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깜깜하다. 저 멀리로 뜨문뜨문 불빛이 보이는 곳은 아마도 자가 발전기를 소유한 사람들의 집일 것이다. 저녁 7시에 케냐 정부는 나이로비 전체에 전기 공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오후 5시쯤에 가족들과 이른 저녁을 먹는 중에 꺼져있던 냉장고에서 전기가 돌아가는 소릴 들은 나는, 박수를 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전기가 들어왔어."
남편은 현관으로 달려가서 물을 끌어올리는 스위치를 잽싸게 키고 나는 꺼내놓았던 김치와 반찬류를 냉장고에 재빠르게 집어넣었다. 오늘 저녁엔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물을 끓어 올리는 모터소리가 한국의 한여름에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 재키는 매미소리처럼 들렸겠으나 6일 만에 들으니 반갑기만 했다. 그러나 그 즐거운 시간도 딱 20분으로 끝났다. 바로 전기가 나가버린 것이다. 우리 집만이 아니라 아예 나이로비 전체에 전기가 나갔다.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들떠있다가 한순간에 침착해졌다.
4시간쯤 내리던 비는 밤 9시가 되자 멈추었다. 빗소리가 멈추니 풀벌레 우는 소리와 센터에서 학생들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소리와 멀리에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처마 밑에받쳐놓은 고무다라와 바게스에 찬 빗물은 화장실 변기물로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5월 2일(목), 감사일기
1. 빨랫감과전기 충전을 위해서 지인집을 다시 방문했다. 두 집에서세탁기를 한 번씩돌리고 H집에서 핸드폰과 렙탑을 충전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에 싸리센타라는 몰에 가서 전기로 충전하는 렌턴을 구입했다. 태양열 렌턴은 다 팔렸다고한다. 오늘도 H와 P 가정의 배려에 감사.
2. 김치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던 부추로 김치를 담갔다. H와 P가정에 부추김치와 고추마늘피클, 차요태지 무침, 차요태 피클을 드리고 커피를 좋아하는 P의 남편을 위해서 원두커피를 챙겼다. 도움을 준 이들에게 나눔을 할 수 있어서 감사.
3.DTB은행에서 카드를 발급받았다. 보안이 좋지 않다 보니 현금인출뿐 아니라 그 외 카드를 사용할 때에도 비번을 눌러야 한다. 카드를 생각보다 빨리 발급받을 수 있어서 감사.
4. 무에 겉표면이 검게 변해 가는 바람에 껍질을 벗기고 소금을 잔뜩 넣고 무짠지를 만들었다. 깻잎과 풋고추, 꽈리고추, 대파 흰 부분을 함께 넣고 간장피클을 만들었다. 전기가 자주 나갈 때는 장아찌와 피클을 만들면 야채를 거의 버릴 게 없다. 다행히도 야채가 많이 무르지 않아서 요리를 할 수 있어서 감사.
5. 전기가 나간 지 6일째이지만 감사일기를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로써 100일 감사일기 쓰기는 50일째다. 앞으로 50일도 성실히 감사일기를 쓸 것이다. 5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쓸 수 있어서 감사하고 확연하게 화를 다스릴 수 있어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