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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l 18. 2024

몇 번이고 엄마를 용서하는 아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지난번에 <산에서 내려온 사춘기 엄마>라는 제목으로 아이와 있었던 갈등에 대해 썼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에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화가 풀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 하루를 넘기기에는 아이와 나 사이에 감정의 골이 지나치게 깊어질까 하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는 '모든 게 본인 잘못'이라며 미안해했지만, 나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다시 요약하자면,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학교가 끝난 뒤 친구네 집에 가서 저녁까지 놀다 온 아이가 또다시 다른 친구와 놀러 나갔다. 하루에 두 번이나 놀러 나갔지만 초등학교 4학년은 한창 놀 나이지, 하는 생각에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귀여울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친구와 놀다 온 이후 밀린 숙제를 한다고 방에 들어가더니 몇 시간 동안 나오지 않았다.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구나, 기특한 마음에 둘째를 먼저 재우고 첫째에게 그만 공부하고 자라고 말하려고 갔더니 아이가 황급히 태블릿 PC를 숨기는 게 아닌가.


  아이는 한 시간 넘게 유튜브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 봤다고 거짓말을 한 데다가 유튜브 영상도 아이가 보기에 적절한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의 거짓말과 행동에 화가 났고 모진 말을 내뱉었다. 아이는 눈물을 흘렸고 용서를 구했지만, 내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음 날, 거의 하루 종일 걸으며 지난밤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태블릿 PC로 영어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잠깐 영상을 보았는데, 자기가 클릭한 건 아니지만 영상이 계속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고 했다. 보다 보니 재밌어서 계속 보게 됐고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혼날까 봐 안 봤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나도 거짓말을 할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혼나기 싫은 건 매한가지다. 휴대폰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새벽까지 잠을 안 잘 때도 있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영상을 볼 때도 있다. 하물며 고작 봄, 여름, 가을, 겨울이 9번 반복되는 정도의 시간 밖에 살지 않은 아이는 오죽할까? 그런 아이에게 나는 왜 배신감과 미움까지 드는 걸까, 고민했다. 내 반응이 스스로 과하다고 느껴졌다.


  지난번 쓴 <산에서 내려온 사춘기 엄마> 글에서처럼 내가 부모에게 받지 못한걸 아이게 줬다는 자만감,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는 소유욕, 아이를 내 손바닥 위에 두고 싶은 통제 욕구인 것 같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의 쓴 뿌리였다. 내 유전자의 반을 복사하고, 내 온몸을 뒤엎고 탄생한 아이는 외적으론 부모를 닮았을지 몰라도 전혀 다른 생명체이다. 몸과 마음이 미성숙해도 온전한 인격체이다. 누군가의 보호 없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시기이면서 동시에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만 9세의 어린이이다.


  첫째인 꿀동이를 포함해 우리 가족 네 명은 다 같이 한 방에서 잠을 잔다. 남편이 첫째와, 내가 둘째와 한 침대를 쓴다. 그런데 어제 나에게 혼난 꿀동이는 오늘도 안방으로 오지 않고 자기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치원생인 둘째를 먼저 재우고 첫째 방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첫째는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상어 인형을 옆에 두고 이불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서  슬그머니 나를 쳐다봤다. 엄마가 무섭지만 또 한편으론 그립고 보고 싶고 안기고 싶어 하는 동그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일순간 모든 감정에 회의감이 들었다. 저 가녀린 눈동자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아이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꿀동이 침대 위 상어


  "꿀동아, 엄마랑 지금 이야기할 수 있어?"

첫째는 기다렸다는 듯 "응"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고요한 밤의 끄트머리에 앉아 차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어떤 행동과 말에 무슨 느낌과 생각이 들었는지, 어떠한 시선과 때에 얼마큼의 수치과 공포감이 들었는지 자세히 나눴다. 내가 먼저 질문하고 아이가 자세히 답했다. 아이의 마음을 확인한 뒤에 "엄마에게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몇 가지를 물었다. 아이는 내가 화가 나서 한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고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전했다.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엄마도 모르게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해버렸어.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됐는데 엄마가 큰 잘못을 한 거야. 어제 엄마가 한 말과 행동은 모두 잊어줄래? 엄마도 다신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게. 엄마의 부족함때문에 꿀동이가 너무 속상했지? 원래 아이들은 다 그런 건데, 엄마가 잘못했어. 용서해 줄래?"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몇 번이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자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속상하고 걱정했는지 고백하면서 자신도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 엄마도 나 용서해 줄 수 있어? 앞으로 절대 거짓말 안 하고, 유튜브도 허락받고 엄마가 보라고 하는 것만 볼게. 공부도 안 밀리고 열심히 할 거야."

아이의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아이를 끌어안고 말했다.

  "꿀동아. 엄마도 너 용서할게. 그런데 사실 너는 용서할 게 없어. 어린이는 원래 그런 거야. 엄마가 더 많이 도와주고, 더 많이 노력할게. 엄마가 부족해서 화를 낸 거야. 이런 엄마를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


  아이는 이번에도 너무 쉽게 나를 용서해 줬다. 나는 이런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하루종일 걸으며 화내고 답답해하고 속상하고 괴로웠는데 훨씬 더 힘들고 무서웠을 아이는 엄청난 사랑으로 나를 포용했다. 내 생애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억하는 사랑 중에 가장 큰 용납과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 준다.


  아이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과 생긋 웃는 표정으로 안방에 누워서 금세 잠들었다. 그러나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아이가 들려준 마음과 자기가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아이의 관점에서 머릿속으로 재구성해보았다. 그 작은 가슴과 조그만 몸으로 겪었을 고통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수록 숨이 턱턱 막혀왔다. 내 잘못으로 아이에게 평생 상처가 되진 않을까? 지금은 용서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이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면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더 참았어야 했는데 화가 난다고 표출한 그 마음이, 내가 받은 상처만큼 되돌려 주려 한 그 행동이 얼마나 못나고 추악한지 아이의 마음을 상상할수록 가슴이 불타 오르는 것 같았다. 어둔 새벽에 나 홀로 깊은 바닷속에 잠식당한 기분이었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뜨겁고 심박수가 솟구쳤다. 누가 나 좀 도와줬으면, 괴로움에 죽을 것만 같았다.


  뻔뻔하게도 살려달란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사실 하루 종일 걸으며 마음속으로 신을 찾았다. 화가 나는 이 마음을,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는 이 답답함을 토로하고 도와달라 외쳤다. 신기하게도 신은 그 기도에 응답했다. 아이에게 전혀 다가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변했고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새벽에 다시 깨달았다. '아, 나는 죄인이구나. 이런 내가 누굴 가르치고 부족하다 탓하고 마음대로 안된다고 화를 냈던 거지. 아,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이구나. 아, 나는 진짜 죄인이구나.'


  성경은 말한다. 죽을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셔서 대신 죽게 하셨다고. 이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고 없어졌다고. 이 상투적인 말이 나를 살리는 말로 다시 생생하게 와닿았다. 죄인인 내가 아이들에게 행하는 죄를 주님께서 대신 짊어지고 용서하셨다. 꿀동이를 통해 나를 용서한다고, 안아줬단 생각에 미치자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쳐 올랐다.


  아이는 내가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죄인인 내가 아이를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춘기가 다가올수록 아이가 내게서 뜯겨 나간다. 내 살점을 찢고 탄생한 아이가 이젠 정신적 골수를 파괴하며 독립할 준비를 한다. 내게서 멀어질수록 아이는 더 건강해지고 쾌활해지며 멋진 세상을 탐구해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움을 향해 나갈 것이다. 아이가 드넓은 뜀틀을 향해 뛰어가도록 제자리에 우뚝 서 있는 도움닫기용 발받침대가 되고 싶다. 나를 밟고 올라서라고, 겨우 이 조그만 발받침대에 서 있지 말고 지나쳐 올라가 다른 곳으로 나아가라고 응원하고 손뼉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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