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샤워기 밑 대야 안에 하얀 천 뭉치가 소복이 쌓아있다. 딸아이가 월경이시작됐나 보다. 초경이 시작되었을 때 아이는 생리대를 사용하는 방법이 미숙했었다. 그나마 낮에는 마트에서 구매한 생리대를 사용했지만 밤잠을 잘 때는 불편하다며 투덜거렸다. 나 또한 케냐에서 구입한 생리대를 사용하게 되면 피부에 문제가 생기고 불편하기 그지없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엄마인 나는 겸연 쩍 하게 딸에게 슬그머니 소창으로 만든 기저귀를 내밀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피식하고 웃더니 그때부터 집에서는 면기저귀를 사용한다. 주말에 집에서 만 있었던 아이의 흔적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버렸다. 이제부터 뒤처리도 네가 하라는 소리에 아이는 온갖 애교를 떤다. 내가 지고 말았다. 햇빛이 눈부신 날에 정원의 빨랫줄에 하얀 천들이 산들산들 춤을 춘다.
16년 전, 케냐에 올 때 지인이 소창으로 만든 기저귀를 챙겨 주었다. 둘째 아기가 5개월이 안되었기 때문에 해외에 가면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라며 챙겨준 것이다. 2008년 세계경제가 휘청거릴 때 1달러가 한화로 1,800원쯤 되었다. 그때는 기저귀값도 비싸다는 생각에 아이가 집에 있을 때는 면 기저귀를 사용했고 외출 시에만 일회용 기저귀를 채웠다. 둘째가 사용하던 면 기저귀는 케냐에서 태어난 셋째가 이어서 사용했다. 소창은 빨고 삶아서 사용하기에는 번거롭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아서 좋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나서는 걸레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이 또한 귀동냥으로 들었던 지혜가 삶의 현장에서 발동하게 된 것이다. 케냐에서 늦둥이를 키우신 분께서 본인의 아이가 사용하던 면 기저귀를 걸레로 사용하고 있다는말에 나도 냉큼 따라 해 버린 것이다.
케냐의 건조기는 12월부터 3월이다. 특히 1월에는 매일매일 뙤약볕에 바람이 많이 분다. 그때는 고운 흙먼지가 창틀에 내려앉기도 하지만 창문 사이를 비집고 실내로 들어온다. 어느 해, 마른기침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원인이 흙먼지였다. 이 먼지를 닦는데 소창만큼 좋은 걸레는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나는 한국을 방문한다. 후배네 집에 갔었는데 그녀가 우연찮게 친정엄마가 마련해 주신 소창으로 만든 기저귀 이야기를 꺼냈다. 집안 옷장에 넣어 둔 면기저귀를 아이에게 한 번도 안 채웠다고 해서 염치없이 필요없으면 내게 달라고 했다. 후배는 흔쾌히그리고 해맑게 웃으면서 쇼핑백 안에 후딱 면기저귀를 넣어 주었다. 그 새 면기저귀는 내가 사용하게 된다. 도대체 케냐에서 생산되는 생리대가 피부에 안 맞은 것이다. 역시, 면은 부작용이 없었다. 또한 냄새에 예민한 나에게는 최상이었다. 그렇게 나만 사용하던 것을 둘째 딸이 사용을 하고있다. 사실, 엄마로서 일이 하나 더 늘어서 귀찮기는 하지만 나의 피부와 비슷한 체질의 딸에게 제격이다.그러다 보니 생리대를 거의 살 일이 없다.
케냐의 가난한 집의 엄마들과 십 대의 딸들 그리고 마트조차 없는 부시에서 사는 여자들에게는 생리대를 사는 것조차 사치일 수 있다. 물론 시골에서 도시로 온 궁핍한 젊은 여자들에게도 월경 때가 되면 고민이 될 것이다. 그녀들은 천으로 생리대를 대신 사용하고 있을 거다.
어느 지인의 집에 현지인 싱글맘이 일을 도와주러 왔다고 한다. 일일 일바생이었다. 케냐는 인건비가 싸다 보니 그녀의 하루 일당은 8천 원~9천 원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네들이 집안 일로 도우미로 오면 물건이 자주 없어지는 바람에 퇴근길에 가방을 열어 보았으면 했다. 현지 아줌마는 가방을 절대로 열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인은 내게 아무래도 그녀가 무엇인가를 숨기는 눈치라고 말했다. 일일 아르바이트생을 지인에게 소개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인에게 그날이 아마도 매직데이일 것이라고 일렀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그것이 있을 거라고.
글모임에서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수많은 여자들이 매월 사용한 생리대는 도대체 어디에버려지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