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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51일

by Bora

어젯밤에 막 잠이 들라는 찰나에 둘째 아이가 전기가 들어왔다며 방문을 두드렸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벌떡 일어나서 전기 스위치를 켜고 스마트폰과 랩탑을 충전했다. 나는 깨끗이 청소를 하고 문을 열어 놓았던 냉장고를 닫으러 뛰다시피 부엌으로 달려갔고 남편은 부리나케 물펌핑을 위해서 현관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둘째와 셋째 딸은 자다 말고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집안이 6일 만에 환해지니 눈이 부셨다. 정말,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똑같은 아침이지만 전기와 물이 있는 하루의 시작은 기분조차 다르다. 밤새 내린 비로 촉촉이 젖은 잔디와 아침부터 흐린 하늘까지 새롭게 보였다.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남편은 오랜만에 커피를 내리고 나는 기분 좋게 아이들의 점심도시락을 준비했다. 12년쯤 된 냉동고 돌아가는 모터가 귀에 거슬리기만 했는데 `그르렁그르렁' 거리는 소리까지 반가웠다. 아주 평범한 하루지만 특별한 날이었다.


5월 3일(금), 감사일기

1. 전기와 물이 있으니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하루가 기대감이 생기니 감사.

2. 일반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빈상태에서 음식을 하나하나씩 집어넣으니 기분이 새롭다. 그래서 감사.

3. 전기가 나가고 물이 안 나오는 바람에 어제와 오늘 저녁엔 컵라면을 먹었다. 아이들은 케냐에서 귀한 컵라면을 먹으니 행복해한다. 뭐든 감사하게 불평 없이 먹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감사.

4. 도우미 메리로 집안이 더 깨끗해졌다. 메리에게 차요태 열매와 차요태 잎과 줄기를 챙겼다. 케냐사람들이 호박잎을 볶아먹는데 그렇게 요리를 해 보라고 하니 고마워한다. 메리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은 유난히 감사.

5. 1주일 만에 세탁기를 돌렸다. 물살이 약해서 세탁시간이 거의 2시간이나 걸렸지만 세탁기를 돌릴 수 있어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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