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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Mar 27. 2024

엄마도 새 학기 적응이 필요해

첫둥이가 울면서 집에 왔다. 새끼손가락이 퉁퉁 붓고 피멍이 들어있었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둘째가 유치원생이 되었다. 이쯤 되면 능숙한 엄마가 될 법도 한데 마음은 쉽게 자리를 못 잡는다. 첫째의 담임 선생님과 교우 관계, 둘째의 유치원 적응이 나에게도 큰 과제다. 첫째의 선생님은 6학년을 주로 하던 호랑이 선생님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말도 크게 받아들이고 걱정이 많은 첫째는 선생님의 한 마디, 한마디가 너무 무서운가 보다.


  "엄마, 선생님이 무서워서 숨도 크게 못 쉬겠어. 선생님이 '여러분은 더 이상 아기가 아닙니다. 엄마, 아빠 핑계 대지 마세요. 직접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울지 말고, 그 자리에서 침착하게 직접 말하세요. 선생님한테 오기 전에 세 번 해보고 안되면 그때 오세요'하고 말했는데 너무 무서웠어."


  "머리가 너무 아파서 손들고 선생님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안 시켜줘서 말을 못 했어. 쉬는 시간에도 안 계셔서 보건실 찾다가 못 찾고 그냥 왔어."


  "학교 갔다 오면 너무 어지럽고 오늘은 코피도 났어. 선생님이 공부를 너무 많이 시켜. 수업 시간 1시간이 40분인데 수학 익힘책 다 풀고 학습지도 6장이나 더 풀어야 했어. 어렵진 않은데 너무 많아서 쉬는 시간까지 했어."


  첫째가 학교 생활에 대해 말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근심이 쌓여가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쓴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선생님과 학교에 대해 두둔한다.


  "그렇구나. 얼마나 무서웠길래 숨도 잘 못 쉴 정도였을까? 새 학기 적응하느라 힘들 텐데 선생님까지 무서워서 힘들겠다. 그런데 선생님 엄청 좋으신 분 이래. 목소리가 크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셔서 그렇지 친해지고 나면 친구처럼 재밌고 마음이 따뜻하시대. 지금은 처음 겪어봐서 힘들겠지만 나중에 5, 6학년 되면 지금 선생님한테 배운 덕분에 훨씬 수월할 거야. 기준이 명확하시니까 첫둥이처럼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는 오히려 좋은 거야. 선생님이 무서워서 장난을 심하게 치거나 상처 주는 말 하는 친구들도 그러기 힘들 거야. 첫둥이는 지금도 정말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학교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이렇게 갔다 오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해."


  사실 담임 선생님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공개수업과 총회 때 잠깐 얼굴 본 게 다지만 최선을 다해 긍정적으로 풀어준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분을 만났을 거라는 신뢰를 가지고 선생님과 아이가 함께 쌓아갈 시간을 응원한다. 내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는 첫둥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래. 역시 엄마한테 말하길 잘했어. 마음이 엄청 편해졌어"하고 밝아진 얼굴로 대답한다.


  첫둥이는 내 말에 얼굴이 밝아지지만, 아이가 없을 때 내 마음은 어두운 그늘이다. 필요할 때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을지, 책에 한 번 빠져들면 아무 소리도 못 듣는데 학교 수업 종까지 안쳐서 수업 시간을 놓치고 선생님께 혼나진 않을지, 친한 친구들과 반이 떨어졌는데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잘 찾아가고 있을지, 선생님이 무서워서 긴장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건 아닐지 심장이 동동거린다. 그리고 이 마음을 그대로 모아 기도한다. 내 걱정은 내가 싸우고 아이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아이의 고민도 나에게 털어내고 더욱 단단해져 가기를 소원한다.

첫째 4학년, 둘째 유치원 입학 기념 초콜릿 & 장난감이 든 꽃다발을 직접 만들어줬다.


  그러던 중, 첫둥이가 울면서 집에 왔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얼굴에 힘을 잔뜩 준채 현관문을 열더니 나를 보자마자 안겨서 엉엉 울음을 쏟아냈다. 막 점심을 먹으려던 나는 놀라서 첫둥이를 안고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첫둥이의 손가락이 퉁퉁 부어올라 피멍이 들어있었다. 첫둥이는 학교 체육 시간에 농구를 하다 짝꿍이 던진 공에 맞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농구공에 얼굴을 맞아 턱이 돌아가 아팠고, 두 번째는 손에 맞아 손가락이 뒤로 꺾였다고 했다. 공에 얼굴을 맞았을 때는 참으려고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는데, 그 모습을 보고 공을 던진 친구가 깔깔거리고 웃었다고 했다. 그래서 첫둥이가 그 친구에게 "친구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 안 돼. 나 지금 엄청 아파"하고 말했더니 "내가 이렇게 웃어야 네가 복수심에 불타서 더 잘하게 되는 거야"하고 대답했단다. 첫둥이는 전에 선생님이 아기처럼 울면 안 된다고, 친구와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서 그 친구에게 대화를 몇 번 더 시도하다 사과도 못 받고 결국 손가락까지 다쳐서 집에 온 것이다. 손가락에 피멍이 들어 퉁퉁 붓고 통증이 심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은 데다가 이후 다른 수업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꾹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내 품에 안긴 것이다.



  첫둥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니 인대가 늘어나 있었다. 2주 깁스를 처방받고 집에 왔다. 2주 동안 첫둥이가 좋아하는 체육 시간은 물론 태권도 학원까지 쉬어야 한다. 첫둥이는 속상하고 아파서 눈이 벌게졌다. 첫둥이에 따르면 공을 던진 친구는 평소에도 특이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4학년이 된 지금까지 내내 단 한 번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교실에서도, 강당에서도, 급식실에서도 굉장히 오래된 낡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 초등학교 입학 전엔 만나보지 못했으니 1학년때 갑자기 모자를 썼다기보다는 더 어릴 때부터 모자를 썼을 거란 추측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그 부모에게, 담임 선생님께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손이 퉁퉁 붓도록, 혈관이 터져 피멍이 들도록 이렇게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도록 왜 사과도 받지 못하고 어떠한 처방도, 관리도 없이 집에 와야 했는지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다. 첫둥이가 나중에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보건실에 가보라고 했다는데, 보건실이 어딘지 몰라서 쉬는 시간마다 1층만 헤매다가 결국 못 갔다고 했다. 보건실은 2층에 있었다.


  알고 있다. 이것 또한 내가 해결해야 할 내 감정의 씨름이다. 첫둥이는 내가 선생님이나 그 친구에게 연락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전에 친구와 문제가 생겼을 때 세 번 스스로 해보고 안되면 선생님께 이야기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제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어제 네 번을 참았고 친구에게 직접 말해보고 사과를 받으려 했지만 안 됐으니까 도움을 청하겠다고 했다. 나는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첫둥이의 눈을 보고 말했다.


  "그래 알겠어. 엄마는 사실 네가 다쳐서 너무 속상하고 당장이라도 연락하고 싶지만 네가 원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게. 엄마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얘기해 줘. 첫둥이 뒤에는 늘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첫둥이가 혼자 해본다고 하니까 한번 해봐.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첫둥이가 훨씬 더 많이 컸네. 정말 대견하다. 엄마보다 네가 더 낫다."


  다음날 첫둥이는 잘 해결됐다며 스스로 문제를 풀고 왔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친구에게 사과를 받았으니 다 잘 된 거라고 했다. 첫둥이의 손에 감긴 깁스와 통증이 못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첫둥이가 됐다면 된 거다. 내 감정이 아이의 것이 되게 할 순 없다. 여전히 손이 아프고 불편하지만 사과를 받았으니 잘 해결된 거라는 첫둥이에게 오히려 내가 배울 일이다. 엄마는 참는 법을 배우고 아이는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알아간다. 아이가 4학년이면 부모도 4학년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보다 한걸음 뒤에서 쫓아가고 있단 생각이 든다.


  정신과 의사이자 일본 대인관계요법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미즈시마 히로코는 저서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에서 상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떠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받은 것'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한번 받은 충격은 오래갑니다. '이미 받은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질긴 충격에 대비하는 기본자세입니다." 충격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충격으로 인한 고통은 머지않아 사라진다고 강조한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었다는 충격, 아이가 다쳤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충격, 참고 기다리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충격, 아무 위로도 없이 혼자 만의 싸움이라는 충격 속에서 첫 달이 지나고 있다. 새 학년, 새 학기에 적응하는 건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소란한 마음도, 충격도 시나브로 사라질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지 않고, 부딪혀 해결하며 과정을 직면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결국 나와 아이를 성장시키고 자유케 한다. 여전히 하루에도 여러 번 요동치고 지치고 휘몰아치지만 아주 조금씩 단단함을 향해 나아간다.


첫둥이가 각종 달다구리들을 합쳐 만든 자칭 '파티 음식'
4학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온갖 잡동사니들을 갖다가 움막을 짓는다. 작품명 : "동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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