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삶
아침 6시, 오늘 아침도 무사히 눈이 떠졌다. 예전처럼 닭이 우는 소리나 새들이 지적이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고개만 돌려 창밖을 확인한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과 하얀 뭉게구름들만이 날이 밝았음을 알려준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다음, 벽과 가구의 손잡이를 의지한 채 조금씩 앞으로 걸어간다. 매일 밤마다 ‘내일은 기적처럼 귀가 들리고,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기를’이라고 생각하다가 잠에 들지만 오히려 나의 몸은 어제보다 더 나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죽을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아직은 조금만 더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다가도, 귀와 몸이 고장 나있는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이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서울에 있는 나의 자식들은 내가 죽는 날만 기다리는 듯하다. 일 년 중 유일하게 자식들이 시골집으로 내려오는 날은 나의 생일이다. 일하기 바쁜 와중에도 손자, 손녀들을 함께 데리고 와서 케이크에 초를 켜며 생일 노래를 불러주고, 선물을 줄 때면 기분이 좋다가도 결국 대화의 끝은 ‘얼른 살아 있을 때 남아있는 땅을 팔아라’는 소리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병을 고쳐주려는 생각은 못 할망정 빨리 유산을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자식들에게 너무 분하고 섭섭했다. ‘이 골칫거리 아비가 얼른 죽어서 유산을 넘기는 게 너희한테는 최고의 선물인 걸까.’ 마당에 앉아 이런저런 일들을 회상하며 담배를 피우는데 회색 차 한 대가 들어섰다. 오랜만에 막내 딸네가 온 것이다.
아내가 혼자 고추 따는 것이 힘들어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막내 딸네는 나에게 다가와 무언가 말하는듯했지만 내 두 귀는 여전히 고요했다. 대충 잘 지냈냐고 묻는 거 같아 눈치껏 “그래”라고 대답했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막내딸은 두 아들에 비해 집에 자주 내려오는 편인데 항상 고마우면서도 자꾸 짐만 되는 것 같아 더욱더 미안했다. 예전 같으면 운전하느라 수고한 정서방과 마루에 앉아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 경제 얘기, 뉴스 얘기 등을 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게 몹시 아쉬웠다. ‘이젠 앉아있는 것도 힘이 드니 원.’
다시 벽을 짚고 방으로 걸어가 천천히 몸을 눕혔다. tv를 켰다. 볼륨을 최대한으로 키워도 개미 소리보다 작게 들렸다. 새로 바꾼 보청기도 역시 소용이 없었다. 소리 없이 화면에만 집중하다 보니 금세 또 피곤해져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워 눈을 떠보니 손녀가 밥을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마루에 나와보니 시계는 세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덧 점심때였다.
딸내미가 내가 좋아하는 회를 사 오고, 오래간만에 새끼들과 함께 밥을 먹으니 평소보다는 입맛이 살짝 돌았다. 옆에 앉은 손녀가 하얀 고봉밥에 회와 빨간 고추장을 야무지게 비벼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니 언제 이렇게 컸는지 이쁘고 기특했다. 덕분에 오늘은 밥 한 젓갈을 더 들 수 있었지만 여전히 밥 반 공기를 남겼다. 제일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버거운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향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이젠 나에게 남은 친구라곤 담배뿐이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오래도록 변함없이 내 곁에 있어주는 제일 오래된 친구 말이다.
'오늘도 이렇게 가는구나...'
무기력한 나와는 달리 하늘은 부지런히 노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을의 해처럼 나도 점점 더 빨리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정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뒤로하고 산을 바라보니 새 한 마리가 지나간다. '다음 생엔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나도 힘찬 날갯짓을 하며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날이 몇 달이 될지, 몇 주가 될지, 아니 며칠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소원이 있다면 마지막 꿈은 달콤하고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싶다.
이왕이면 열여덟 살의 청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