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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게 배운 삶의 지혜

에필로그

by Bora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내가 재활용을 하는 이유는 특별한 뜻이 있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삶이 나를 그렇게 인도했다. 모든 것이 귀한 아프리카에서 생존을 위한 삶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재활용을 하게 된 것이다.

방구석의 환경운동가의 삶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15편의 글은 비교적 수월하게 썼다. 15 편의 글은 유리병과 페트병 재 사용하기와 고추장통과 된장통을 김치통이나 장아찌통으로 사용하기, 보습용 화장품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페이스 오일, 한국에서 주워 온 소파와 가구를 케냐로 가지고 와서 재사용하기, 예쁘고 튼튼한 박스를 수납장으로 사용하기, 타인이 입던 옷을 물려 입고 물려주기, 지퍼팩을 구멍이 날 정도로 재사용하기, 메리야스를 마른행주로 사용하기, 외출할 때 텀블러를 챙겨 나가기, 고무장갑을 잘라서 고무줄로 사용하기, 과일야채 껍질을 재 사용하기, 생리대 대신에 소창 사용하기와 이면지를 메모지로 사용하는 내용이다. 이 모든 재활용은 어찌 보면 엄마로부터 배운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동네 산밑에서 살았다. 우리 가족은 6 식구였는데 방은 2개였다. 안방은 부모님과 딸인 내가 생활했고 작은 방은 오빠 셋이서 사용했다. 부모님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농사꾼이셨는데 우리 4남매에게 고기반찬은 아니지만 삼시 세끼를 굶기지 않으셨다. 넉넉지 않은 생활 속에서 부모님은 열심히 돈을 모아서 동네 가운데로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생활환경은 예전보다 편리했지만 부모님은 늘 검소한 삶을 사셨다. 부모님은 농사철에는 늘 헌 옷을 입고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을 오가시며 일을 하셨다. 엄마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담아 준 검은 봉지를 버리지 않고 늘 재사용을 하셨다. 물기 있는 음식물로 봉지 안이 젖으면 깨끗이 씻어서 빨랫줄에서 말리셨다. 또한 월경을 하실 때는 소창을 사용하셨고 농사로 수확한 콩종류와 깨, 고춧가루는 페트병에 담아 놓으셨다. 지금은 부모님 두 분이 살아가기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신데도 검소한 삶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여전히 소박하게 살아가신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재활용의 삶을 이렇게까지 추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아파트와 주택가에 재활용품을 분리할 수 있도록 편리한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아름다운 가게라는 곳에 옷이나 물건을 기증하기도 하고 당근마켓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이소와 쿠팡, 옵션이며 여러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못 사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과 가격이 저렴한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아프리카는 한국이 아니다. 모든 쓰레기를 한 봉지 안에 넣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봉지 안을 뒤지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쓰레기를 집안에서 해결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넘어온 허접한 물건은 한국의 다이소의 가격보다 훨씬 비싸고 유럽이나 남아공에서 수입된 물건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비싸다. 그러다 보니 새 물건은 저절로 안 사게 되었고 재활용하는 삶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삶이 한 번도 궁상맞다는 생각은 안 해 보았다. 이런 멘털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검소한 삶을 보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금은방을 운영하시는 지인께서 손목시계를 수리하고 세척하고 건전지를 새것으로 넣어서 보내주셨다. 지인 부부는 몇 해 전부터 한국인들이 손목시계를 안 차는 것을 알아채시고는 아름아름 아는 분들로부터 사용을 안 하는 시계를 기부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시계를 남편분이 수리해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보내셨다. 최근에는 나 또한 거의 50개가 되는 중고손목시계를 배편으로 받았다. 시계를 담은 가방 안에 나를 위해서 목걸이와 반지까지 챙겨 넣으셨다. 시계들은 우리와 함께 동역하는 학사들과 학생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골드색깔의 시계를 하나 골랐다. 손몫에 찬 시계줄이 햇빛을 받아서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난다. 중고품이면 어떠랴. 누군가의 사랑으로 너와 나의 기쁨이 배가 되는 삶, 나에게 있어서 아프리카는 늘 새로운 지혜를 깨닫게 해 주는 고마운 나라이다.


케냐에 도착한 손목시계 (배로 옴)
보광당에서 케냐로 손목시계를 보내기 전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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