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지 순례 - 튀김소보로의 고장
나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빵은 경주의 대릉원 앞 본점에서 갓 구워져 나온 황남빵이지만, 처음 맛보았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빵은 대전의 성심당 튀김소보로였다. 사실 군산 이성당의 단팥빵으로 마음이 잠시 기울어졌을 때도 있었지만, 튀김소보로는 가까이할 수 없어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는 전국의 몇 안 되는 빵 중 하나이다.
‘대전’하면 튀김소보로 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대전이라는 도시에 대한 기억은 튀김소보로밖에 없다. 어찌 보면 대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진짜다. 튀김소보로를 먹기 위해 여행 메이트였던 전주 친구를 대전까지 불러서 만났을 때도, “간 김에 대전의 다른 것들을 보고 오자”라고 했을 때, 결국 어디로 가지 못하고 방황하다 온 적도 있다. 만약 튀김소보로가 동네에서 파는 빵의 맛과 비슷했다면 대전이라는 도시도 기억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빵지 순례와 함께했던 나의 강렬한 기억 속에 튀김소보로가 있다.
튀김소보로를 처음 만난 건 2013년이었다. 일본에서 사귄 캐나다 친구가 반 년간의 일본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대전의 충남대에서 반년의 유학 생활을 보냈는데, 그 친구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직접 대전으로 찾아가서 만났다. 으능정이 거리에서 코리안 BBQ, 삼겹살을 배불리 먹고 디저트를 먹기 위해 대전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전국 3대 빵집 그 첫 번째, ’성심당’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튀김소보로를 처음으로 영접했다. 단팥빵 깨찰빵 메론빵 같은 일차원적인 빵만 먹어 온 나에게 속이 밍밍한 소보로빵에 단팥을 넣고 또 튀기기까지 한 이런 고차원적인 빵은 큰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이런 빵은 없었다. 기존 소보로빵보다 훨씬 바삭한 식감에 속은 달콤한 단팥이 느껴지는 이 빵은 가히 빵계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튀김소보로와 함께 절찬리에 판매 중인 판타롱 부추빵 또한 달콤한 빵의 밀가루 면과 적당히 짭조름한 부추 소의 색다른 조화가 여태 먹어본 적이 없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빵에서 짠맛이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반신반의 하면서 먹어본 빵이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갓 튀겨서 나온 튀김소보로의 맛도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빵 맛이었지만 술렁술렁 막힘없이 넘어가는 부추빵도 만두 속에만 들어가는 재료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달달한 빵과도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조합이었다. 신나게 집에 박스째 사 들고 가니 새로운 맛에 모두가 좋아하였고, 단맛을 좋아하는 아빠는 튀김소보로, 빵 기본의 맛을 좋아하는 엄마는 부추빵 편을 들어주었다.
그 후로 대전에 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성심당에 들렀는데, 사실 모두 일부러 대전에 갈 기회를 만든 것이다. 무려 빵 때문에. 예를 들어 서울에서 학기 중에 집에 내려갈 때가 되면,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한 번에 가지 않고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는 무궁화 열차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한 후 1시간 정도의 간격을 두어 부산역으로 가는 KTX를 예매했다. 그리고 대전에서 비는 1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으능정이 거리로 걸어 내려가 성심당에 가서 여유롭게 빵을 사 왔다. 대전역사에도 성심당 빵집이 있는데, 빵지 순례는 역시 본점에서 해야 제맛이다.
성심당은 빵맛의 충격으로 인해 다른 지역의 빵 대장들을 모조리 섭렵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곳이다. 이때부터 전국 빵지 순례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튀김소보로를 너무 많이 먹어 본 탓에 지금은 대전역에서 올라타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는 성심당 글씨가 새겨진 종이 가방을 바라만 볼 뿐이다. 그래도 매번 기차가 대전역에 잠시 정차하는 동안 역사로 빨리 뛰어 올라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성심당에서 빵을 사 올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계산한다. 빵지 순례가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나에게 대전은 튀김소보로가 있는 도시이다.
**이건 홍보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달디 달은 황남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