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0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

인생은 인과응보다

by 세은 Dec 19. 2024

살다 보면 내가 남에게 했던 행동들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주로 안 좋은 일일 겪을 때 나는 ‘인과응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인과응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에 따른 원인과 이유가 있고, 선한 일에는 좋은 결과가, 악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의미다.

내가 인과응보를 처음 느꼈을 때는 20대 후반에 새로 옮긴 직장에서였다. 그때의 나는 초반부터 이상하게 여자 무리의 상사들로부터 이유 없는 미움을 당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매일 돌이켜봐도 도무지 짐작 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알 수 없는 미움이었다. 그때 버틴 3개월의 회사 생활은 3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매 순간, 매시간이 더디게 흘러갔고 하루하루가 버티기 게임처럼 도전의 연속이었다.

나는 을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다 몰아 받아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모든 말을 다 무시당하며 투명인간 취급을 받곤 했다.

매일 버티는 생활이 반복되던 중 ,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 내가 학창 시절 때 그 친구에게 했던 행동들을 지금 되돌아 받는구나.’ 하고.


철없던 학창 시절 때 부끄럽게도 나는 누군가를 소외했던 적이 있었다. 큰 이유도 없이 단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그 친구의 말과 행동을 모두 무시하며 차별하고 무리에서 소외시켰다.


 ‘그때 그 친구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 ‘또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훗날 내가 그 잘못을 깨달았을 때 정식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화해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내 모습은 수치스럽고 큰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나는 그 사건 외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이별을 당함으로써 나는 또 한 번의 인과응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연애는 1년 반 정도 되었었다. 그 사람 덕에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정말 많이 좋아했다.
보통의 어느 날, 우리는 이성 친구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가 의견 차이가 심해졌고, 대화의 마무리가 지어지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그다음 날 갑작스럽게 나는 이별을 통보받았다.
그 통보는 마치 잘 다니던 회사를 다니다가 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을 당하는 것처럼 나에게 크나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런 이별을 처음 겪었던 나는 그 뒤로 한 달간 정말 자주 울었다.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울었다. ‘대체 그간 교제했던 기간은 뭐였을까?’ 하며 마음이 너무 아팠고, 분노와 배신감이 들었다.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을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1년의 시간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이 이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난 이 관계에 대해 최선을 다했는데, 누구보다 그 사람을 아껴줬는데.
불행하게도 아직 갚아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오래전에 교제했던 그 남자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나를 정말 아끼고 사랑해 줬다. 하지만 그때의 미성숙했던 나는 그로부터 권태를 느꼈고, 보통과 다른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했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라며, 잔인하고도 날카로운 비수의 말을 내뱉으며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 말을 뱉고 나서 나는 한 치의 미안함,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함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컸다.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바닥나지도 않았는데 이별 통보를 받았던 그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지금의 나처럼 억지로 함께했던 추억을 없애야 하고 잊어야만 했던 그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나에 대한 분노도 정말 컸을 것이다.

나는 매번 이렇게 남에게 상처를 주면 되돌아오는 걸 보니 정말 정직한 삶을 사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고스란히 언젠가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오는 너무나도 정직한 삶.
바로 인과응보 말이다.


이 인과응보가 매번 나에게 돌아올 때 큰 상처를 주지만, 동시에 큰 깨달음과 교훈을 주기도 한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 부메랑처럼 나쁜 일을 되돌아 받지 않기 위해서 사람과의 만남, 모든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선을 베풀려고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이제 정말 더 이상 갚아야 할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간 나쁜 일을 했던 것들이 스톱워치의 리셋 버튼을 눌러 다시 0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나는 0부터 다시 시작한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되돌아오길 바라며, 내 인생의 스톱워치 리셋 버튼을 눌러본다.


작가의 이전글 손녀가 바라본 할아버지의 하루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