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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Aug 23. 2024

엄마를 부려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의 이면에 담긴 뜻

때로 아이들은 나를 부려 먹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게 할 때가 있다. 내가 아프든, 바쁘든, 기분이 나쁘든 아랑곳 않고 나를 시녀처럼 부려 먹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나를 시키고, 노력해보지도 않고 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맨 손으로 태어나고선 마치 나에게 대단한 거라도 맡겨 놓은 양 아주 의기양양하고 당당하게 먹을 거, 입을 거, 원하는 거를 요구하고 나를 조종해 필요를 채운다.


  "엄마, 나 샤워할래. 옷 벗겨줘. 씻겨줘. 로션 발라줘. 물기 닦아줘. 머리 말려줘. 옷 입혀줘. 안아줘. 책 읽어줘. 자동차 놀이 하자. 레고 블록 맞춰줘. 저녁에 새알 들어 있는 호박죽 해줘."


  유치원 다니는 둘째가 수족 부리듯 나를 굴려 먹으면, 옆에 있는 첫째는 엄마를 괴롭히지 말라고 둘째에게 눈치를 주면서도 가만 보면 자기도 나를 부려먹는다.


  "엄마, 나는 저녁에 등갈비 해줘. 내일 아침엔 게맛살 볶음밥 해줘. 레고 이거 다 맞추면 다음엔 드래곤 레고 사줘. 나 저녁 먹기 전에 샤워할 동안 문제집 푼 거 채점해놔 줘. 내일 태권도 티 입고 갈 거니까 그거 빨아놔 줘. 내일 학교에 색깔 점토 가져가야 돼."


  그나마 물병처럼 생긴 간이 정수기를 쓸 때는 아이들에게 물을 일일이 따라줘야 해서 "물 줘"라는 말에 굽신굽신 따라다녀야 했는데, 지난달에 아예 음성 인식으로 물을 따라주는 정수기를 설치한 뒤엔 일이 많이 줄긴 했다. 정수기에 대고 아이들이 "물 줘"하고 말하면 물이 자동으로 컵에 따라지는 편리한 시스템을 보고 한 달에 만 얼마로 이렇게 편리해질 수 있단 사실에 감탄하는 중이다.


  드디어 한 달이라는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은 생업에 복귀했다. 유치원으로, 학교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도 운동도 다시 다니고,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글도 쓸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몸살이 나고 말았다.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면 꼭 내가 몸살이 난다. 방학 동안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워터파크에서 하루 7시간 물놀이, 시골에서 삼시세끼 자연재료로 밥해먹이며 일주일 살기, 땡볕에 바닷가에서 게 잡기, 지하철 타고 가서 영화 보기, 양궁장 가서 활쏘기, 사격장 가서 사격, 과학관에서 각종 체험 수업 참여 등을 하느라 몸이 혹사당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남편은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회사에 출근하고 방학은 오롯이 엄마의 극한 노동을 갈아 넣어 채워진다. 그러니 선생님이 미칠만 하면 방학이 되고, 엄마들이 미칠만 하면 개학을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여름방학은 그나마 한 달인데, 겨울 방학은 두 달이 넘으니 벌써부터 눈동자가 흔들려 온다.

방학 때 다녀온 도자기 만들기 체험


몸살이 나든 말든,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찾는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쉬고 싶지만, 내가 아파도 아이들은 먹여야 하고 챙겨야 하니까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밥을 한다. 양지를 펄펄 삶아 미역국을 끓이고, 배를 갈아 넣어 등갈비를 재우고, 애호박을 나박나박 썰어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며 볶는다. 남편이 오기 전에,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간식을 찾기 전에 얼른 밥을 차려내고 눕고 싶은데 아이들은 식당 테이블에 종업원 호출 벨을 누르듯 나를 찾는다.

   "엄마!"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다시 한번 나를 호출하는 손님이 왕, 아니 귀여운 얼굴의 무시무시한 왕자님들. 이번엔 또 어떤 일을 시키시려고 나를 찾으시나이까?


  "이거 블록 빼서 여기다가 연결해 줘."


  "엄마, 형아 그거 해주고 나랑 풍선 치기 하자. 자, 받아!"


  아주 골고루 부려 먹는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수시로 축복의 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너는 태어나기만 해도 고마운 존재인데 이런 거까지 잘하니 엄마가 놀랄 수밖에 없어, 너는 정말 특별하고 귀하고 복 있는 아들이야, 네 몸에서는 향기로운 꿀 냄새가 나고 꽃 향기가 나, 어쩜 이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쁘고 잘생기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너를 만난 게 엄마에겐 정말 큰 복이야.


하지만 이렇게 앞 뒤 안 가리고 계속 나를 부려 먹는 다면 나도 참을 수가 없다.

  "너희 혹시 엄마를 부려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니야? 어쩜 이렇게 쉬지 않고 나를 부려먹을 수가 있니."


등갈비를 먹으려면 오이와 파프리카의 산맥도 넘어야 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 국을 뜨겁게 팔팔 끓여대고 도마에 칼질을 탁탁 해대며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 결의에 차서 한마디를 내뱉었다.


  "앞으로 혼자서 세 번씩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때 엄마를 불러. 한번 해보지도 않고 엄마를 부르는 건 응애응애 애기야. 애기는 물론 애기라서 앞으로 키즈카페도 못 가고 놀이터도 못 가고 주스나 간식도 먹을 수 없어, 애기니까. 게다가 애기는 유치원이나 학교도 못 가고 다시 어린이집 가서 범보 의자에 앉아있어야 해."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절대 그럴 수는 없다며 "안돼"하고 비명을 지른다. 이제 나를 쉬이 찾지 못하겠지! 어떤 엄마는 하루에 "엄마"를 부를 수 있는 발언권을 열 번씩만 준다는데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지만 그 마음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간과한 것이 있었다. 부모는 절대 자녀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


  내 목소리에 긴장한 둘째가 쪼르르 옆으로 다가오더니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가슴에 모으고 촉촉한 눈망울을 깜빡거린다.

  "엄마, 세 번은 너무 많아. 한 번만 해보고 엄마 부르면 안 돼? 응?"


  바로 '귀여움'이 무기인 그 얼굴로 필살기를 쓰며 내 공격을 무마시키는 것이다. "안 그럼 나 오늘은 엄마랑 안 잘 거야"하고 지키지도 못할 말까지 내뱉으면서.

간곡히 부탁을 할 때 사용하는 '장화신은 고양이' 손 자세


  이제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의 이면에 담긴 뜻을 알았다. 누군가 사랑을 받기만 한다면 누군가는 한없이 베풀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내 입으로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그러니 오늘도 내 등골을 갈아 넣어 너희를 사랑하고 돌볼 수밖에. 그럼에도 뽀뽀 한방이면 사르르 화가 풀리고 반짝이는 눈을 맞대면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엄마는 평생 너희에게 약자일 수밖에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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