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그리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인기를 많이 끌거나 흥미로운 게 있으면 종종 찾아보는 편이다. 그렇게 종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볼 때면 과연 이상적인 리더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은 시간이 지난 감이 있지만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흑백요리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최근 다시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다 보면 우린 필연적으로 어떤 집단에 속하고, 나가고, 다시 속하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그러했고, 그 과정에서 필자는 항상 좋은 리더는 어떤 리더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색이 가장 짙었던 때는 필자가 군대에 있었을 때이다. 당시 필자는 간부식당의 취사병으로 근무를 했었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일병 말이라는 굉장히 빠른 시기에 왕고(그 식당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를 맡게 되었다. 이전에도 집단의 장을 맡은 경험이 많았지만, 이처럼 계급사회에서 장을 맡은 기억은 없었기에 그런 부분이 아마도 나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던 것 같다. 더불어 필자가 처음 식당에 들어갔을 때 선임들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일련의 시행착오와 과정 속에서 확립된 나의 이상적인 리더상은 팀원들에게 신뢰를 받는 리더였다. 그리고 그 신뢰는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 즉, 결과와 행동으로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임감 있고, 솔선수범하며 성실하고, 일을 잘하는 것. 등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무언가의 일이 주어졌을 때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좋은 리더의 자질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건강한 집단이라면 팀원은 리더를 믿고, 리더는 어느 정도의 피드백은 받되 결국은 자신의 신념대로 강단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의 성과에 대한 책임은 리더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행동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군생활의 끝에 다다라서 나는 스스로 팀원들에게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 느꼈기에 당시난 내 생각에 꽤 괜찮은 리더였다. 좀 더 정확히는 내 기준에서 이보다 나은 무언가를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복학을 하고 대학을 다니던 중 당신을 만나고 어쩌면 내가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이,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상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당신은 내 서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유형의 리더였고, 사람이었다. 매사 밝고 긍정적이면서 가볍지만 절대 우습지는 않았다. 당신의 첫인상은 자유로움이었다. 어떤 결과에 대해 부족한 부분에 주목하고 메꾸려고 노력함으로써 나아가 미래의 더 좋은 결과를 추구하는 나와는 달리 잘한 부분에 주목하며 충분히 노력했다면 결과야 어떻든 간에 다 만족하며 현재를 즐기는 리더였다. 그런 당신이었기에 그 집단의 분위기 역시 자연스레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칭찬에 인색하고, 실수를 저지른 것을 야단치는 것에 관대한 나와는 대조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리더로 있는 집단과 당신이 리더로 있는 집단을 결과, 성과로만 비교하면 난 당연히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실제로 그 당시에도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을 신뢰했고, 당신 역시 우리를 신뢰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고, 좋은 결과는 성취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깊은 유대와 신뢰를 쌓았다는 뜻이다. 그 바탕엔 자유로운 소통분위기와 사소한 것도 잘 경청하던, 그리고 그런 환경을 잘 구축한 리더가 있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건강한 집단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나와 당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 과연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나. 자유로운 소통분위기를 만들고, 팀원하나하나의 말을 잘 들어준 것. 더 나아가서는 팀장 역시 팀원을 신뢰했다는 부분인 것 같다. 팀장에 대한 팀원들의 일방적인 신뢰가 아닌 상호 간의 신뢰를 하는 관계 이것이 당신과 나의 가장 큰 차이였다. 돌아보면, 부끄럽지만 나는 그들을 당신만큼 신뢰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팀원이라면 당연히 리더의 기준에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나의 치기 어린 생각 때문이었다. 나조차도 나의 기준을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타인은 오죽할까. 리더 역시 그저 팀의 일부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오만하게도 잊고 있었다.
물론 이는 성과를 필수적으로 내야 하는 회사나 직장이 아닌 그저 대학에서의 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또 이 깨달음을 설령 이미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적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그럼에도 훗날 내가 리더의 입장이 되는 날이 온다면 지향해야 하는 상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이다. 다른 길을 택할지언정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택하는 것과 모르고 택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잘 참고하면 후에 또 내가 장을 맡게 되었을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