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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l 17. 2024

산에서 내려온 사춘기 엄마

공부를 한다던 아이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꼭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옛날이야 먹고살기도 힘든데 자식들까지 많이 낳았으니 그런 말이 나왔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이를 둘이나 낳고 보니, 그 말이 정말 맞다. 최소한 자식이 둘이나 있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학원비는 둘째 치고라도 그저 한 사람의 제대로 된 인격체로 키워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죽을 때까지 미완성일 '나'라는 미개한 생물이 다른 생물을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며 키워내야 한다는 게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로 느껴진다.


  아이가 어릴 땐 서로의 생존 욕구가 부딪혔다. 아기는 살기 위해 울고 먹고 자고 발버둥 쳤다. 엄마가 된 나도, 내 한 몸을 건사하던 시절을 뛰어넘어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는 동시에 나 스스로의 잠, 음식, 청결 등에 대한 욕구와 싸워야 했다. 그 시절을 지나 이제 좀 편해지는 가 싶었더니 이제는 시퍼렇게 살아 날뛰는 아이의 본능과 내 자아가 맞부딪힌다. 그저 신나고 재밌는 일을 즐기고 싶은 아이와 위험한 건 제지하고 피해를 끼치는 건 막고 모르는 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신념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니 아이만의 확고한 신념들이 세워져 감을 느낀다. 아이는 사춘기를 향해 부릉부릉 시동을 걸며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해 간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부동의 신념을 세우고 다른 친구들이 보는 곳에서는 이성 친구와 대화도 하지 않고, 옷에 아주 작은 귀여운 캐릭터도 허용하지 않으며, 남자아이 문구류에는 절대 핑크색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기준을 내세운다. 그 나이 또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유난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그 정도는 귀엽게 넘길 만한 수준이었다. 가끔 말끝에서 느껴지는 버릇없게 느껴지는 표현이라든가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을 향해 과도한 기준을 내세우며 동생을 몰아갈 때는 슬슬 이마가 찌푸려진다. 저런 것도 예비 사춘기의 증상인 건진 모르겠지만 혼나고 난 뒤에 큰 한숨을 내쉰다거나 홱 돌아서 자기 방으로 가버릴 때는, 본격적인 사춘기가 오면 어떻게 되는 건지 뒷골이 서늘해진다. 게다가 본인 얘기 하는 건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무리 조용한 소리로 통화를 해도 어떻게 듣고 달려와서는 자기 얘기하지 말라고 인상을 팍 쓰며 손으로 엑스자를 그려댄다.


  사춘기가 오면 모든 관계가 무너지고 다시 재정립되는 시기라고, 살아있는 야생동물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피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익히 들어왔지만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의 공부가 계속 밀리길래 아이와 상의해서 아예 양을 줄여버렸다. 과목을 대폭 없애고 양도 최소로 줄였다. 한두 과목에 집중해서 성취감을 맛보게 하고 자신의 시간을 좀 더 자율적으로 즐겁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섭섭함과 설렘을 동시에 내비치면서도 다시 열심히 해보겠다고 의욕을 내보였다. 아이는 플래너에 다시 계획을 적고 이 정도면 식은 죽 먹기라면서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세운 계획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방과 후에는 친구 집에 놀러 가느라, 친구 집에 갔다 와서는 다른 친구와 놀이터에서 노느라, 집에 와서는 배가 고파서 밥 먹느라, 밥 먹고 나서는 씻느라, 씻고 나서는 피곤해서 늘 같은 패턴으로 행동하고 핑계 대고 반성하고의 반복이었다. 결국 "약속을 지키라"는 말을 듣고서야 자기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했다. 중간중간 나와서 "엄마 너무 힘들어서 조금 쉴게"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나는 아이가 얼마나 집중해서 공부하길래 저렇게 쉬는 시간까지 나에게 허락을 받을까 싶어서 짠한 마음까지 들었다.


  둘째를 재우고 첫째의 방으로 갔다. 아이가 계획한 공부의 양은 한 시간도 안 돼서 충분히 할 만한 양이었는데 아이는 벌써 몇 시간째 자신의 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 있었다. 피곤할 것 같아서 그만 씻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하려고 아이 방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아이가 후다닥 태블릿 PC를 치웠다. 영어 수업을 인터넷 강의로 들어야 해서 사준 태블릿 PC였다. 지금까지 영어를 한 건지, 영상을 본 건지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태블릿 보고 있었니?"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 그냥 충전하려고. 어, 이거 어딨더라."하고 어색하게 말했다. 아이의 태블릿 PC를 건네받아 확인해 보았다. 유튜브가 틀어져 있었다. 앱별 사용 시간을 확인하자 아이는 벌써 한 시간 넘게 유튜브를 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아이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얼마 안 되는 문제집은 거의 풀지 않은 채였다.


  배신감이 들었다. 유튜브를 보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다니. 게다가 영상의 내용도 초등학생이 보기에 부적절해 보였다. 이렇게 좋은 공부방과 넘치는 책들과 원하는 건 최대한 알아보고 지원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결국 유튜브라니! 실망스러웠다. 나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아이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결국 아이의 눈물을 보았다. 아이는 잠들었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까지 깨어 아이의 행동을 곱씹고, 내가 내뱉은 말을 내 심장에 돌려 박았다. 내가 받은 상처와 아이에게 준 고통까지 배로 부풀어 내 안에서 휘몰아쳤다.


  다음날까지도 울컥울컥 눈물이 나고 울화가 치밀었다. 일부러 먼 거리를 걷고 비 오는 길을 산책했다.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아 아이가 집에 있는 시간마다 밖으로 나왔다. 전에 사춘기를 둔 지인이 아이 때문에 울화가 터져서 밖으로 나와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그렇게 방황하는 또 다른 사춘기 엄마를 만나 울다 웃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염없이 걸으며 아이에 대해, 그리고 내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왜 아이에게 똑같이 아픔을 주려고 행동했을까?


  아이를 나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내 뱃속에서 나와 아까운 것 하나 없이 품에 안고 키운 내 자식은 또 다른 '나'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가 받지 못한 것, 원했으나 하지 못해 상처가 되었던 걸 해주고 싶었던 거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나는 유난 떠는 게 아니야, 극성이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어느덧 내가 원하는 기준에 아이를 비추어 내 마음에 흡족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나는 내 방이 없었다. 책상도, 옷장도 없었고 원하는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없었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정보가 부족했고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방을 주고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넣고 유용한 정보를 갖다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 사실은 나 스스로를 흐뭇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아이도 좋아했겠지만 그 안에 내 욕심이 없다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공부의 양을 줄이거나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아이가 주도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자신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안정되게 찾아가길 기대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내가 받지 못한 걸 해준 것처럼, 어쩌면 부모님도 나에게 본인들이 받지 못한 걸 해주었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급하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배 굶지 않고 안전하게 지내는 걸 최고로 치는 시대를 사셨다. 그런 부모님의 관점에서라면 나에게 모든 걸 해주지 않았냐고,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모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늘 공무원이 되라고, 아니면 언니들처럼 선생님이 되라고 강요하면서 정작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비교하고 모자라다 여기지 않았냐고 억울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아이와 충돌하고 보니 '부모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기까지가 내 최선인 걸 어떡하냐고,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낫지 않냐고 항변하고 싶은 걸 꾹 참은 채 말이다. 길을 걸으며 아이에 대해 고민하다 부모님에까지 생각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가방에서 급하게 우산을 꺼내 들었지만 우산을 써도 소용없을 정도로 거센 비였다. 후드득하고 우산의 방수천을 내리치는 파열음, 나뭇잎 위를 거칠게 내리꽂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이 멈췄다. 금세 신발이 젖고 종아리까지 빗물이 튀어 올랐다.


  자식은 부모의 등골을 파먹고 자란다. 자식은 내 안의 괴물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포기하고 내려놨다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바닥이 있다. 바닥이다 싶으면 또 땅이 꺼지고, 이젠 정말 다 끝났다 싶은데도 더 깊은 심연이 기다린다. 첫째와 성향이 비슷한 남편은 나보다 더 잘 아이를 이해한다. 내가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지는 순간에도 남편은 아이의 편을 든다. 그 나이 또래는 원래 그런 거라고, 재밌는 걸 하고 싶은 데 어떡하냐고, 아무리 못해도 내 자식인데 끌어안고 살아야지 어떡하냐고 반기를 든다. 남편 또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엄마가 시키는 공부를 억지로 하며 괴롭고 억울했던 날들을 돌이켜 보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거머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 벌써 내 나이가 30대인데 아직도 어린 시절의 나를 잊지 못하고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는 책도 있는 것을 보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낳는다고 다 부모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언제쯤 진짜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부족한 '나'라는 사람에 얽매어 아이가 좌절하고 고통받는 걸 생각하면 견디기가 힘들다. 나는 왜 이렇게 아이에게 당연하다는 듯 상처를 주는 것일까?


  사춘기가 다가온다는 건, 아이가 내게서 떨어져 나갈 준비를 하는 시기를 말하는 것인가 보다. 내 심장 같았던 아이가 내게 실망을 안겨주며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느냐고, 엄마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도 내가 좋냐고 묻는 것 같다. 엄마가 아무리 고통을 안겨줘도 나는 엄마를 믿고 사랑하고 용서하는데, 엄마는 어디까지 할 수 있냐고 온몸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하다. 화나고 상처받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면 아이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과 행동이 아이가 평생 간직할 상처라고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럽지만, 나도 한계에 부딪히며 나를 찢고 나아가고 있다고 항변하고 싶다. '산에서 내려온 야생동물'은 사춘기 아이가 아니라, 사춘기 엄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혼자 씁쓸한 웃음을 지어본다.


산에서 내려온 사춘기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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