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존재한 이래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넌 꿈이 뭐니?”였다. 학창 시절엔 그 질문이 너무나 싫었다. 일전에 <나의 해방일지>에서 언급한 바 있듯 필자는 어린 시절에 ‘나’를 잘 몰랐고, 나아가하고 싶은 것도 뭘 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잔인한 점은 그 질문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갉아먹게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면 당연히 하고 싶은 것과 꿈이 있어야지”라는 말이 질문 저변에 깔려있다고, 당시의 필자는그렇게 해석했다.
때문에 학창 시절 내 주위엔 그림자처럼 그에 대한 죄책감이 항상 따라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죄책감을 느낄 것까진 없진 않나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할 수 있지만 당시 필자와 동고동락(필자는 학창 시절 타지에서 기숙사생활을 했다.) 하던 친구들은 모두 명확한 꿈이 있었다
당신들은 지금도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거나 이뤘기에 당시 나의 죄책감은예민함이 아니라 필연으로 느껴졌다.
그 후 시간이 지나 군대, 대학등의 여러 세계를 지나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필자는 '나'를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드디어 내게도 하고 싶은 것이 꿈들이 생겼다. 인생의 힘들었던 시기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하면서 브런치 작가를 꿈꿨고 현재는 이렇게 연재 중에 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 후엔 강사를 꿈꿨고, 2년 정도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수학, 과학 과외를 하고 있다. 우연히 듣게 된 교양수업에서 회로를 설계하고 짜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전자공학부로 전과를 한 후 현재는 회로설계를 공부하는 중이다.이렇듯 나는 현재 하나, 둘 내게 맞는 것들을 찾으면서 오직 '나만의 꿈'을 꿈꾸고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
강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고등학생들과의 접점이 많아졌다. 이젠 성인이 된 입장에서, 또 이젠 꿈을 갖게 된 한 사람으로서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보고, 느낀 것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봤다. 아무리 요즘 학생들이 이전 세대들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다 해도 대부분을 여전히 국영수사과를 공부하는데 쏟는다. 그것만을 공부하고 심지어는 정형화되어 있는 문제풀이만을 공부하는 시스템 안에서 본인에게 맞는 분야를 찾는다? 그게 가능하다고? 불가능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확실한 건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보통 학생들을 보면 수학과학을 좋아하면 공대 내지는 자연대를 가지만 그 안에서도 분야가 수도 없이 나눠져 있다. 물리를 다루는 학과만 해도 몇 개이며 세세한 분야만 따져도 그것이 몇 개인가. 또한 설령 이론적으로 내게 맞는 분야가 있다 하더라도 그 분야의 실제 일하는 현장의 분위기와 같은 것들이 안 맞을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건 나의 경험담이다. 나름 그래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과에서 현장실습을 간 적이 있는데 분명 이론적으론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 이질적이라 낯설었고, 이는 전과를 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꽤나 자주 “선생님 저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저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는 학생들이 있으면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닌 그 때문에 주눅 들어있는 당신들의 태도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항상 괜찮다고 그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아무리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실제로 접해본 게 없는데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굉장히 위험하고 오만한 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이야기는 당신들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내게 가장 해주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지성으로 때를 가만히 기다리는 게 답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많다. 학생이라면 최대한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생 내지는 일반인이라면 토익이나 기타 자격증 등을 공부하며 언젠가 하고 싶은 게 생기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게 준비를 하는 것이다. 최대한 그때를 위해 선택의 폭을 넓혀놓고,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최대한 수월하게 길을 걸을 수 있게 잘 준비하는 것이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경험해 본다는 것은 나도 모르는 '나'를 알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이것저것을 내 몸에 대가면서 찾다 보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처음 내가 택한 전공과 다른 분야라면 전과를 하든 다시 준비를 하든 해서 결국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찾아가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살아보니 현재 내 진로와 관련된 분야가 아닌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설령 나완 아예 안 맞았던 분야도 이쪽은 나완 안 맞구나하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키워 주고 내가 '나'로서 더 선명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틀린 경험은 없다.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맞으면 맞는 대로 그 모든 것들이 ‘나’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스스로가 너무 싫었고, 확실한 목표가 있던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나 이젠 과거 방황하던 모습을 비롯해 나의 서사 자체를 존중하고 좋아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뭐든, 크든, 작든, 사회의 잣대에서 높게 평가되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