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어느 해였다. 날씨가 무더웠던 걸로 기억하니 여름이었을게다. 아프리카 케냐가 콜드시즌으로 접어들 때쯤이면 한국은 막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아프리카는 늘 덥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케냐는 적도가 지나가는 땅이다 보니 낮동안은 해가 뜨겁지만 건물 안이나 나무그늘 아래에 있기만 하면 시원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크다. 특별히 나이로비는 한국의 한라산 정상 높이인 1,800미터에 자리 잡은 고산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어지러움증에 심하게 시달렸지만 요즈음은 아주가끔씩만 현기증이 나니 살맛이 난다.
한국을 방문하기라도 하면 양가 가족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친정부모님 가까이로 세명의 오빠네 식구들이 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친정을 방문하기라도 하면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곤 한다.
그해 여름, 누군가가 지나가듯 말했다.본인의 양가 가족들 중에는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며 선진국에 친척이 한 명이라도 살고 있으면 그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했다. 그녀의 눈에 아프리카는 아무래도 여행지가 아닌 것이 괜스레 속상했지만 양가 부모님에게 아픈 손가락인 우리 가족은 아프리카로 떠나온 것이 마냥 죄송해서 입을 닫아버렸다.
우리 부부는 2017년 6월, 30개월 된 아들과 4개월을 막 넘긴 딸을 데리고 케냐에 도착한다. 그 이듬해 11월에는 셋째 아이를 나이로비의 가톨릭 보건소에서 출산한다. 어찌 보면 용감하고 어찌 보면 무모한 사람처럼 외국인 아줌마가 셋째를 현지 보건소에 출산을 한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태어난 셋째 아이와 엄마인 나는 건강했다.
케냐에 올 때 우리의 수중에 있는 돈은 천만 원이 전부였다. 일본에서 건너온 도요타 중고차는 10년 된 차였는데 가격이 6백만 원쯤 되었고 남은 돈으로아파트 디파짓과한 달 월세를 지급하고 나니 살림살이를 구입하기에도 빡빡했다. 집안의 물건은 별로 없었지만 세탁기, 냉장고와 오븐만 빼고는 중고품으로 거의 다구입했다. 식탁과 의자, 책상, 침대, 책꽂이, TV, 나무소파며 커튼과 아이들 장난감이나 자질구리한 주방용품도 중고품이었다. 가라지 세일을 하는 곳은 귀동냥으로 아름아름 전해 듣고 연락해서 찾아다녔다. 물건이 귀하고 새 제품은 비싼 터라 구입할 엄두를 못 냈는데 가라지 세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4년을 케냐에서 지내다가 모든 물건을 가라지세일로 팔은 돈으로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서 한국에서 1년 동안 안식년을 갖었다. 역시나 한국에서도 아파트에서 주워 온 중고품과가족, 지인들이 챙겨 다 준 물건으로 생활했다. 케냐센터건축을 위해서 바닥재를 후원을 받게 되어서 컨테이너로 물건을 보내야 했기에 그 안에사용하던 중고살림살이를 그대로 실었다. 기흥 어느 교회에서 바자회를 하다가 남은 물건과 이블 몇 가지만 빼고는 온통 중고제품이었지만 케냐에서는 귀하기만 하다. 한국에서는 돈을 주고 버리는 물건을 케냐에서는 돈을 주고 사야 했기 때문이다.아프리카는 남아공만 빼고는 거의 모든 나라가 케냐보다 물건이 비싸고 귀할것이다.
우린 12년 전, 천안의 어느 아파트에 버려진 튼튼한 거실 소파와 식탁과 서랍장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을뿐더러컨테이너 안에 실었던 물건들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낡고 촌스러우면 어떤가.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비교적 만족감은 높다.
요즘은 한국인들이 물건을 사고 팔 살 수 있는 벼룩시장이라는 카톡 방이 있어서 수시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마켓 2 곳에서는 수시로 세일식품이 올라오고 한국식당에서는 특가 음식 메뉴를 올리고 착불비용 딜리버리까지 해 준다. 그뿐 아니라 컨테이너 사업을 3 군데에서나하다 보니 한국물건을 공수받는 방법이 무척이나 수월해졌으나나는, 여전히 중고품을 애정한다.
한 때는 주머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중고제품을 구입하고 재활용을 하면서 살아왔던 나. 어쩜 그 생활은 조금이나마 지구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소박한 생활 속에서 몸소 터득한 재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부끄럼이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