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부 두께 얇은 편이고 상태는 악성 건성이다. 사춘기 때는 얼굴에 거의 여드름이 안 났고 성인이 되어서도 웬만해서는 얼굴에 뾰루지가 안 생겼다. 건성 피부라서 화장을 하면 얼굴이 번들거리지않아서 좋기만 했었는데 햇빛이 강한 나라에 살다 보니 주근깨는 더 짙어지고 팔 주위로는 검버섯이 생겼다. 해발 1,800미터 높이의 나이로비는 햇볕이 강하고 건조하기까지 하니 나의 피부는 말할 나위 없이 건조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이곳 사람들은 바셀린을 크림처럼 사용한다. 최근 들어서 코코넛이 들어간 바셀린이 인기가 많은지 너나 할 것 없이 현지인들과 스치기라도 하면 고소하고 달달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기름기가 많은 바셀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르면 검은 피부가 햇빛을 받아서 윤기가 흐르니 매력이 넘쳐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마트에 쉽사리 갈 수가 없었다. 하늘 길도 막혀서 한국으로 나 갈 수 없었고 손님들도 오질 않다 보니 화장품이 바닥이 나 버렸다. 외출은 거의 안 하고 마스크까지 쓰다 보니 화장할 일은 없었지만 스킨로션은 발라야 했었기에 한국에서 갖고 온 샘플까지 찾아보니 날짜가 진작에 지난 것이 많았다. 고맙게도 케냐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지 웬 만해서는 화장품이 상하지 않는다. 그것마저 다 끝나 갈 때쯤에 현지인들이 바르는 바셀린을 사용해 보고도 싶었지만 기름이 많다 보니 선뜻 손이 안 갔다.
16년 전 어느 날, 한국에서 사 온 화장품이 떨어진 나머지 바셀린을 바르고 잔 적이 있다. 그때는 사용방법을 모르고 꾸덕꾸덕한 바셀린을 얼굴 전체에 힘겹게 펴 바랐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세수를 하려고 물을 끼얹었는데 얼굴이 석고 팩을 한 것처럼 딱딱하고 물이 튕겨져 나갔다. 그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허탈하게 웃으며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 바셀린은 갈라진 발뒤꿈치용으로 만 사용한다.
여러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바셀린 대신에 내가 선택한 것은 연예인 문숙 씨가 만들어 사용하는 페이스오일을 만나게 된다. 코로나 기간에 마트와 약국과 오가닉샵을 오가며 몇 가지 오일을 구입했다. 값이 비싼 오일은 다른 오일로 대체하거나 집에서 만든 오일을 섞어가며 나만의 페이스오일을 개발해서 지금까지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다행히도 지인이 이태리로 수출한다는 오가닉 아보카도 오일을 선물로 주셨고 모로코에 사는 후배가 선인장 오일을 보내주었다. 한동안은 우리 집에서 자라는 로즈메리와 말려 놓은 오렌지 껍질을 올리브 유와 배합시켜서 오일을 만들었다.
나만의 페이스 오일은 정확한 레시피는없지만 변함없이 사용하는 것은 코코넛 오일을 베이스로 가장 많이 넣고 아보카도 오일과 피마자 오일 약간, 알로에 베라이다. 문숙 씨는 여기에 호호바 오일을 넣지만 케냐에서 호호바 오일은 용량도 적고 비싸서 모로코산 선인장 오일을넣는다. 오렌지오일과 로즈메리 오일로는향만 낸다. 마지막으로 토너의 양으로 자신의 스킨에 맞는 스타일로 제조하면 된다. 이 재료를 한 병에 넣고 힘차게 섞어주면 끝이다.
나는 이 방법으로 만든 홈메이드 페이스오일을 4년째 사용 중인데 취침 전에 한 번만 바른다. 페이스오일에 베이비로션이나 니베아 로션을 섞어서 얼굴과 목, 팔다리 때로는 발까지 발라주기도 하고 유난히 날씨가 건조한 날에는 오일만 사용한다. 아침에는 물로만 세안하고 로션만 바른다. 외출을 하는 날에는 스킨과 로션, 영양크림, 선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색조화장을 간단히 한다. 그러다 보니 화장품을 거의 안 사게 된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케냐 나이로비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물건이 귀하다. 다이소와 비슷한 미니소라는 샵은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물건 가격이 비싸고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홈 메이드 페이스오일도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어서 빈병을 깨끗이 씻어서 말린 후에 사용하고 있다. 당분간 쓸 오일만 작은 병에 덜어주고 원액의 병은 냉장고에서 보관하는데 기름이 주성분이라서 그런지 쉽게 굳지만실온에 내놓으면 금방 녹는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 갈 때도 작은 용기에 페이스 오일을 담아 갔다. 무더운 한국 여름 날씨에 집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있다 보면 피부가 땅긴다.페이스오일을 소량만 얼굴에 펴 바르거나 외출 시에는 살짝만 바르고 선크림 위에 에어쿠션 하나만 바르니 간편하게 화장을 할 수 있었다. 값비싼 화장품은 아닐지라도 홈메이드 페이스오일로 충분하기에 이것이 명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