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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가 수납장이 되다

포장박스의 유용성에 대해서

by Bora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케냐에 주로 한국에서 봉사를 오고 영국에서는 한인유학생들이 그리고 독일에서는 한인 2세 청년. 청소년들이 오곤 했다. 때론 2년이나 1년에 한 번쯤은 방문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로비대학의 학사일정이 학생들도 헷갈릴 정도로 뒤바뀌는 바람에 우리 또한 정신이 없을 지경이고 그나마 수업일정이 잘 정착됐구나 싶었는데 작년부터 학비와 기숙사 비용을 올리는 바람에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 밖에서 방을 얻어 살고 있다. 원래 이번 학기의 개강은 9월 초쯤이었는데 한 달이나 뒤늦게 수업을 시작한다. 방학이 6월 초부터 시작됐으니 4개월이나 캠퍼스가 텅텅 것이다.

거의 모든 대학생들은 방학이 시작되면 나이로비에 일자리와 생활비가 없으니 고향집으로 돌아가버린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거나 소와 양과 염소를 키우시면 그 일을 돕겠으나 시골은 일거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은 나이로비로 될 수 만 있으면 빨리 상경하고 싶어 한다. 한국의 대학교과 나이로비 대학의 방학이 맞물려 버리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행기값이 오르다 보니 봉사팀의 발길이 끊겨 버렸다.


봉사팀이 오기라도 하면 나는 덩달아 흥이 다. 팀을 맞이하기 위해서 쌀과 과일야채, 고기를 사다 놓고 김치까지 대량으로 담아놓는다. 센터와 집안팎으로 이곳저곳을 점검하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해진다. 때론 센스가 뛰어난 팀 인솔자가 카톡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세심하게 묻기도 하고 어떤 후배는 인편으로 받아 볼 수밖에 없는 오징어채와 멸치, 쥐포와 건오징어를 보내주기도 한다. 팀들이 선물로 안겨준 박스 안에는 라면과 스팸, 참치캔, 견과류 세트와 아이들의 과자류를 챙겨 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박스와 포장지를 뜯는 기분이 참 설렌다. 한국에서 건너온 물건은 포장지도 튼튼하고 예뻐서 버릴 것이 없다. 스팸과 화장품, 컵 떡볶이 박스와 약통, 비타민C 박스를 연필통과 수납장으로 사용한다.


어느 해, 한국마켓을 오픈하기 위해서 많은 양의 인스턴트식품을 케냐로 갖고 오신 분이 계셨다. 그는 유통기간이 한참 넘도록 물건을 팔지 못했다. 나는 그 식품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수혜자가 되어서 생전 처음으로 컵떡국과 인삼 떡볶이를 먹게 된다. 용기에서 떡만 꺼내어 물로 씻은 후에 냄비에다 끓여 먹었던 기억이 어슴프레 난다. 그때는 한국식품이 귀해서 그랬는지 날짜가 한참이나 지난 인스턴트 음식을 맛있게 먹었을뿐더러 배탈도 안 났다. 떡을 꺼냈던 용기에는 물을 한 방울도 안 묻혔더니 지금까지도 수납품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까르프 마트에서 과자로 산 통은 김치통으로도 유용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특별히 이 통에 깍두기를 담그면 맛있게 익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신기한 것은 엄마인 내가 주위에 있는 물건을 재활용으로 사용하니 눈썰미가 좋은 딸들이 그 모습을 따라 하고 있다. 화장품 케이스나 젤리가 담겨있던 케이스에 악세리를 담아 놓는다. 이것으로도 만족스러운 아프리카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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