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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Jun 22. 2020

연차 쓰겠습니다!

삶 속의 브레이크 타임

아무런 자극이 없다면,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삶의 휴식에서 만나는 자극들은 일종의 '조건'이 되고, 그에 의해 생각에 빠진 후 나만의 독백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반사'가 된다. 조건반사, 둘의 관계는 이랬다. 


삶 속에서 예민함을 잃어버린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을 받고 나만의 생각을 읊조리는 눈 동그랗게 뜬 호기심 많은 사막여우가 아니었다. 동물원 급식 생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미련스러운 곰이 되었다고 할까? 나태함에 젖어 찍어내듯 일상을 사는 곰에게도 가끔 권태는 찾아왔다. 다가오는 내일이 오늘 같다면, 코를 박을 접시물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렇다고 코가 충분히 잠길 수 있는 대접까지는 필요 없었다. 그래도 때 맞추어 나오는 급식은 소중하니까. 


연차 내겠습니다!


그런 날이면 외쳤다. 아무도 안 말렸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옷가지를 주워 입고 잘 먹지도 않던 아침밥을 챙겨 먹는다. 일을 하러 나갈 때도 챙기지 않던 것을 굳이 연차를 낸 날에 챙기는 까닭은 여느 때보다 제법 많이 다리품을 팔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리 보아둔 눈요기 거리를 찾아 집을 나선다. 십중 팔구는 혼자이기를 택하고, 희박한 비율로 많아봐야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의 사람들과 함께한다. 왠만하면 내 안의 자극에 집중하기 위해 가장 많이 몰입을 방해하는 '타인들'을 배제시킨다. 흔히 '연차를 내겠다'는 말은 '혼자 있고 싶다'는 것을 의미했다. "잘 놀다 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의례히 이렇게 말했다. 그런 시간이 없으면 나머지 일상의 대부분이 짜증으로 범벅이 된다는 것을 익히 몸소 겪었던 까닭이었다. 


태생이, 혼자이길 선호하는 종족


나는 그런 부류에 속했다. 형제자매가 없는 집에서 나고 자란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때때로 "외롭지 않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그걸 느낄만큼 내 안이 고요하지가 않았다. 주로 어딘지 모를 방향에 시선을 두고 반쯤 입을 벌린 채 눈만 껌뻑거린다는 것은, 내 안의 여러 자아가 둘러 앉아 입담을 과시하고 있을 때라고 보면 맞았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떠들어대다 보면 무언가 흐릿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의 고요함은 그렇게 무수히 많은 소란의 끝에나 건져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즈음에야 살짝 '외로움'이 올라온다. 그렇게 하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람이 그리울 틈도 없는 삶이란 내겐 버거운 것이었다. 적당히 그리우려면 적당히 외로워야 했다. 




타인들로부터 적당히 분리되어 하루를 보낸다. 내가 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하루, 더 머무르고 싶은 것 앞에서는 더 오래 서 있고 지나치고 싶은 것들은 금새 돌아서는 일에 아무런 참견이 없는 하루는 오롯이 세상의 자극을 받아들이기 위한 감각이 열려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자극은 어제와는 한 끝 다른 생각들을 불러오거나 일상에서 채 매듭을 짓지 못했던 욕구들의 파편을 끼워 맞춰 하나의 완편된 생각을 드러내게 했다. 그런 날들을 나는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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