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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스커스 주스와 페트병

민트향이 나는 홈메이드 주스

by Bora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옷을 후다닥 갈아입고 나서 부엌일을 시작한다. 저녁에 먹을 시금치된장국이 있었기에 메인반찬 한 가지만 추가하면 되겠구나 싶을 때쯤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오늘 만났던 그녀들 중에 한 명이었다. 내가 챙겨 차요태 피클과 생채무침, 얼린 히비스커스 주스와 방향제로 꺾어 넣은 로즈메리를 뒤늦게 확인했는지 로즈메리의 활용법을 물어보더니 오랜만에 맛본 히비스커스 주스가 너무 맛있다며 구입을 원했다.

그녀와 통화하는 사이에 두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둘째 아이는 된장국과 접시에 반찬과 밥을 담아서 자기 방으로 냉큼 올라가 버렸고 셋째는 아빠와 꿍짝이 맞아서 라면을 먹겠다고 한다. 머리를 떼어낸 붉은 새우를 냉동고에서 꺼내놓았으니 라면을 끓일 때 꼭 넣으라며 내 것까지 주문했다.


저녁밥을 먹고 나자마자 적자주색 마른 꽃잎을 그릇에 담아냈다. 세네갈에서 온 히비스커스 꽃이다. 한쪽에서는 육수를 끓일 때처럼 브리타 정수기로 물을 받아낸다. 꽃잎에 묻은 티검블과 모래를 몇 번이나 물로 씻어내고 커다란 고무대야에 꽃을 넣고는 정수물을 그릇 끝까지 채웠다. 남아공에서 온 루이보스 티백도 꽃잎 속으로 던진다. 밤새도록 꽃잎은 붉은색을 토해 낼 것이다.

새로운 아침이 밝자, 바싹 건조된 민트와 말려놓은 오렌지 껍질을 한 바가지 담아내고 냉장고 안에 있던 샛노란 레몬도 꺼내놓고 설탕과 바닐라 액상도 챙겨서 한 곳으로 모아 놓았다. 거의 2 달반 만에 만드는 히비스커스 주스다.

무거운 압력밥솥을 가스 위로 옮겨놓고 밤새 우려낸 꽃잎과 물을 솥 안으로 쏟아부었다. 미처 붉은색을 다 뱉어내지 못한 꽃잎은 물이 끓으면 남은 진액을 모두 쏟아 낼 것이다.

한참 후에서야 압력솥의 추가 움직이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다. 앞으로 10분 후면 가스불을 끄고 김이 완전히 빠지면 준비해 놓은 재료를 넣고 당분의 농도를 맞출 것이다.


주스가 거의 식어 갈 때쯤에 꽃잎과 과일껍질과 민트를 걷어냈다.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서 씻어서 말려둔 음료수 병과 생수병을 꺼낸다. 언제 이 많은 것을 울 집에서 다 마셨나 싶지만 누군가와 만남이 있을 때면 컵에 따라 마셨던 생수병을 챙겨 왔으니 꽤나 많은 페트병이 모아졌다. 네임펜으로 페트병 위에 히비스커스 주스라는 글자를 적고는 깔때기를 병에 꽂고 그 위에 깨끗한 거즈를 올린다. 이물질을 거르기 위한 작업이다. 달콤 새콤한 히비스커스 주스가 깔때기를 타고 쪼르륵 쪼르륵 병 안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페트병 밖에서 보이는 주스색깔은 어두운 적색에 가깝지만 냉동고에서 얼리면 색이 더 맑고 붉다. 꽁꽁 얼린 주스는 셔벗처럼 먹을 수도 있고 차가 이동할 때는 주스가 새지 않아서 좋고 이웃들에게 음식을 챙겨 갈 때는 김치나 피클 사이에 50ml짜리 주스 한병이나 두병을 끼워 넣으면 냉장 역할이 되어서 유용하다. 정작 히비스커스 주스를 만든 나는, 간을 볼 때 만 작은 종이컵에 반 정도만 마시고 찬음식을 거의 안 먹는 나로서는 얼린 히비스커스 주스는 손이 안 간다.

그나저나 아침에 나간 전기는 오후 7시가 넘도록 들어 올 기미가 안 보인다. 히비스커스 주스가 냉동고 안에서 와인처럼 숙성이 될지도 모르는 밤이다.



홈메이드 히비스커스 주스를 보관할 페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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