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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Sep 09. 2022

격렬하게 운동하기 싫은 금요일

금요일 오전 10시. ‘죄송한데요’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쓴다.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고 어지간히 애쓰다가 결국에는 지고 말았다. 전날 보냈으면 더 좋았겠지? 미안함과 민망함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라 그냥 갈까, 아주 잠시 생각했지만, 잠깐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한다. 그만큼 격렬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장 경련이 와서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떻게든 가보려고 했는데, 힘들어서요.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메시지를 받아든 상대는 핑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장 경련이 온 건 사실이지만, 종일 배를 쥐고 있어야 할 만큼 아픈 건 아니니까, 핑계라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 그저 약속을 어긴 죄인일 뿐이다. (죄송합니다!) 미안한 마음 뒤로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금요일이다. 오늘만 출근하면 주말이다! 일주일 유예한 약속을 받아들고 나서야 금요일의 기분을 만끽한다. 저녁은 뭘 먹지? 곁들일 술은? 모르겠다. 일단 커피부터 마시자.

 


여유 있게 출근하는 금요일. 느지막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와 마시는 커피 한잔이 꿀맛이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로는 카페라테가 좋다. 냉동실에 얼려뒀던 베이글 반쪽을 굽고 꾸덕한 크림치즈와 설탕을 반만 넣어 (친구가) 만든 무화과잼을 두껍게 발라 한 입 꽉 베어 문다. 꼭꼭 씹어 넘기기 직전에 커피를 한 모금 머금는다. 이때 쌉싸름한 고소함이 극대화된다. 이 한 입을 위해 일주일을 버텼지, 싶다.

 


캡슐 원두는 매일 다르다. 그제는 하우스 블렌드, 어제는 콜롬비아, 오늘은 이탈리안 로스트…. 원두에 따라 아주 미묘하게 커피의 맛이 달라지는데,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입맛에 맞는지를 결정하는 건 여유다. 금요일을 금요일답게 보낼 수 있는 여유. 제아무리 유명한 커피숍에서 한 방울, 한 방울 정성을 다해 내린 커피인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마음이 조급해진다면, 그저 빨리 마셔버려야 할 귀찮은 음료일 뿐이다. 커피와 베이글의 맛, 그걸 즐기고 있는 나의 감각, 먹는 행위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금요일의 여유가 이렇게나 소중하다. 30분도 채 안 되는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금요일을 금요일답게 보내기 위해서 약속을 일주일 후로 유예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자고로 금요일은 나사를 풀고 느슨하게 보내도 손가락질할 사람이 없지 않나. ‘불금’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지난 나흘을 치열하게 살아낸 우리를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날.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E’ 성향이지만, 일주일에 하루쯤은 혼자 조용하게 지낼 시간이 간절하다.

 


이렇게나 소중한 날, 나는 운동 약속을 잡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 치료를 받으러 간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것만 같아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허리 디스크에 목 디스크까지 겹치니까 툭 하면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정형외과에서 도수 치료에 물리 치료까지 동원해봤지만, 할 때뿐이다. 그동안 들어간 경제적인 비용만 따져보면 천만 원은 우습지, 싶다. 머리로는 안다. 이 방법들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다는 걸. 직접 몸을 움직이고 근육을 단련해야 버틸 수 있다는 것도. 임신과 육아, 복직, 일과 가정의 양립을 해내는 동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땅을 파고 들어갈 정도가 되자 꾸역꾸역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롱런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 알지만, 금요일에 운동이라….

 


육아하는 회사원은 시간에 쫓긴다. 출·퇴근 시간, 등·하원 시간에 쫓기다 보면 뒤로 미루는 것들이 있는데, 운동도 그중 하나다. 아, 육아하는 회사원 대부분이 그런 건 아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고 쪼개 체력을 관리하는 이도 적지 않다. 정말 대단하다. 따라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여러 번 실패하고 ‘역시 나는 안 돼’ 여러 번 무너졌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여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잠을 자거나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러고 싶은데,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허락된 자투리 시간에 몸을 삐걱거리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휴,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스트레스가 넘치다 못해 정수리로 솟구칠 때면 헬스장으로 달려가던 소싯적이 있었다. 속이 울렁일 정도로 강한 비트에 몸을 맡기고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명치를 짓눌렀던 뜨거운 뭔가가 살기 위한 격렬한 몸짓을 이기지 못하고 뜨거운 땀으로, 뜨거운 날숨으로 터져 나왔다.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 바닥을 디딜 때, 후들거리는 다리에 잔뜩 힘을 줬다. 이렇게 또 딛고 일어섰구나. 하루를 잘 이겨냈구나. 잘했어, 그래 정말 잘하고 있어. 이렇게 다리에 힘주고 우뚝 서면 되는 거야. 스트레스받는 만큼 운동 횟수도 늘었고, 운동 후 근육통도 기꺼이 즐기곤 했다. 체력도 나쁘지 않았다.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잠깐 눈만 붙이고 출근해도 거뜬했다.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한때 꽤 친하게 지냈던 운동과 멀어지게 된 데는 성향도 한몫했다.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조차 하고 싶지 않다. 운동 신경을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남들만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사실 억지다. 나보다 먼저 시작한 사람, 매일 하는 사람, 꾸준히 하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사람과 어떻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나. 복직을 앞두고 기구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첫날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 입던 운동복에 몸을 구겨 넣은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 휘적거리는 팔, 다리는 자괴감이 들 만큼 버거웠다. 강사가 알려주는 자세를 표정 변화 없이 유유히 따라 하는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언제 출입문을 박차고 나가야 주목받지 않고 자연스러울까, 절로 고민하게 되더라. 수업을 진행하는 50분 동안 시곗바늘만 쳐다봤다. 석 달을 겨우 채우고 복직과 동시에 안녕을 고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격렬하게 운동하기 싫은 마음, 살기 위해선 해야 한다는 마음이 오늘도 부딪힌다. 일주일에 하루, 겨우 시간을 만들어놓고 쉽게 포기한다. 체력을 회복하려면 더 악착같이 운동에 매달려야 하는데, 만성 피로에 헤어 나오기 어려울수록 김치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낼 게 아니라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인 나를 일으켜 세우기보다 놓아주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운동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까. (달라진다. 아니, 다르다) 아니, 오늘은 그냥 쉬고 싶다고. (지난주에도 그 말 했던 거 같은데) 아직 덜 아픈 게 분명하다.

 


이 글을 쓰는데 여기저기 따끔따끔하다. 이유를 알고 있어서겠지. 휴, 다음 주에는 가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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