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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y 27. 2023

시청역 옆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호퍼의 전시와 원화를 보는 맛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주 찾았던 미술관은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과 예술의 전당 미술관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정동길에 있어서였고, 예술의 전당 미술관은 '미술과 놀이'전이 매년 열려서였다. 아이들이 10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두 미술관으로 향하던 발길은 자연스레 끊겼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입시 공부에 취미 생활에 저마다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어서였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미술관은 영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두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길도 뜸해졌다. 그런데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을 부러 찾을 일이 생겼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 때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은 2호선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1호선 1번 출구나 2호선 12번 출구를 이용해 찾는다. 조금이라도 덕수궁길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서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덕수궁길을 거쳐 미술관을 찾았다. 


에드워드 호퍼는 내게 각별한 작가다. 그의 작품을 지인에게서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동생도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동생과 함께 호퍼의 전시를 찾았다. 각자의 집에 걸어둔 <바다 옆 방>의 원본을 보고 싶어서.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그림은 전시회에 나와 있지 않았다. 동생도 나도 아쉬운 마음이 너무 컸다. 


그래도 전시회는 상당히 흡족했다. 호퍼의 작품을 골고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1968)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호퍼의 다큐멘터리였다. 시간이 너무 길어 (상영시간이 1시간 34분이다)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 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여러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큐멘터리 제목은 <호퍼: 아메리칸 러브스토리>.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호퍼의 키가 190cm를 넘었다는 것, 사교적인 아내와 달리 호퍼는 대인기피라 해도 무방할 만큼 과묵했다는 것, 빛에 몰입하고, 캔버스를 영화 프레임처럼 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1~3층까지 3개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큐멘터리는 1층 전시관에서 상영한다. 전시회를 방문하는 이라면 지나치지 말고 꼭 보기를 권한다.


1층 전시관은 호퍼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조세핀을 위한 공간 같았다. 그녀가 호퍼에게 끼친 영향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호퍼와 함께 관람한 연극 티켓을 비롯해 호퍼 작품에 대한 그녀만의 기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퍼의 아내 조세핀은 호퍼와 뉴욕예술학교 동문으로 수채화에 능했는데 호퍼는 그녀에게서 수채화를 배웠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둘의 수채화를 접할 수 있는데 그녀의 수채화는 물을 듬뿍 사용해 가볍고 밝으며 투명한 반면 호퍼의 수채화는 색감이 짙고 색의 대비도 강해 경쾌하면서도 유화적인 느낌이 강했다. 조세핀은 다큐멘터리에서 화가로서의 열망을 드러냈지만 실제로는 호퍼의 매니저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수채화를 보며 어쩌면 그녀는 호퍼의 그림을 보며 자신의 재능에 좌절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와이오밍의 조>, 1946.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아내 조세핀을 그린 것이다. 자신만을 그리기를 원했던 아내의 고집 때문이었다는데 그보다는 사교적이지 못했던 호퍼의 성격상 곁에 있는 아내가 가장 그리기 쉬운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고 있거나 그림을 그리는 조세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잠자는 조 호퍼를 그린 습작>, 1940~45.


2층에서는 파리와 뉴욕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을, 3층에서는 여행을 다니며 스케치한 그림과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층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어차피 원화의 느낌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어 그리 아쉬워하지 않았는데 꽤나 문학적인 제목을 지닌 <오전 7시>라는 작품을 찍지 못한 건 좀 아쉬웠다. 햇살과 그림자의 대비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한참을 그림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전시관을 방문하는 이라면 꼭 눈여겨보시길 바란다.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을 찾는 묘미에는 정동길이 한몫한다. 방문한 날도 날씨가 너무 좋았다. 햇살을 사랑했던 호퍼가 보았더라면 이곳의 햇살 역시 그림으로 남겼을 것 같았다.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이 처음 개관한 것은 1988년이다. 그때는 경희궁 내에 있던 서울고등학교 건물을 보수해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200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는데 르네상스식으로 지은 대법원 건물 전면부(파사드)만 그대로 보존한 채  재개관했다고 한다. 기존의 대법원 건물은 1928년에 지어졌는데 일제강점기에는 법원 건물로 사용되다가 1948년부터 대법원 청사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95년 서초동으로 대법원이 이전하면서 67년간의 법원 역사가 마감되었다고 한다[서울시립미술관 - 나무위키 (namu.wiki) 참조].



전시를 다녀오고 누군가의 그림을 원본으로 볼 수 있다는 행운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 미술관 뜰에도 배형경 작가의 청동 인물상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야 이 작품도 원본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이 인물상이 마음에 드는 건 성별을 나타내는 묘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 작가는 그저 몸 형태만 빌려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한다.



술관에 걸린 모든 작품은 화가가 그려낸 유일무이한 결과물이다. 어쩌면 미술관을 찾는 행위는 그러한 결과물을 손쉽게 접할 있는 행운을 거머쥐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호퍼의 전시가 새삼 각별하게 다가왔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SeMA - 전시 상세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seoul.go.kr)

에드워드 호퍼 - Daum 백과


https://naver.me/5ewgc0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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