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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l 24. 2024

남편의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아이들보다 남편을 먼저 챙기려 노력한다

우리 집엔 마흔을 갓 넘긴 남자가 있다. 원래대로라면 불혹에 이르러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때라지만 어디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던가. 남편은 세상 일에 쫓겨서 판단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해내고 고민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요즘 마흔은, 불혹이 아니라 '혹'이다. 미완성에 흔들리고 좌절하고 지금까지 뭐 했나 싶어 주눅 들고 가족에게 이유 모를 미안함 마저 느끼며 바람에 부대끼는 연처럼 펄럭인다. 내 눈엔 여전히 스물세 살에 교회에서 만났던 앳된 오빠 같은데 말이다. 어느새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 되었다. 나는 그런 남편이 애틋하고 안쓰럽고 자랑스럽다. 지금의 그 고민과 번민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는 까닭이다.


  간밤에 비도 오겠다, 오랜만에 오징어 부추전을 부쳤다. 부추와 애호박을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짧게 자르고 양파도 얇게 채 썰었다. 번거롭긴 했지만 좋아할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냉동실에서 오징어 한 마리도 꺼내 손질해 넣었다. 달걀 하나를 깨뜨려 부침가루와 섞었다. 지글지글 기름이 예열되자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다가와 묻는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오늘 저녁 메뉴가 뭐지?"

아직 기름에 반죽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다가오는지 정말 개코가 따로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침개라는 걸 깨달은 첫둥이는 신나서 소리친다.

  "야호! 꽃동아, 오늘 저녁 부침개래!"

형의 외침을 들은 꽃동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맞받아친다.

  "꺄! 좋아! 형아 우리 엄청 많이 먹자."


  노릇노릇하게 익은 오징어 부추전을 접시에 올리자 아이들의 젓가락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오징어가 사라지고, 이어서 먹기 좋게 잘라둔 야채 조각도 게눈 감추듯 아이들 입속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잘 먹는 아이들이 귀엽다는 듯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샐러드만 집어 먹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누가 아빠, 엄마를 먼저 챙겨주나 봐야겠다. 가장 어른인 아빠 먼저 드셔보세요, 한 다음에 먹는 건데 누가 이렇게 예의를 잘 지키는 어린이인가 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속내를 알아차린 첫둥이의 젓가락이 부침개 하나를 집어 아빠 입으로 향한다. 뒤이어 막둥이도 형아를 따라 부침개 하나를 내 쪽으로 내민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아이들은 흡사 동물의 왕국처럼 빨리 먹고 싶어서 달려들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어른이 드셔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 집의 가장 어른은 아빠고 항상 아빠먼저 드셔보세요, 해야 해."


  아이들은 오징어를 잘 먹는다. 원래 맛이 없다며 잘 안 먹으려 했는데 오징어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한번 맛 들이면 헤어날 수 없음을 설명해 주자 이젠 서로 먹겠다고 자기 앞접시에 챙겨간다. 이번에도 부침개에 있는 오징어 먼저 사냥하듯 낚아채길래 아이들을 가로막았다.


  "이제 그만! 아빠도 드셔야지. 우리 집에서 제일 피곤하고 고생하는 사람은 아빠야. 아빠도 오징어를 드셔야 해."


  그러자 첫둥이가 "왜 아빠가 제일 피곤해? 왜 오징어를 먹어야 해?"하고 묻는다. 이게 물을 일인가 싶지만 당연한 것도 아이들은 모를 수 있기에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아빠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회사에 가시잖아. 우리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데 아빠는 새벽부터 셔틀버스 시간 지켜서 나가려면 얼마나 힘드시겠어. 그리고 아빠가 회사에서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덕분에 돈을 벌어다 주시니까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이 맛있는 오징어 부침개를 먹을 수 있는 건 다 아빠 덕분이야. 그러니까 아빠한테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고 먹어야 해."


아이들은 부침개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아빠를 향해 마음을 전한다.

  "아빠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남편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래, 맛있게 많이 먹어"하고 화답한다. 아이들은 "엄마, 내일은 호박을 동그랗게 해서 호박전 해주세요. 엄청 많이!"하고 말하며 행복한 상상에 빠져든다. 나도 "그래, 엄청 많이 해줄게. 뭘 좋아하는지 뭘 먹고 싶은 지 앞으로도 엄마에게 그렇게 알려줘야 해."하고 평상시에 자주 하던 답을 했다.


  오징어는 저칼로리에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해 혈관 속 중성 지방을 낮춰주고, 피로해소에 좋다고 한다. 남편의 그릇에 오징어를 덜어주며 생각했다. 남편의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8시간, 말이 좋으니까 8시간이지 사실은 하루 온종일 주 5일을 회사에서 보내며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고될까? 주말과 공휴일, 일 년에 몇 개 안 되는 연차만을 바라보며 살기엔 너무 쉼이 부족하지 않나 걱정도 된다. 쉬는 날조차 "아 벌써 내일 회사 가는 날이야? 진짜 가기 싫다"하고 하소연하는 걸 보면 휴일조차 회사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혼까지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든다.



남편이 휴대폰 요금제를 바꿨다고 했다. 한 달에 11기가의 LTE 용량과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집 근처의 영화관은 최근에 문을 닫았는데, 지하철로 두 정거장만 가면 영화관이 또 있단 걸 이제야 알았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은 기분이 좋을 때 얼굴에 다 드러난다. 광대에 힘이 들어가 위로 들썩이고 귀도 살짝 위로 올라간다. 눈도 평소보다 좀 더 크게 뜨고, 입은 그래도 너무 신난 걸 감추고 싶은 지 살짝만 벌리고 나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저 표정은 자기가 혼자 한 달에 한 번씩 영화를 보러 가도 되는지, 그럼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뜻이다.


  몇 달 전에 내가 휴대폰 요금제를 바꾸려 할 때 그렇게 영화 관람이 포함된 요금제로 바꾸라고 추천을 하더니, 내가 집 근처 영화관도 없어지고 애들 없을 때 집에서 글 쓰고 쉬는 게 더 좋다고 끝내 거절하자 결국 자신의 요금제를 바꾼 것이다. 얼마나 보고 싶길래 저렇게 찾아내서 바꿨을까 싶어서 헛웃음이 났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고, 혼자서도 수시로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아이가 어려 밤잠을 설치던 때에도 한 번씩 빨간 눈을 하고선 밤늦게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그만큼 영화를 좋아했으니, 이것도 남편의 묻어뒀던 행복이겠다 싶어 좋은 요금제를 잘 찾았다고 칭찬해 주었다.



  남편은 퇴근 후에 여전히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까지 하고서 수영복을 챙겨 집 근처 구민체육문화센터로 향한다. 한동안 지겨워졌는지 수영이 안 맞는 것 같다고 그만둘지 고민하더니 가슴에 근육이 붙자 뿌듯함을 원동력 삼아 군말 없이 수영장으로 향한다. 수영장 앞에 시립도서관이 있어 요즘엔 도서관에 들러 책도 좀 보는 눈치다. 집에 빌려 온 책 제목을 보니 '돈 걱정 없는 삶', '퇴사하겠습니다', '퇴사는 무섭지만 돈은 벌고 싶은 월급쟁이들에게', '카페창업 ㄱㄴㄷ' 같은 책들이다. 제목부터 남편의 마음이 너무 뻔하게 드러나 웃음이 났다. 내가 글 쓰는 책상 옆에 저 책들을 올려둔 걸 보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마치 책 제목으로 나에게 편지라도 써놓은 모양새다.


  남편의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남편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 선호하는 책 취향도 다르고, 옷이나 머리 스타일에도 관심이 없다. 집에서 쉬는 것도 좋아하지만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즐긴다. 나는 일단 읽어보고 두고두고 읽을 예정이거나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하지만, 남편은 제목이 마음에 들면 일단 구입한다. 자주 듣는 음악 취향도 다르고 입맛도 좀 다르다. 남편은 뭐든 잘 먹긴 하지만 내 입맛보다는 좀 더 달고 기름진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남편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을 땐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옷걸이에 걸어둔 옷들 중 어떤 옷을 자주 입고 출근하는지, 어떤 신발을 잦게 신는지, 어떨 때 진짜 웃음을 짓고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 주시한다. 이건 남편뿐 아니라 누구라도 관심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하고 싶을 때 유용한 방법일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각기 다른 방식과 순간에 행복을 느끼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든 아이에게든 내 취향보다는 그들의 취향을 반영해 물건을 구입해 주려 노력한다. 옷, 신발, 미용실 예약, 요리 등 내 마음엔 안 들어도 자기만족이 중요하니까 굳이 요구하진 않으려 한다. 대신 남편이라면, 내 아이라면 이 상황에 어떤 걸 선택했을까 상상해 보고, 가능할 땐 두세 개의 보기를 주고 직접 고를 수 있게 돕는다. 부부는 닮아간다지만 영영 닿을 수 없는 구석도 있다. 그 구석을 존중하고 배려할 때 각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도 커진다고 믿는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아이들보다 남편을 먼저 챙기려 노력한다. 아이들이 소중하지만 남편의 중요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남편의 노력으로 우리 가족은 안전하고 평안한 가정을 이루고 일상을 영위한다. 아이들은 앞으로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것을 구경을 하며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겠지만, 지금 남편은 내가 아니면 누가 챙기고 배려해 주며 보살펴줄 수 있을까? 그건 시어머니도, 회사도, 친구의 영역도 아니고 나와 남편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약속이다. 남편과 서로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도 시시콜콜 나누고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며 삶의 고단함과 기쁨을 수시로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행복은 각자가 찾고 향유해야 할 영역이지만, 내가 그 행복에 한 숟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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