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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Oct 22. 2024

나쁜 말의 힘

그런 사람들에게 내 삶을 빼앗기지 말자. 내 일상의 간극을 내어주지 말자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다. 아이들 가방에 챙겨 줄 따뜻한 보리차를 텀블러에 담고 있는데 잠에서 깬 꼬맹이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예의 그렇듯 씨익 웃으며 포르르 달려와 품에 안긴다. 그러곤 어둑한 아침의 조도에 자연스레 창 밖으로 눈이 가고 비가 내림을 깨닫는다.

  "어. 비가 벌써 내리고 있네."


  그 짧은 감탄사가 내 마음에 울림을 이룬다. 비가 언제 올지 일기예보를 본 것도 아닌데 비가 '벌써' 내리고 있다는 평이 낯설다. 밤낮없이 흐르며 수증기를 몰고 다니다가 해가 비치기도 전에 내리기 시작했을 비가 반가운 손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좀 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벌써' 온다고 하니까. 꼬맹이의 짧은 어휘력은 때때로 감동으로 다가온다.


  갓밝이에 아침의 모퉁이를 돌아 서둘러 나선 보슬비가 집 안을 더욱 아늑하게 만든다. 이런 날엔 향긋한 커피 한 잔 놓고 글을 써야겠다, 얼른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운동을 마치고 글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피어올랐다. 무슨 글을 쓸지도 대략적인 글감을 정리해 두었는데 아침부터 일이 터지고 말았다.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은 차량 운행을 안 해서 내가 직접 운전해서 데려다준다. 그런데 아파트 주차선 안에 주차해 둔 내 차의 맞은편으로 원래는 차를 대면 안 되는 곳인데 어떤 차가 떡하니 회전 통로를 막고 있었다. 그 차를 피해 어떻게든 차를 빼보려고 다양한 각도로 차를 움직였지만 불가능했다. 혹시 차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두었으면 다른 쪽으로 밀어 볼까도 싶었는데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꽉 잠가놔 움직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게 꺼림칙해 웬만하면 연락하지 않는데 30분 정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했다. 그런데도 차주는 금방 나오지 않고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는데 부랴부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올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외출준비까지 다 마치고 하얗게 센 머리에 왁스까지 멀끔하게 바른 50-6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터벅터벅 걸어 나온 그 남자는 젊은 여자가 차를 못 빼고 동동 거리고 서 있으니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더 큰 차도 다 대는 곳인데 차를 못 빼요? 이걸 못 빼서 연락한 거예요? 빼려고 시도 안 해보셨죠?"


  마치 내가 운전 미숙으로 차를 못 빼는 것처럼 말하는 투에 기분이 상했다. 만약 내가 본인보다 더 나이 많은 남자였다면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여기는 그 어떤 베스트드라이버가 와도 절대 뺄 수 없는 좁은 회전 통로인데 말이다. 그리고 주차난으로 차를 그곳에 댈 수밖에 없다 해도 서둘러 아침 일찍 차를 빼는 예의를 갖춘 이웃들이 사는 곳이다. 이런 오해를 받을까 봐 그 불법주차 차량을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두기까지 했다. 그 누가 봐도 절대 차를 뺄 수 없게 만든 그 차의 황당한 주차 실력을 말이다. 그 아저씨가 운전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도 나도 나름의 운전 경력이 있다. 10년 넘게 무사고로 안전하게 운행 중이니 말이다.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유치원에 충분히 늦었으므로 서둘러 가야 했다. 그 아저씨와 거기에 서서 언쟁을 한다한들 어떤 이득이 있을까? 제발 그 아저씨가 똑같은 상황에 처하길 바라며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계속 생각이 났다. 그 한심하다는 눈빛과 비웃음이 섞인 말투, 비아냥거린다고 느껴졌던 태도가 내 마음을 할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줄 때도, 운동을 가는 길에도, 운동을 하는 중에도 계속 그 상황이 곱씹어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 말고는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들이나 아파트 청소를 하는 여사님이나 늦는다고 연락을 했을 때 유치원 선생님의 반응이나 유치원 경비 아저씨나 헬스장 선생님 등은 모두 호의적이었다. 나와 오랜 시간 조금씩 마주치며 안부를 전하는 선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왜 오늘 처음 본 그 아저씨 한 명으로 인해 내내 기분이 나쁜 걸까? 왜 기분 좋은 말들은 당연한 듯 흘려보내고 기분 나쁜 말에 사로 잡혀 내 하루를 망치려 할까?


  의도적으로 오늘 만난 좋은 사람들에 대해 집중하려 노력해 보았다. 유치원 경비 아저씨가 건넨 생강정과의 알싸함이나 안부를 묻는 누군가의 호의 문자 같은 것에 생각을 모으려 애썼지만 그런 장면들은 너무 쉽게 빠져나갔다. 기분을 망치는 말에는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현실감에서 나를 떨어트리고 머릿속 장면에 몰입하게 한다. 일상과 나 사이의 벌어진 간극에 터를 잡고 들어앉아 나쁜 말을 곱씹고 확대 재생산해 화를 돋운다.

유치원 경비 아저씨가 생강정과를 나눠주셨다. 마음이 감사해 억지로 먹었다가 아려서 눈물이 났다.



  나쁜 말은 모든 좋은 것들을 뒤엎고 기분을 잡아먹는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주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남편 회사에서 임직원 가족들을 회사에 초청해 가을 소풍 행사를 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이들과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고 여러 체험을 했다. 억새가 바람에 날리는 수변 공원을 산책하고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그리고 오락실이 있었는데 다양한 오락기를 전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오락기는 인기가 많아서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우리는 줄 서서 기다린 후 이용할 수 있었다. 정해진 규칙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10분 정도 이용한 후 자리를 비켰다. 물론 한쪽에선 한 시간 넘게 이용하는 매정한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 차례가 돼서 아이들이 오락기 앞에 앉았는데 게임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보니 금방 죽었다. 앉은 지 한 30초도 되지 않았을 때인데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죽었으면 나와야지. 왜 안 나와"


  우리 아이들은 앉은 지 1분도 되지 않았고 이곳은 암묵적으로 10분 정도씩 이용하고 있는 데다가 오락기가 한 개가 아니라 꽤 여러 대가 있었다. 게다가 한 시간 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왜 우리 뒤에 바짝 붙어서 팔짱을 끼고 서서 노려보면서 그렇게 화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걸까? 우리와 같이 줄을 서서 기다렸으니 우리가 이제야 앉았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설마 우리에게 하는 말이 아니겠지,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 여자는 다시 한번 말했다.

  "죽었으면 나와!"


  이 좋은 날, 맛있는 음식과 풍경 속에서 겨우 이 오락기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걸까? 결국 같은 회사 사람일 텐데 왜 이렇게 화가 잔뜩 나서 가장 어리고 체구가 작은 우리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걸까? 결국 우리 아이들은 긴장한 얼굴로 자리를 비켰고 그 아줌마는 자리에 앉아 게임을 했다. 그리고 본인은 게임에서 죽어도 자리를 비키지 않고 오랜 시간 앉아 있었다.


이렇게 좋은 순간을 게임기 하나로 망칠 순 없다.


  세상엔 너무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이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몸속에 독소가 가득 차서 생각 없이 거친 말을 내뱉고 타인을 할퀴고 괴롭히지 못해 안달 난 것 같다. 마치 자기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는 듯이, 뭔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듯이 착각에 빠져 타인의 기분을 망가뜨린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박완서 선생님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글이 떠오른다. 부끄러움을 잊은 사람은 반드시 수치와 수모를 당할 것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떠나가고 더욱 외로움과 자기기만에 빠져 결국엔 뿌린 대로 거두는 삶을 살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삶을 빼앗기지 말자. 내 일상의 간극을 내어주지 말자. 오늘은 평소보다 운동을 30분 더 하고 왔다. 주말에 쉬지 못해서 피곤했지만 일상을 되찾는 데 운동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근력을 키우다 보면 그런 씁쓸한 말 따윈 하찮은 종잇조각처럼 찢어 버리고 깨끗한 종이를 꺼내 새로운 글을 빚어갈 용기가 생긴다. 사실은 너무 힘들어서 기분 나쁜 말이고 뭐고, 빨리 이 운동을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영어 표현 중에 "You made my day"라는 말을 좋아한다. 당신의 말과 행동이 나의 하루를 만든다는 뜻이다. 당신의 그 작은 말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고, 이 기쁜 마음을 당신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고 마음대로 해석해 본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누군가의 하루를 빚는다. 맑은 물을 흘려보내는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내 영혼도 맑아지리라 믿는다.


  글을 쓰다 보니 비가 오락가락하며 사람들 중 일부는 우산을 쓰고, 일부는 그저 손에 들고 걸어가는 게 보인다. ‘가라고 가랑비 오고, 있으라고 이슬비 온다'는 옛말이 있다. 못된 말은 가랑비에 떠나보내고, 내 하루를 만드는 행복한 순간들을 이슬비에 맞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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