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 (1)

요리사 김 씨

by Bora

그의 얼굴은 늙은 호박처럼 둥글다. 그는 동그란 안경을 썼고, 작은 눈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때론 예리했다. 손 모양은 손재주가 많은 사람처럼 아담하고 야무져 보였다.

그는 나의 삶을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할 것 같았고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넘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의 나이는 갓 사십을 넘겼다.

첫날부터 그에게 호감도 과한 친절도 베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스타일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그는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나보다는 남편을 좋아하고 졸졸 따라다녔다. 마치, 짝사랑을 막 시작한 십 대 여자아이처럼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흘러나왔다. 남편이 한 동안은 피곤하겠지만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나는 그를 김 씨라고 부르려 한다.


아침부터 김 씨는 정신이 없다. 6시에 일어나서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며 거실이 떠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또 김 씨는 중국 한식 요리 자격증이 있다며 주방 이곳저곳을 뒤적거린다. 어제는 냉장고를 뒤지더니 오늘은 부엌 창고 안에 있는 냉동고를 열어젖혔다. 결국은 오후 내내 주방을 점령해 버렸다.

오후 4시부터 도마 위에 무엇을 자르는지 칼이

도마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다듬이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에 내 심장박동도 불안하게 뛰었다. 그러나 저녁 요리는 아주 맛있었다.

한 번은 김 씨가 요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부엌 여기저기에 재료를 놓거나 바닥에 부산물을 떨어트리거나 싱크대 주변에 물이 마구 튀어도 상관하지 않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를 했다. 역시 그가 만든 중국식 돼지고 맛은 일품이었다. 기름이 듬뿍 들어 간 볶음 요리는 아이들 입맛을 즐겁게 했다.


어느 날 밤에 김 씨는 동네 술집을 다녀왔나 보다. 마트에서 200실링(한화 2,400원)을 주고 산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갔으리라. 그는 싸구려 술집에서 술 한잔을 한 뒤 케냐 지폐 중에서 가장 큰돈인 천 실링(한화 12,000원)을 주인에게 술값으로 내고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입구 쪽에 서 있었는데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김 씨에게 다가와 술을 사달라며 손을 잡아당겼다고 한다. 어둡고 침침한 술집에서 검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김 씨는 놀래서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쯧쯧, 전부터 새벽이든 밤이든 문 밖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고 당부를 했는데 말이다.'

그는 내 말을 전혀 귀 담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김 씨가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형인 M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동생은 잘 있는지? 선배님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술은 안 마시는지? 나의 안부와 함께 동생의 안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네 동생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아니? 당장이라도 비행기 태워서 한국으로 보내고 싶다.'

내 감정을 마구 쏟아붓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예의를 갖추며 말을 했다. 안 그러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만 같았다. 그러나 나도 김 씨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싶기도 했다. 2주 뒤에 김 씨는 우리 집으로 다시 올 것이고 여행 후에도 케냐에 더 있고 싶어 했다. 그를 조금이라도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후배는 한숨을 크게 한번 들이 겼다. 그리고 큰 다짐이라도 하듯 말을 꺼냈다.

“제 동생 이혼한 지 1년 되었어요. 그동안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술이라는 술은 다 퍼마시고 엄마를 괴롭혔어요.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반대편 도로로 넘어가서 달려오던 택시를 박아 차 안에 탄 사람들 치료비와 입원비를 다 물어내야 했어요. 그 돈을 엄마가 다 변상하셨어요. 결국 차는 폐차시켰고 운전면허도 취소된 상태입니다. 그놈은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면 안 될 정도로 중독자예요. 피를 토할 때까지 술을 퍼 마십니다. 이혼한 제수씨에게 한 달에 한번 생활비와 아이들 양육비로 2백만 원씩 보내야 하는데 돈벌이를 안 해서 엄마가 그 뒤치닥꺼리까지 하고 계세요. 엄마는 동생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자신으로부터 멀리 떼어내고 싶어 하셔요. 그래서, 저와 엄마가 이번에 동생을 케냐로 보낸 거예요. 비행기 값이며 여행 경비, 생활비, 용돈까지 엄마가 다 준비하신 거예요. 엄마도 힘들게 경비를 마련했지만 오죽했으면 엄마가 케냐로 동생을 보내셨겠어요. 아들을 보는 게 너무 싫으시고 괴로우시다고 해요. 엄마는 동생이 케냐에서 일자리를 잡아서 제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데요. 선배님이 그곳에서 동생이 일할 곳도 알아봐 주세요. 어머님이 너무 불쌍해요. “

우리들은 070 전화로 30분 이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한국에서 사 온 070 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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