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낯설고 싶어서
그림을 찾아 나서곤 한다.
화려하거나 단조롭거나, 은유적이거나 직설적이거나, 풍자적이거나 몽환적이거나, 그림이 시선을 잡아 당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몸은 줌인했다가 줌이웃하기를 반복한다. 규칙적이지는 않다. 그림이 걸려진 공간 속으로 걸어 갈 때 본 공간과 다음 코너로 돌아설 때 되돌아본 공간은 저마다 기분 좋은 낯섬으로 남는다.
크고 작은 면들속에 채워진 강렬한 색깔이 마음에 드나 싶다가, 인물들의 오묘한 눈동자, 그 시선이 나의 동선을 쫓아 오리라고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좌우를 오가며 응시해 본다. 따라오지 않는다. “넌 딴 생각에 빠졌구나! 뭘 생각하는 거지?” 눈동자의 주인이 하고 있을 생각을 상상해 본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이지만, 그것들을 아우르거나 담아낸 것들로 인해 비현실적인 생경함을 자아낸다. 지구상의 생명체에 대한 거대한 비밀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경이로움에 휩싸인다.
삶 속의 여러 감정이 썸뜩한 모습으로 상징, 누군가 나를 들여다 본 것 같은 느낌이 스민다.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주 작고 단순한 모티브가 묘한 상상을 부른다. 담담한듯 함축적이다. 그림을 보는데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상상이 여백만큼 증폭된다. 반대로, 몇 줄의 문장이 시각적 상상을 유발한다. 머리 속에 영사기가 작동한다. 휘리릭, 상상속의 장면들이 재빠르게 재생된다.
전시장이 아닌 스트리트에서, 창고 같은 구조물 안에서, 분명 카페의 문을 열고 진입했는데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 같은 문을 열자마자 순간이동을 한 듯 의외의 군상들을 마주하며 압도감과 흥미를 느끼기도 한다. 시키지 않았음에도 그들을 마주하고 노려본다. “그래! 다 덤벼!” 뭔가 맞서낸 느낌이 든다.
일상이 반복적으로 흘러갈 때, 어제의 생각이 오늘과 다르지 않고 내일도 그러하리라는 느낌이 들때, 무기력과 권태가 몰려온다. 평상시에는 다르지 않다는 게 안정감을 주었는데, 가끔은 다르지 않음이 숨막히게 위태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안정적이라고 믿으려고 애를 쓰는 내가 느껴질 때 그렇다.
나는 이럴 때 문득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내 눈이 이전에 본 적 없는 것에 홀리듯이 고정되는 것을 느끼고 싶을 때. 낯선 것으로 위태로움을 덜어내고 싶어진다. 그림을 보고 난 후 전시장을 빠져 나와 걷는 거리 속의 풍경은 보기 전의 것과 다르다. 잠시 그림에서 느꼈던 황홀한 색감들이 오버랩되는 것 같다.
이 풍경을 그림에 담으면 어떨까?
그림 그리고 싶다.
어제에는 분명 없던 생각이 일상 속에 끼어든다. 단지 하나의 시그널이 바뀐 것 뿐인데, 사는 게 다르게 느껴진다. 낯섬이 가지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