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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Mar 17. 2023

학부모 총회는 처음이라서

초3 학모의 첫 총회 참석기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던 많은 학교 행사들이 속속들이 정상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아직 양치질은 못하지만, 아침마다 하던 자가진단이나 열 체크도 사라지고 예전 학교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학부모 총회이다. 코로나 때문에 줌을 이용한 비대면 총회를 하다가 처음으로 대면 총회를 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대면으로 참석하는 총회는 처음이었다. 1학년때는 분위기 파악할 겸 한 번 가면 좋지만 이후에는 대부분 안 가는 추세라고 들었다. 그래도 아이의 교정을 직접 보고 싶어 참석했다.

학교에서 나눠 준 연수 자료


  1부는 학교 소개, 2부는 학부모 연수, 3부는 학급 소개로 이루어졌다. 참석하기 전에 미리 1,2,3부의 참석 여부를 물었고 나는 첫 참석이니 3부 모두 참석에 동그라미 했다. 많은 엄마들이 1,2부에는 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학교 앞 놀이터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가 모일 장소가 없어 모든 순서는 각 교실에서 영상으로 이루어졌다. 1,2부에는 나와 다른 엄마 한 명 밖에 없었는데 3부가 되자 열두 명의 엄마가 더 들어왔다. 학부모 총회 때 수업 참관이나 상담도 함께 이루어지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참관과 상담 일정은 따로 있었음에도 참여율이 높았다. 스물네 명의 아이들 중 열네 명의 엄마가 참석했으니 말이다.


  담임 선생님은 다소 나이가 있는 분이셨는데 놀라울 만큼 솔직한 분이셨다. 자신의 자녀, 남편 이야기나 학급의 초반 분위기에 대해 얘기하셨다. 학급 소통이 앱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초대 코드가 발송된 날 반 전체의 학모가 가입한 것이나 아이들의 성적이나 숙제 진행 등이 매우 적극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공부 성적이 한 명도 뒤처지는 아이가 없고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고 했다. 이 학교에는 처음 근무하는데 숙제도 참 많고, 총회에 이렇게 많은 부모가 참여한 것도 처음 본다고 했다. 연륜이 있어서인지 긴장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를 듣는 내가 어찌나 긴장되던지 두 손을 꼭 붙잡고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아빠는 한 명도 없었고 전부 엄마들이 참석했는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우습게도 '자기소개'라고 해서 나는 '나'를 소개하는 줄 알았는데 자녀 이름을 말하는 순서였다. 쑥스러운 마음에 아이 이름을 말하고 얼른 자리에 앉았는데, 대부분은 자기 자녀의 장점과 자랑을 함께 말하며 각인시켰다. 여러모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학부모 총회의 하이라이트는 학부모 대표를 뽑는 일이었다. 후보자 등록 시간에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봐 미동도 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전 조사에 의하면 학부모 대표는 엄마들 모임을 주선하고 학교 행사나 운영에 자원봉사를 하는 자리였다. 학부모 폴리스, 도서관, 급식 모니터링, 생존 수영 도우미, 바자회, 체육대회 등 많은 부분이 엄마들의 봉사로 이루어졌다. 사실 많은 시간을 내야 하는 자리고 부담스러운 역할이다. 작년에는 먼저 나서서 대표와 부대표 자리를 차지하는 엄마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모두가 침묵했다. 그럴 경우, 암암리에 회장 아이의 엄마가 대표를 하는 것 같았고 우리 반도 그러했다.

  

  엄마들은 각자 자기 아이의 자리에 앉았다. 나도 아이의 자리에 앉아 아이가 바라보았을 칠판과 교실 이곳저곳을 눈에 담았다. 교과서도 한 번 꺼내보고 옆 자리에 앉는 친구의 이름표도 확인했다. 아이가 말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연령 파악이 더 어려웠지만 대부분 엄마들이 40대 같았다. 30대 같은 엄마들도 몇 명 보였다. 나는 원피스에 코트를 입고 갔는데, 대부분 세미 정장 차림으로 왔고 간혹 편한 차림으로 온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은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으셨다. 학부모 행사에 가면 명품 축제가 열린다고 하던데 나는 명품에 관심도 없고 뭔지도 몰라서 개의치 않았다.


  총회가 끝나고 집에 오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특별한 건 없는 시간이었는데 내내 긴장해서 그런지 저녁밥을 하는데 눈이 자꾸 감겼다.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회를 통해 느낀 점은 우리 학교엔 열성적인 부모들이 많고 학교 운영의 많은 부분을 엄마들이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이만큼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더 피곤해졌다. 실수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 내 아이가 잘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생겼다. 내 아이는 어찌나 덜렁거리는지 기껏 독서록 과제를 다 해놓고 학교에 안 들고 가고, 학교에서 나눠준 동의서에 싸인해 가방에 넣어줬는데도 깜박하고 다시 집에 가지고 온다. 곱셈 문제에서 난데없이 덧셈을 하기도 하고, 집에선 다섯 살 동생과 똑같은 수준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내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걸까? 학교에서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오전 열 시, 두 아이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집 안이 유일하게 조용해지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침묵'으로 채우길 좋아한다. 자녀들을 양육하는 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안개 낀 호수 위에서 노를 젓는 뱃사공이 된 것과 같다. 열심히 노를 젓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 아이들을 망치게 될까 두렵다. 그러나 노 젓기를 멈추면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느낄 수 있다. 오전 열 시에 나는 노젓기를 멈추고 바람을 느낀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건, 열심히 노 젓는 뱃사공의 열정이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감이다. 뒤쳐지고 실수하더라도 괜찮아, 엄마 품에서 뛰놀고 뒹굴며 실컷 실패하렴, 어린이는 원래 그런 거야. 학교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도 상관없단다, 그건 부모의 몫. 집에서 더 큰 사랑과 인정을 부어줄게. 멋진 집이나 큰 차는 줄 수 없지만, 언제나 마음을 묻고 따뜻한 아침밥과 다정한 저녁 식탁의 자리로 기억되고 싶다. 수천 년 전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가 말한 것처럼, 아이들아 오늘도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


아이 책상 위에 두고 온 편지. 다음 날 아침, 아이가 편지를 발견하곤 정말 기뻤다고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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