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김 씨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집에 오자마자 분주하게 주방을 살피며 어수선을 떨어야 할 김 씨는 조금은 차분한 듯 식탁에 앉아 점심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가 이상하리 만큼 조용했다. 여행 전에 봤던 김 씨는 조증 환자라면 지금은 마치 우울증 환자처럼 자기 방에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잘 나오질 않았다. 반대로 내 마음은 편안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김 씨는 나에게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여행 후 김 씨는 자기 방에 틀어 박혀 오전 내내 잠을 자고 밤마다 영화를 봤다. 가끔씩 웃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한 동안 우리 집이 평온했다. 그러던 그가 배앓이를 시작했다. 그동안 조용하더라 싶었는데 그의 방에 남편이 자주 방문을 한다. 약을 갖다 주고 따뜻한 물을 챙겨다 주고 죽을 나른다. 김 씨 방을 방문 한 남편은 한 참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나오곤 했다. 둘이서 도란도란 말하는 소리가 정겹기까지 했다. 그가 며칠 앓고 나더니, 아니 남편의 돌봄을 받고 나더니 몸이 회복되었는지 자주 정원에 나와서 햇빛을 쬐고 거실에서도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부엌으로는 발을 들여놓질 않았다.
70세가 넘으신 허리가 꼿꼿하시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자기주장이 강한 손님이 오셨다. 그녀가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그녀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성격도 깔끔하고 젊은 사람에게도 예의가 바르시고 봉사 정신이 뛰어난 분이셨다. 할머니는 그 나이답지 않게 영어와 독일어를 잘하실 뿐 아니라 옷맵시도 세련된 분이셨다. 할머니는 한국에서 갓 온 손님이 궁금하셨는지, 아침 식사를 마치시고 식탁에 앉아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처음엔 김 씨는 고집 세어 보이시는 할머니와 식사할 때조차 동석하기를 꺼려했는데 이 날은 피해 갈 수 없었나 보다. 할머니의 집요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김 씨 부모님은 살아 계시는지,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결혼은 했는지, 애는 몇 명인지, 가족 관계를 물으셨다. 김 씨는 기회가 된다면 금방이라도 도망칠 기세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내가 보기에 둘의 모습이 마치 할머니는 고양이, 김 씨는 구석에 몰린 생쥐 같았다. 어쨌건 내가 보기에도 김 씨가 안돼 보였다.
어느 날 아침 둘은 식탁에 앉아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세요."
김 씨가 대화중 뭐가 뒤틀렸는지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기도 말입니다. 저는 엄마를 위해 할 만큼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형만 좋아했어요. 형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엄마가 싫어하는 짓은 피해 다녔어요. 형은 어머니가 새벽에 술을 드시고 와서 자신의 인생을 매번 한탄해도 그냥 듣고 만 있었습니다. 저는 공부보다는 돈 버는 게 좋았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수업 끝나고 아르바이트하기 바빴습니다. 엄마가 밤새 술주정을 하면 저는 버럭 소리도 지르고 화도 냈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엄마를 위해 해장국을 끓여 놓고 속 옷을 빨아 드린 아들은 형이 아니라 바로 저란 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커져 갔고 두 눈에는 파란 불꽃이 튀었다. 할머니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하는 김 씨가 나에게 안쓰러움으로 다가온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김 씨의 엄마는 늘 M에게는 너그러웠다. 그러나 둘째 아들인 김 씨에게는 인색했다.
오래전부터 큰 아들과 엄마는 동지였고 김 씨는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 김 씨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형과 엄마는 그를 필리핀으로 6개월, 호주로 1년, 결국 이혼 후에는 케냐로 보낸것이다.
그때마다 모자의 비밀작전이 있었다.
첫째는 좋은 곳에 가서 쉬어라.
둘째는 좋은 맘으로 봉사를 하라.
셋째는 좋은 직장이 있으면 잡으라.
그러나 이 계획은 오히려 김 씨를 큰 상실감에 빠트렸던 것이다. 그는 필리핀에서, 호주에서 그리고 지금 케냐에서 복수의 화살을 갈았던 것은 아닐까? 결국 그는 3개월을 케냐에서 지내면서 직장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는 직장을 케냐에서 잡을 생각이 없었는지 모른다.
김 씨와 우리 가족은 1박 2일로 하마가 사는 나이바샤 호수 근처로 캠핑을 갔다. 그도 나에게 무엇인가 털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보다. 캠핑 내내 살갑게 나를 대했다. 이별을 위한 준비 일 것이다.김 씨는 3개월 여행 비자를 꽉 채우고 케냐를 떠났다. 그가 한국에 도착 한지 1주일 만에 남편에게 보이스톡이 왔다. 김 씨가 술에 취한 목소리 말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김 씨는 술에 취해야 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여린 사람이었다.
결국 김 씨는 형과 엄마에게 복수를 시작했다. 케냐에서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술을 퍼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그는 엄마의 식당 한구석에서 카스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고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매일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요. 사랑을 갈망하는몸짓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