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그 말투가 유난히 귀를간지럽힌다. 케냐에서 태어난 셋째는 영어로 말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넘치는 반면, 미미 씨와 남편에게는 유난히 나긋나긋하게말한다.
"딸. 한국 친구들하고 말할 때도 애교 있게 말해?"
딸이 싱긋 웃는다.
"아니징, 엄마아빠에게 말할 때 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이 나오넹."
미미 씨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으메, 너무 좋다. 계속 유지하렴.'
어제는 첫째인 아들이 남편의 옷장에서 세미정장을 찾아 입고 학교에 갔다. 오전 내내 프레젠테이션이 있다고 한다. 오후에 집에 돌아온 아이는 긴장이 풀리는지 여동생들과 거실에 한참을 이야기를 한다. 회만 빼고 생선보다는 고기류를 좋아하는 녀석에게 저녁은 생선구이라고 말하니 시무룩 척하며 혀 짧은 소리로 말한다.
"엄~마, 나 생선 싫응데, 꼬깅 줘~"
코밑이 거뭇거뭇한 아들의 애교 섞인 말이 딸과는 달리 이상스러운 것이 아닌가.
"아들, 그렇게 말하지 마. 너 영어 말투는 이러지 않잖아?"
"이상하게 엄마아빠하고 한국말로 말할 때는 이런 말투가 나오네."
둘째는 엄마인 미미 씨보다 아빠하고 관계가 더 가깝다. 둘의 성향도 비슷하고 아빠의 손재주까지 물려받았으니 알콩달콩 죽이 잘 맞는다.
어느 날은 미미 씨가 부녀의 대화를 엿듣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딸아이가 혀 짧은 소리로 투덜거리자 남편이 혀 짧은 소리로 말을 받아낸다. 아주 짧은 시간에 딸의 불평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타국에서 영유아 때부터 자란 아이들이라서 그럴까. 약은 구석이 없어서 부모를 떠나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가끔은 생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 갈 것이라 믿고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