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후반기와 올해 전반기에 공모전에 소설과 에세이를 응모한 적이 있다. 통틀어 딱, 한 곳에서 만 에세이 한편이 입선되었다. 상에 대한 기대를내려놓았지 만 1년에 한 번쯤은 작은 상이라도 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글이 완성되었다 싶을 때쯤부터 하얀 화면 위에 적어 놓은 글을 껌뻑거리는 커서를 움직이며 수정하고 지우고 다시 채우는 편집이 시작된다. 그나마 됐다 싶을 때 프린트로 출력을 해서 글을 읽으며 또다시 볼펜으로 수정을 한다.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잉크젯 프린트는 검은 액체를 몇 번이나 쏟아낸다.
나의 영혼이 담긴 이면지의 글은 집밖으로유출되면 안 되는 일급비밀이 되고 만다. 글자 크기 10포인트에 줄간격 160%로 타이핑이 된 A4 종이의 뒷부분은참말로 멀쩡한 백지장이다.
이면지 3장을 겹쳐서 가운데를 손으로 눌러서 접고 다시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서 가위로 쓱싹 잘라본다. 이렇게 잘린 이면지는 메모지로 둔갑되어서 냉장고 위에 붙여 놓기도 하고 마트에 갈 때면 구입할 식품품목을 적어 놓기도한다. 어느 때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글 제목이나 인물, 짧은 문장을 적어서 책상 서랍장에 넣어 두기도 한다.
글모임의 멤버들은 나를 포함해서 6명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쓴 글을 6매씩 프린트를 해야 하는데 이럴 때도 이면지는 유용하다.
거실과 안방 재활용 박스 안에도 이면지로 만든 메모장이 꽂혀 있다. 굳이 메모지를 안 사도 되는 환경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습관이 밴 것일 수도 있을게다.
아이들이 학년이 바뀔 때면 학교수업시간에 사용하던 공책들을 몇 권씩이나 집으로 갖고 온다. 노트 안을 살펴보면 뒤쪽까지 필기하지 않은 부분이 꽤나 많다. 어느 노트는 중간까지만 글씨가 적혀 있기도 하다.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는 종이는 매일 씻는 주방 쓰레기통 밑에 깔아주고 차요테와 무를 감싼후지퍼백 안에 넣어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이러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노트의 하얀 부분은 따로 찢어 놓았다가 팝콘을 튀기거나 튀김을 할 때 사용하고 있다.
나도 한때는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고 산다. 만약 16년 전에 내가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오지 않았다면 이토록 터프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TV의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을 구경하다 보면 두 눈이 정말 휘둥그레진다. 그것뿐이겠는가. 신발을 신고 문밖을 나가리라도 하면 수만 가지의 물건들은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누구라도 주방용품과 식기류, 가전제품, 가구로구색을 맞추고 싶고 차와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와 화장품, 건강식품과 좋은 먹거리를 누리며 살고 싶을 것이다.
케냐에 살면서 검소하다 못해 초라하고 무능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부지런히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와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노후준비를 위해서 주식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삶이 그나마 안정적인 친구들은 운동으로 골프와 요가, 등산, 수영을 하고 취미활동으로 그림 배우기, 노래교실과 살사댄스를 배우러 다니고 문화생활을 즐길 줄 아는 친구들은 뮤지컬과 연극과 음악회를 보러 다니며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나만 도태되고 있다는 자괴감과 우울함으로 허우적거리기도 했었다. 그때 다행히도 글쓰기를 만났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가 아프리카 한 자락에 살아가고 있음이 기특하고 고맙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한국에 살았다면 모르고 살 수 있었던 크고 작은 생활 속에서 기적과 감사 그리고 삶의 지혜와 깊은 사랑을 깨닫고 경험한다.
인생 100세 시대에 나는 이제 반을 살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은, 무엇인가 무수히 적은이면지의 한쪽이었다면 이제 반대쪽 백지에 어떤 내용이 채워질지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