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한국인의 가정집에는 냉동고가 필수적으로 구비되어 있다. 케냐에서 쉽게 구입하기 힘든 식재료들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주부들은 한국에 가기라도 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들을 사 온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 도시락을 싸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케냐로 출발하기 1주일 전부터 음식을 얼려놓았다가 아이스 박스에 넣어 갖고 온다. 그런 음식으로는 멸치와 오징어채, 마른오징어, 쥐포, 어묵과 오리고기, 순대, 곱창, 꼬막, 닭꼬치, 만두, 각종 젓갈이며 닭발 때론 떡종류도 있다. 이런 재료들은 천천히 아껴가며 먹곤 하는데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는 전기가 불안정해서 쉽사리 상해 버린다.
케냐 나이로비에는 한국마켓이 2곳이나 있지만 그곳을 가려면 맘 잡고 날 잡아서 가야 한다. 차로 40~50분쯤 걸리기 때문에 시간적인 부분도 있겠으나 음식값이 한국보다 3배 이상 비싸다 보니 꼭 가야 할 때 만 간다.
추석명절이 다가오자 벼룩시장 카톡에 한국마켓의 세일 상품이 올라왔다. 멋처럼 만에 만두를 사 왔다. 까르프에서 사 온 고기류와 생선류도 금방 먹지 않을 거라서 무조건냉동고에 넣었다.
울 집 대형 냉동고와 부직포 가방
요즈음은 마트에서 지퍼팩을 팔고 있지만 가격이 싼 것은 아니다. 케냐에 지퍼팩이 들어온 지는 채 5년이 안된 것 같다. 지퍼팩은 튼튼하고 밀폐도 잘되기 때문에 음식을 보관하기에는 참으로 유용하다. 특별히 덩어리로 사 온 고기를 잘라 배분해서 보관하거나 삶은 무청과 고사리, 자른 대파, 불려놓은 콩, 생강과 고추를 지퍼팩에 넣어서 냉동고에 넣어 두면 공간 확보를 할 수 있다.
음식을 꺼낸 빈지퍼팩은 깨끗이 씻어서 말렸다가 다시 사용을 하고 있다. 한국 다이소에서 사 온 양말 말리는 걸이를 냉동고 근처에 걸어 놓았다. 그곳에서 지퍼팩과 비닐봉지와 만두를 찌고 난 거즈를 씻어서 말리곤 한다. 냉동고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제법 후끈해서물기 없이 잘 마르기 때문이다. 지퍼팩은 웬만해서는 망가지지 않지만 오래 쓰면 바늘로 찌른 것처럼 구멍이 여러 군데에 나는데 그때는 쓰레기 봉지로 사용하고 있다.
10년 전 일 것이다. 어느 지인의 딸이 케냐에서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하고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자마자 결혼을 했다. 어느 날 새색시는 시댁에 가서 설거지를 하다가 음식을 꺼낸 지퍼팩을 깨끗이 씻어 놓았다고 한다. 며느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시어머님의 말씀을 전혀 그 집 식구가 아닌 내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시어머니께서는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여기는 케냐가 아니고 한국이니깐 굳이 지퍼팩을 재활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 신부는 그 말이 책망인지 칭찬인지 혼란스러웠나보다.
지인의 딸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검소하게 살아온 것을 자연스럽게 보고 성장했다. 그녀에게는 아끼는 삶이 당연지사였다. 젊은 부부는 국제구호단체소속으로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가게 된다. 그리곤 한참 후에 출산을 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입국을 했고 원룸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 또한 한국을 방문했었기에 그녀를 몸조리해 주는 친정엄마를 보기 위해서 원룸을 찾아갔다. 출산을 한 그녀는 오랜만에 남편과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색이 바랜 갈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몇 군데나 작게 구멍 난 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나가는 모습은 초라함을 뛰어넘는 비범함 그 자체였다. 그녀의 엄마도 케냐를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주 가끔 모녀가 생각이 날 때면 지퍼팩과 구멍 난 바지가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