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는 느낌 속에 머물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언가를 담는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내가 가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들을 그리곤 했다. 초등학생 때 주로 그렸던 것은 가정형편 상 가질 수 없지만 살고 싶은 '집'이었고,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는 주로 나와 일상에서 만나거나 대화할 수 없는 먼 곳에 존재하는 '좋아하는 이성'이거나 나의 마음과 상반된 고요한 '풍경'이었다. 틈만 나면 그것들을 그림으로 담아내곤 했다.
미대에 진학한 후에는 자기 안의 고인 것들 이를테면 나의 시선, 욕구, 감정, 생각, 신념 등을 담아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뭔가를 바라거나 느끼거나 골똘히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진학하기 이전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오히려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그나마 졸업 후에는 거의 그리지 않았다. 아니 그리지 못했다. 마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퇴화해 버리는 것처럼, 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잃어버렸다. 아주 오래동안.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그림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그림을 그릴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타인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그림에 대한 동경'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극이 되어 주었다. 에곤 쉴레의 그림을 좋아했고, 익숙하지 않은 현대화가들의 몽환적이고 환상 같은 색과 형태에 매료되었다. 그런 그림을 보고 나면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참을 걸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그 마음속에 오래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를 진정시켰다.
보는 것만으로 됐어
그림을 그리지는 않아도
그러다 다시 그림을 끄적이기 시작한 것은 내가 그림으로 담아두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면서부터 였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마음을 사로잡는 대상이 생기면 그림을 그렸다. 종이에 연필로, 펜으로, 물감으로 또는 컴퓨터 안에 내장되어 있는 각종 툴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담아두고 싶어 할 만큼 좋아하는 그 대상 밖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하나의 그림이 마무리가 되면 마치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행여 그리다가 끝을 내지 못하고 멈출 때에도 다음에 계속 그릴 어느 날을 기약하는 것이 또 다른 설렘으로 남았다. 그렇게도 그리는 것 자체가 버겁더니.
아마도 미대에 진학을 했던 것이 내게는 그림에 대한 순수한 욕구를 잃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전공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었다. 뭔가가 되고 싶기에 그림 안에 '남들과 다른 무엇'을 담으려고 했고, 누가 봐도 나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나만의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내 안을 휘집어서 꺼내지 지도 않는 것들을 낚아채 끌어올린다는 것이.
하지만 그림을 그렸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그림이 아닌 다른 일로 '뭔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것이 '노력에 비해 그다지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낄 무렵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옅어져 있었다.
나는 뭔가가 되고 싶지 않아
그냥 하고 싶은 걸 할 뿐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작은 스케치북과 그림도구를 넣은 가방을 둘러메고 살아온 곳과 다른 생경한 풍경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 그곳에서 낯설고 설레는 마음을 온전히 느끼며 풍경을 그림에 담는 일 말이다.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아 '머리가 떠올리는 이미지'와 '손으로 표현되는 것'의 차이가 크다. 언젠가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지는 날을 기다리며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끄적거린다. 종이와 펜이 닿을 때 촉감과 소리로 느껴지는 마찰, 오래 동안 그리워했던 건 자장가 같은 이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