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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Nov 09. 2023

'하루 세 번 남편 칭찬하기' 프로젝트

깎아내리는 말은 쉽지만 세워주는 말은 에너지가 든다.

저녁 식사는 대화의 장이다. 새벽에 출근하는 대신 저녁 식사는 집에 와서 하는 남편 덕분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다 같이 밥을 먹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집어 먹고 자리를 떠나면 남편과 나는 콤부차를 나누어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은 회사에서 들은 새로운 소식이나 요즘 하는 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나는 아이들이나 주변 엄마들에 관한 고민을 나눈다. 점심 식사 때는 주로 남편이 나에게 전화를 거는데 회사 급식이나 점심 메뉴같이 소소한 주제부터 주말 일정 등에 관한 스케줄을 조정한다. 늘 비슷하지만 서로의 반응과 공감 덕분에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보잘것없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않은 내 이야기가 상대방을 통해 존중받는다.


  요즘 남편은 허리 통증 때문에 괴로워한다. 퇴근 후에는 병원이 문을 닫고, 휴가를 쓰자니 일이 많아 불가능하다. 저녁 식사 후 남편 허리에 파스를 붙여주며 짠한 마음이 일었다. 병원도 마음대로 못 가는 직장인의 비애가 새삼 크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이 더 많아질 텐데 언제쯤 편하게 병원이라도 다닐 수 있을까? 알싸한 파스향이 코끝을 찌르며 이 파스가 근육통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도 주물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가 붙어있는 남편의 등이 가엾게 느껴졌다.


  로마제국 16대 황제이자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으며 비결은 모두 내면에, 본인의 사고방식에 있다고 말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주로 흑역사를 떠올리며 불안과 우울이 찾아온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주문을 외우듯 내가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용납받았는지 되새겨보는 것이다. 유치하지만 이 방법은 강한 힘을 발휘한다. 수치스럽고 자괴감 드는 과거에 지나치게 함몰되는 것을 방지한다. 의도적으로 잊고 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현재에 나를 둘러싼 소중한 것들에 눈을 맞추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다 이 방법을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써보기로 했다. 강력한 대마법사가 된 것처럼 긍정의 언어라는 주술을 부려보는 것이다.


  남편의 등에 붙은 파스를 마음에 붙여 줄 순 없지만, 내가 직접 파스처럼 작용해 보기로 했다. 하루 세 번 칭찬하기. 나이가 들 수록 칭찬해 주는 사람도 적어지는 사회에서 철철 흘러넘치는 칭찬을 하루 세 차례 이상 퍼부어주는 것이다. 갑자기 칭찬을 하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진심이 안 느껴지지 않을까 고민도 되었지만 일단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이 약으로 작용하길 기대했다.


  비 오는 일요일,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남편에게 칭찬을 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운전을 안전하게 참 잘한다. 덕분에 편하게 가서 고마워. 와이퍼는 언제 갈아 끼웠어? 소음도 사라지고 앞유리가 엄청 깨끗해졌네. 주문 내역 보니까 와이퍼도 좋은 걸로 저렴하게 잘 산거 같더라. 시간도 없었을 텐데 그런 것까지 다 알아보고 정말 믿음직하다니까."


  갑작스러운 칭찬에 남편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도 잠시, 남편은 눈을 반짝이며 어깨에 힘을 싣는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이거 내가 와이퍼도 엄청 좋은 걸로 싸게 산 거야. 밤에 인터넷 좀 뒤져봤지. 와이퍼 갈아 끼우는 것도 따라 해 보니까 생각보다 쉽더라."


  칭찬에 덥석 반응하는 남편이 귀여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역시 오빠가 최고야. 나였으면 무조건 서비스센터 가서 비싼 돈 주고 갈았을 텐데. 차도 오빠가 잘 알아본 덕분에 우리에게 딱 필요한 걸로 잘 사고, 아이들 태워다니기도 훨씬 편해졌어. 역시 공대랑 문과대를 복수 전공한 사람은 다르네. 다 갖추었어. 엄청 똑똑해."


  갑자기 칭찬하려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아닐까 곁눈질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볼근육이 광대까지 올라가 웃고 있었다.

  "차 살 때 엄청 알아보긴 했지. 이게 연비도 좋고 유지비도 얼마 안 드는 데다가 고장이 잘 안 나기로 유명해. 내가 공대랑 문과대를 복수 전공해서 고생은 했지만 아는 건 많아진 것 같아. 근데 왜 이렇게 칭찬을 많이 해주는 거야? 기분은 좋다만. 이러다 춤도 추게 생겼어."


  손으로 커피를 찾는 남편에게 얼른 텀블러 뚜껑을 열어 건네며 대답했다.

  "오빠 춤출 때까지 칭찬 좀 해볼까? 우리가 어릴 때나 남에게 칭찬받지 어른되서는 칭찬받기 힘들잖아. 사회에서는 더 그렇고. 그래서 내가 칭찬해 주려고. 진짜로 잘하고 있는 거 맞잖아. 회사에선 맨날 뭐 못한다, 부족하다 이런 말만 잔뜩 들으니까 집에서라도 그런 말은 그만하고 잘하는 걸 당연하게 넘기지 않고 칭찬해 줄게. 하루에 세 번 이상 칭찬하기가 내 목표야. 그렇다고 거짓말로 하진 않아. 진짜 잘하는 걸 잘한다고 하는 거야. 근데 오빠가 마시는 이 커피는 뭐야? 향이 엄청 좋다. 비 오는 날 커피 향이 가득 퍼지니까 기분 좋다. 커피 고르는 센스도 좋네."


  남편은 텀블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거 커피 향 좋지? 캐러멜 향 나는 건데 내가 좋아하는 거야. 다음에 또 사야겠다. 칭찬해 주니까 내가 진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힘이 난다. 고마워."


비 오는 날, 차 안을 가득 채우는 커피 향


  남편에게 칭찬을 해주다 보니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한번 칭찬을 시작하니 칭찬거리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나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정화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뒷자리에서 잠자코 창밖을 구경하던 아이들이 난데없이 오늘 아침 일을 꺼냈다.

  "엄마, 그런데 나 오늘 아침에 혼자 가방 챙기고 아빠한테 안아달라고도 안 하고 혼자 걸었다! 어젯밤에 형아랑 젤리도 나눠 먹었어. 엄청 맛있는 거."


  막둥이의 말에 첫둥이도 끼어들었다.

  "엄마, 나는 동생 안전벨트도 내가 해줬어. 짐도 내가 들어주고 색종이로 중장비 시리즈 만든 것도 동생 다 줬어. 갖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은 내가 남편과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것이다. 엄마가 아빠를 칭찬하자, 본인들도 칭찬을 받고 싶어 잘한 일들을 나열하게 시작했다. 본인이 더 칭찬을 받고 싶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은 제지하고, 잘한 일들에는 손뼉 치며 칭찬을 퍼부어주었다. 그러자 나에게도 칭찬이 돌아왔다.

첫째가 색종이로 만든 중장비 시리즈


  칭찬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어렵기도 하다. 괜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자꾸 투덜대려는 내 마음을 부인하고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제스 레어는 "칭찬은 인간의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햇볕과 같아서 칭찬 없이는 자랄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비난이란 찬바람을 퍼붓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칭찬이라는 따뜻한 햇볕을 주는 데 인색하다"라고 꼬집는다. 불평은 빠르지만 감사는 느리고, 깎아내리는 말은 쉽지만 세워주는 말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한번 다짐한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은 순간의 감정을 넘어서 존재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남편에게 하루 세 번 칭찬해 주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늘 같은 일상에 잘했다고 칭찬해 줄 말이 떨어져 간다. 그래도 그 반복되는 일상을 잘 살고 있다고 칭찬한다. 칭찬과 감사는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찾아온다. 칭찬을 하기 위해선 감사가 보여야 한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다 줘서, 설거지를 해줘서, 밥을 맛있게 먹어줘서, 주말 야구장 티켓을 예매해 줘서, 아이 턱에 약을 발라줘서, 연락해 줘서, 핸드폰 요금제를 알아봐 줘서, 아이 샤워를 시켜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칭찬을 하다 보니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격려해주고 싶어 진다.  퇴근 후 남편이 집에 왔을 때 격하게 반겨주자 다짐한다. 매일 같은 하루를 살아도 매일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누군가의 격려와 응원 덕분이 아닐까.


  독일의 대문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칭찬을 인격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을 칭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남을 자기와 동등한 인격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라며 나와 타인을 동격으로 볼 때 칭찬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와 가까운 사이일수록 존경과 경외심을 갖아야 한다. 나와 타인에 대한 부정을 멈추고 숨결에 정다운 알심을 담아 흘려보낸다. 햇살처럼 따뜻하고 꽃바람처럼 부드러운 진심을 담아 우리를 기뻐한다. "사랑은 '당신은 누구예요?' 하고 물을 때 '나는 당신입니다'라고 답해야 문이 열린다"('이븐 하라비'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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