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의 크기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사이즈이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우렁을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을 뿐 아니라 부지런한 손이라며 칭찬인 듯 위로인 듯한 말을 남긴다. 그러고 보니 재주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부지런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한 가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요리할 땐 손이 무진장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수나 히비스커스 주스를 만들거나 우거지 육개장을 끓일 때는 주로 50인분 압력밥솥을 사용하게 된다. 특별히 이 솥을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솥이기도 하지만시간과 가스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끓였던 육개장의 고춧가루는 색깔이 소름 끼칠 정도로 붉다. 나이로비에서 5시간이나 넘게 걸리는 지방에서 한국분이 농장을 운영하시는데 한국의 고추씨로 재배를 해서 그런지 유난히 색깔이 곱고 붉다.
프라이팬이 달구어지면 기름에 마늘을 볶다가 가스불을 끈후에 고춧가루를 넣고는잽싸게 섞어서 고추기름을 만들어 낸다. 미리 삶아놓은 무청과 배춧잎, 고사리, 소고기와물에 불려놓은 토란대와 서양파, 양파에 소금과 피시소스, 생강가루, 후춧가루, 소금, 추가로 고춧가루와 마늘을 더 넣고 고추기름을 끼얹어서 골고루 섞어준다. 양념한 재료는 1시간쯤 간이 배도록 기다렸다가 압력솥에 육수를 붓고는 끓여주면 된다.
솥의 추가 20분쯤 돌아가면 불을 끄고 완전히 김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가족이 먹을 만큼만 냄비에 따로 담아낸다. 주섬주섬빈통들을 서랍장에서 꺼낸다. 다 먹은 된장통과 고추장통과아이스크림 통은 우리 집 부엌에서 참으로 유용하다. 이런 빈통에 육개장을 넣어서 얼릴 것인데 특별히 한국의 3kg짜리 된장통과 고추장통은 품질까지 좋으니 김치를 보관하기도 하고 젓갈을 만들기 위해서 손질한 오징어에 소금을 듬뿍 뿌려서 냉장고 안쪽에 저장을 해 놓기도 하고 단무지나 차요태 장아찌를 담가 놓기도 한다. 그릇이 깨지지 않는 한, 절대로 버릴 수 없다.
이렇게 우리 집으로 들어왔던 통들은 빈통이 되어도 빈통으로 못 나간다. 주인장이 그릇을 더 이상 사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것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뿐더러 그릇에 대한 욕심은진작에 사그라들었고 쇼핑센터에 가기라도 하면 차고도 넘치는 물건들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차요태 피클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누면서 빈병을 모으기 시작했더니 지인들이 나를 만날 때면 고맙게도 빈병과 함께 된장통과 고추장통까지 챙겨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네들이 사용을 안 하는 빈통은 또 다른 이들에게 음식이 담겨서전해 질것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나를 궁상맞은 아줌마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리 생각하면 어떤가. 그릇이 깨끗하고 음식이 맛있으면 되지 않을까...
빈통에 담길 음식은 나의 소중한 노동과 상대방을향한 마음까지 더해졌으니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싶다.
외출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유리병들이 서로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기분이 상쾌하도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