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온 마스>가 불러온 결정장애
이건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에는 스릴과 유머가 공존하는 레트로 한 타임슬립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라고 해도 호기심을 지속시키는데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작이 우리나라 저작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너무나도 로컬라이징이 잘 되어 있다'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과거의 향수를 지독히도 깊게 자극하는 매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곱씹어 보게 만드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단순한 타임슬립 스토리가 아니라는데 있다. 꿈을 꾸는 것인지 미친 것인지 알 수 없던 그 공간에서 현실로 돌아온 이후, 주인공이 사고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가기 전까지 조사했던 자료를 되짚어 보는 장면에서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을 본 것 같은 소름이 돋는다. 꿈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닌 그것은 주인공의 무의식이었다.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 중
어느 것이 진실이지?
이 의문이 떠올랐다면 아마도 선택의 기준에 '진실에 대한 편향'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는 동안 경험에 의해 의식할 수 있는 세계는 진실이고 의식할 수 없는 세계는 진실이 아닌가. 의식할 수 없는 세계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하거나 잘못된 것인가. 마음속에서 결정장애가 일어난다. 생각해 온 진실의 개념에 균형이 생긴 탓이다. 사실 두 세계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의 주인으로서 어느 세계를 선택할지를 놓고 볼 때 진실 따위는 선택의 조건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 여부만이 선택의 유일한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그저 하나의 개인이 세상을 바라본 관점이지 세상의 온전한 팩트라고 할 수도 없다. 누구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완전체를 본 인간은 없다. 그러니 오직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왜 그 방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무의식은 방향과 이유를 자기 자신보다 더 선명하게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 자신의 근원적인 욕망과 트라우마를 잠재시켜 놓은 채 살아간다. 편모의 슬하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을 것 같은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로 자라 온 주인공의 무의식 속에는 그가 그런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와 욕망이 숨겨져 있다.
그는 그때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희미한 기억 속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얘기하는 것처럼 건실한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다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타지에서 애석하게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싸고 형사들을 목격했던 것과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아버지를 살인자라며 조롱과 혐오를 담은 낙서들을 해대는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그는 철저히 외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스스로 멀어져 감정적 은둔자가 되어 버린 주인공에게는 뿌리 깊게 스며든 외로움이라는 심리적 취약점이 있었다. 과거의 주먹구구식 수사법과 내 것과 네 것이 불분명한 소통방식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점점 그들과 동화되어 간 것은 그 안에 가두어 놓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그리움은 '의지할 대상이 없는 결핍'에서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가지는 트라우마다.
그 앞에 4명의 동료가 나타난다. 이미 의식불명이 되기 전에 주인공은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수사 파일에서 그들의 이력을 본 적이 있지만 무의식 속에 나타난 그들의 성격은 오로지 주인공의 상상 속의 인격이었을 것이다. 팀의 리더이자 든든한 맏형 같았던 강동철 계장, 부서 내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수성과 따스함을 가지며 필요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윤나영 순경,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우직한 이용기 경사, 신참이라 서툴면서도 수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품고 있는 조남식 경장은 주인공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되어간다. 어쩌면 그들은 주인공이 동경하는 아버지의 모습이거나 의지하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일 수도 있다. 또 현재의 자신의 방식에 대한 회의감에서 나온 반대 성향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고 지난 시절 어리숙하지만 열정이 있었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들은 주인공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것, 즉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욕망이다.
그의 마음을 흔드는 두 개의 목소리가 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수시로 현실에 대한 인지를 촉구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무의식을 실제로 혼동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의 마음이 끌려가는 것을 경계하도록 부추기고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다그친다. 삶에서 알 수 없는 충동을 제어하는 목소리다. 이와 다른 목소리도 존재한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때 선택의 조건이 아니라 선택을 해야 할 당사자인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 갈등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자신이 진정 바라는 방향이고 이유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것으로 체득된 타인의 생각들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목소리다. 주인공은 후자의 목소리에 기인한 선택을 한다. 그 목소리는 윤나영 순경에 의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재현되지만 결국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그의 마지막 선택은 옳았을까? 아니, 어떤 선택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을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자신의 무의식과 의식이 혼재된 사람에게는 세상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보이겠구나'라는 것 말이다. 엄연히 명확한 현실을 두고도 허상을 실제적인 것으로 느끼고 그것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 허상이 어떻게 현실과 분리되어 인지되지 않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고 할까? 드라마 속 주인공의 선택이 완전히 터무니없게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지 몰라도 주인공은 가장 그 답게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