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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이 고무줄이 되다

질기고 질긴 한국 고무장갑

by Bora

오늘은 지인과 함께 보육원을 방문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두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부리나케 싸고 시금치를 무치고 신김치에 통조림용 참치를 넣어서 볶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4시쯤 돌아오면 허기가 지기 때문에 저녁밥을 미리 준비해 놓고 외출준비를 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지난주에 만들어 놓았던 히비스커스 주스 2리터 한 병을 후딱 챙겼다. 지인, 그녀를 위해서이다.

주스를 넣어 얼린 페트병과 비닐봉지와 봉지를 묶은 고무줄은 모두 재활용이다. 이런 생활 방식은 오래전부터 생존을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홈메이드 주스를 넣을 병이 필요하다 보니 소다를 먹고 버리던 페트병이 눈에 띄었고 한국 다이소나 마트에서 사 온 고무장갑을 사용하다가 구멍이 생기면 아까워서 어떻게든지 재활용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무장갑의 손바닥과 손목 위쪽 부분을 가위로 오려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휴지봉지는 2리터 페트병을 넣기에는 딱 안성맞춤이다. 그러다 보니우리 집에서는 다 쓴 페트병과 고무장갑과 휴지봉지까지 유용하다.


고무장갑의 고무줄을 애용하게 된 계기는 80세의 사모님으로부터 배운 지혜이다. 케냐에서 40년째 살아가시는 어르신은 정말 검소함과 알뜰함에 부지런함까지 겸비하셨다. 오래전에 그녀가 물건을 주실 때 핑크색 고무줄로 묶어주신 적이 있다. 그때부터 구멍 난 고무장갑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꽃다발을 사기라도 하면 줄기 밑동을 고무줄로 묶어주는데 그것 또한 씻어서 재사용하고 있었지만 두께가 얇고 힘이 없어서 물건을 동여 매기라도 하면 쉽게 끊어져 버린다. 그러나 한국산 고무장갑에서 잘라 쓰는 고무줄은 튼튼함 그 자체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태화표와 엄마손표 고무장갑은 구멍이 나면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주인의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알짜 없이 고무줄로 재탄생된다. 아주 잘 드는 가위로 장갑을 자를 때는 사각거리는 소리까지 좋다.

주방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고무줄을 다 쓰기도 전에 구멍이 생겨버린다. 그럴 때마다 자른 고무줄을 지퍼팩에 넣어서 냉동고 안에 다 보관한다. 그러면 고무줄이 삭지 않아서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


케냐는 비닐봉지를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쓰레기가 큰 이슈 거리가 되었다. 동물들이 길거리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를 뒤지다가 비닐봉지까지 먹게 된 것이다. 소와 염소, 양, 닭, 당나귀, 개, 고양이 그리고 새들까지 죽어갔다. 급기야 나라에서 비늘봉지 판매를 금지하고 말았다. 특별히 파는 곳은 따로 있지만 비닐봉지가 아주 얇을 뿐 아니라 흙 속에서 썩는 재질이라고 한다.

로칼 시장에서는 부직포로 만든 가방을 비닐봉지 대신 사용하고 대형 마트에서는 지퍼팩을 팔게 되었고 과일 코너와 야채 코너에는 종이봉투를 준비해 두었다.

까르프 마트에서 마주친 한 백인 여자분은 종이봉투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서 챙겨 온 커다란 바구니 안에 과일과 야채를 담더니 그램스를 재는 코너에서 가격 표을 받고는 그것을 바구니 위에 쭉 붙이는 것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삶이 정말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꽤나 도전이 되었다. 얼마나 멋진 삶인가. 그녀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나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이가 나간 그릇에 각종 고무줄과 끈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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