 변화를 도모할 수야 있겠지만,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 아닌가. 누구의 인식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합성어란 말인가? 실제로 본인이 원해서 회사를 나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건 이미 '퇴사'라는 언어로 충분한데 퇴직에 희망을 붙여 암울한 낭떠러지로 밀어 넣다니.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고 머리가 지끈거려 잠을 잘 수 없어도 아침은 밝았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일어나 대변본 엉덩이를 내밀었고, 거실을 장난감으로 잔뜩 어질러 놓았다. 나는 입맛이 없어도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집을 치우고 일정을 챙겼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큰 사거리에서 한 순간 이대로 목숨을 잃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대로 내가 떠나면 어린아이들과 남편은 어떡한담. 나 혼자 괴로움에서 탈피하자고 타인의 짐을 더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나는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이라 지옥에는 가기 싫었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집안일을 끝내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컴활 1급  자격증부터 시작하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머리에 쏙쏙 들어오던 것들이 이제는 이마에서 튕겨져 나갔다. 괴로움에 압도된 두뇌를 통과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했다. 반복만이 살길이라는 각오로 틈나는 대로 공부를 이어갔다. 내가 공부에 매달릴수록 집안일은 멈춰버렸고 아이들은 방치됐다. 첫째의 방학 계획표는 무너져서 이미 진도표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스스로 한다고 해도 엄마의 도움 없이 흡수하는 량은 평소에 훨씬 못 미쳤다. 열 살이 된 첫째는 2학년에 했던 학습 중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3학년 진학을 위한 필수 기초를 다지고 있다. 아이의 흐름과 효과적인 학습법을 알고 있는 내게 그런 진도표를 짜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주도 학습으로 이어갈 수 있다. 나는 예전에 과외도 했었고 대학교 4학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성적이 좋아서 총장 초청 장학생 간담회에 부모님을 모셔오기도 했다. 아이 맞춤의 집중력 향상과 학습 계획을 짜고 옆에서 지도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주고 아이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들 때 뿌듯함을 누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멈춰 버렸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내 뒤에서 아이는 블록을 쌓고 자동차 놀이를 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려고 하면 무시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한 코딩 로봇을 가르쳐주려고 구입했는데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아이들은 꼭 내 곁에 와서 놀이를 했다. 다른 방은 비워두고 내 의자 뒤에 붙어 엄마가 뭐 하는지 쳐다보며 궁금해했다.


 "엄마 뭐 하는 거야? 엄마 어디 가?"


  아이들이 불안해할까 봐 퇴직에 대한 이야기나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느끼는 것 같았다. 내 책상엔 애정하는 책들이 치워졌고, 글쓰기 키보드 대신 일반 업무용 키보드가 올려졌다. 무슨 일이든 하게 되면 아이들을 이렇게 곁에 두고 키우긴 어려울 것이다. 돕는 손길이 필요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학원 몇 개는 더 보내야 한다. 아이들이 알아서 잘 자라주기를, 훌륭한 돕는 손길이 구해 지기를 바랄 뿐이다.



  남편과 대화는 한숨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이 났다. 남편의 자유로움과 나의 계획은 융합되지 않았다. 서로의 말이 다른 언어처럼 들렸다. 이래서 이혼 가정이 생기는구나, 하는 잔인한 생각도 들었다. 친한 친구를 잃은 기분이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토록 남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퇴직 이후의 방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남편을 의지하기가 힘들었다. 남편은 내가 100%의 계획을 원한다며 자신의 의견은 다 무시당한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어떤 부분을 보고 결혼을 선택했지? 남편이 돈벌이를 하지 못하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남편으로서의 직무를 저버리는 것일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10년이 넘게 가족을 먹여 살리고 우리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 준 남편이 점점 가엾게 느껴졌다. 새벽에 일어나 달을 보며 집에 들어오는 삶을 누가 좋아서 할까. 상사에게 고통받고 일에 지쳐 집에 왔는데 아내와 대화까지 단절되면 어디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이해하지 못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준 유일한 곳에서 젊은 시절을 다 바쳤는데 한순간에 버림받고 새로운 길이 없다고 생각될 때, 모두가 자신을 외면하고 자신의 무가치함과 무능력함에 화가 나고 부정하고 싶을 때 삶을 외면하고 싶은 충분한 동기가 생긴다.


  남편은 대기업 연구원이다. 실력과 가치를 인정받아 입사했고, 작년엔 새로운 성과도 냈다. 희망퇴직 말을 듣기 불과 몇 달 전엔 우수 연구원 상까지 받아왔다. 그전에도 회사에서 무료 여행을 보내줘서 부모님을 모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남편은 절대 무능력하지 않다. 대규모 인원 감축과 무차별적인 퇴직 종용을 하는 누군가가 나쁠 뿐이다.  누구 탓이라 명확하게 꼬집긴 힘들겠지만 남편 회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진다. 저렴한 해외 노동력을 대거 유입하면서 남편 회사에도 업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졌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겠지만 일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 자동화가 될수록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지만 자동화를 위한 실적을 계속 내야 한다.


  머리는 느리게 돌아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마음은 간사하고 돈은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남편에게 돈을 벌어 오라고 사지로 내모는 기분이 들었다. 박탈감과 분노 사이에서 치닫는 경주마에게 더 달리라고 내몰 수는 없었다. 희망퇴직 여부를 결정하는 건 고작 며칠의 시한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날이었다. 남편은 힘없는 등으로 문을 나서며 그만두지 않겠다고 말한 참이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무슨 일이야?"

남편은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희망퇴직 말이야. 아직 대답 안 했지?"

나 또한 애써 울음을 참아가며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응. 지금 업무 보고 중이라 이따 오후에 할 거야. 왜?"

남편은 희망퇴직 여부를 말하는 날에도 여전히 바쁘게 업무 중이었다.

"오빠가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라고. 10년 넘게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우리 먹여 살리느라 애 많이 썼어.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았지? 참고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빠가 말한 대로 그만두고 나서 하고 싶은 일 같이 찾아보자. 오빠가 쉬는 동안 내가 뭐라도 나가서 일하면 될 것 같아. 공기업은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 것 같고, 애들 때문에 공부도 잘 안돼서 내 눈을 좀 낮추면 될 것 같아. 내가 너무 옛날 생각만 했나 봐. 이제는 오빠가 좀 쉬고 내가 뭐라도 할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오빠는 정말 유능한 사람이고 좋은 아빠고 최고의 남편이야. 우리를 위해서 그동안 고생해 줘서 미안하고 고마워. 오빠 덕분에 다시 글 쓸 수 있었던 1년 반 동안 정말 행복했어."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편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 말을 정말 듣고 싶었던 것 같아. 내가 정말 무가치하고 쓸모없고 무책임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 근데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진짜 좋다. 희망퇴직은 고민 좀 더 해보고 다시 연락 줄게."

보이지 않아도 남편의 표정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늘 퇴직을 꿈꾸던 남편이었다. 그 말을 아내에게 들었으니 당장 사표를 쓸 수도 있었다. 가벼운 표정과 든든한 마음으로 업무 복귀를 했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남편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친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지만, 행여 남편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혼자 속앓이를 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생각났던 취업 준비와 집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뭐가 제일 좋은 지 꼽기 힘들다는 아이들의 사랑과 이제 다시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글쓰기 사이에서 빈 커서만 깜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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