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 식사로 만난 인연(2)

한줌 재가 되다

by Bora

영국에서 오신 손님분이 고급스러운 케냐 전통 물건을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손님을 모시고 곽 선생님 물건이 보관된 곳을 다녀왔는데 인도인 사업가가 빌려준 허름한 장소였다고 한다. 인도인 친구는 그와 어떤 사연으로 연이 닿았는지 나름 의리를 지키며 그에게 차와 장소를 무료로 대여해 주었다. 곽 선생님의 케냐 전통작품들은 아주 세련되고 특별했다.

스마트한 곽 선생님 처음 푼 꿈을 안고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리서치를 하며 케냐의 소박한 전통작에 미래와 인생을 걸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케냐 정부는 부정부패가 워낙 심한 나라라 밑도 끝도 없이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뒷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는 양가 부모님들과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 사업에 투자를 했다.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까지 데리고 오니 전통 물건은 몇 배로 고급스러워졌다. 곽 선생님의 처갓집에서도 사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사업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혼자 타국에서 발버둥 치며 일하던 곽 선생님은 외로웠던 것일까? 그는 번창하는 사업 앞에 선택해서는 안될 것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밤마다 카지노의 화려한 구렁 속으로 한 발 두발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가 한국에서부터 도박에 손을 댔는지 케냐에서 시작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빌려 온 돈까지 쏟아부었다고 한다. 돈을 잃으니 아쉬움으로 매일 저녁 카지노에 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직원들 월급이며 운영 자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실손을 막기 위해 또다시 한국의 가족들에게 자금을 꾸어 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한국에 본인 이름으로 산 집도 팔게 되었고 곽 선생님의 아내는 원룸에서 지내며 가정방문 학습지 일을 하며 아들과 버텨내고 있었다. 결국 곽 선생님의 처갓집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곽 선생님의 도박 이야기는 그의 처남으로부터 들었다. 말이 앞서는 매형이 한심스러웠던지 그 답답함을 우리에게 하소연했 허황된 꿈을 좇는 달변가인 매형을 믿지 말라는 의도였는지 모른다.

곽 선생은 결국 사업에 부도가 났고 공장 월세를 못 내게 되자 물건을 뺄 수밖에 없었다. 공장 가득 찼던 물건을 챙겨 인도 친구의 건물에서 재기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본인 몸 하나 갈 곳이 없게 되자 외국 친구가 빌려준 허름한 집에 얹혀 지내는 신세까지 되었다. 그 많은 돈을 끊임없이 카지노에 헌납 한 곽 선생님, 잃어버린 돈에 대한 미련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날 밤 어디에서 돈이 생겼을까? 그는 다시 시속 60킬로의 차를 끌고 습관적으로 잃은 돈을 따기 위해 도박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 밤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밤새 게임을 한 곽 선생은 상상한 그 이상 큰돈을 따게 되었다. 아침이 밝아 오자마자 돈 봇다리를 차에 싣고 카지노 문을 활짝 열고 새희망을 품고 가속 페달을 최대한 밟으며 나왔을 것이다.

돈이 싫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껏 그가 케냐를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때를 위한 것 일 찐대 얼마나 흥분되었을까 싶다. 그동안 케냐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눈앞에 필름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카지노에서 선생님이 돈을 땄다는 소문은 급속도로 호텔 안팎으로 퍼져 나갔 몇 분 후 자신에게 일어나게 될 끔찍한 일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결국 돈 냄새를 맡고 돈 가방에 눈독을 들인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 새벽 5시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곽 선생님의 차를 뒤쫓았다. 강도들은 곽 선생님의 돈 가방을 뺏기 위해 위협을 했는데 그들의 손에는 장총이 쥐어져 있었다. 곽 선생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마당에 그는 당연히 돈 가방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돈가방은 그의 한과 설움을 한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는 최대한 차의 속도를 냈지만 시속 60킬로 이상을 달릴 수는 없었다. 그는 끝까지 돈 보따리를 던져 줄 수 없었고 결국 뒤쫓아 오던 강도들의 총알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는 날이 훤하게 밝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처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 누구도 곽 선생님을 총으로 쏘고 돈 가방을 가지고 튄 자들을 잡을 수 없었다.


곽 선생님의 장례식에 한국에서 온 사람은 딱 한 사람 처남뿐이었다. 끝내 곽 선생님의 아내는 남편의 장례식 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죽음의 순간에도 돈 가방을 포기하지 못했던 곽 선생님이 케냐에서 줌 재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간 것이 허망할 뿐이다.

아주 가끔 케냐 숍에 선생님의 럭셔리한 전통작품을 만나게 된다. 나무와 동을 조화시킨 세련된 물건들이 케냐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마치, 곽 선생님이 꿈꾸었던 이상의 잔해들이 지금도 살아있는 같다.

잠시나마 '비빔밥과 배추김치'로 스쳐가듯 만났던 곽 선생님 내 기억에 남아 있음은 나 또한 케냐에 대한 소망과 이 남아 있기 때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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