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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이 오일째

49일

by Bora

노동절이라고 불리는 5월 1일은 공휴일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질 않았다. 어젯밤에도 비가 밤새도록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아침에 아이들은 새벽에 집 근처에서 뭔가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소리였던 것이다. 나는 두통약을 먹고 자는 바람에 그 소리도 듣질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남편은 아침부터 어젯밤에 물이 없어서 샤워를 못한 가족들을 위해서 통에 받아 놓은 빗물을 끓였다. 오래전에 친정엄마가 빗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매끄럽다고 하던 말이 기억이 났다. 정말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머리카락뿐 아니라 피부도 보송보송한 느낌이 들었다.


온 식구가 나이로비 치맥하우스라는 곳에 갔다. 지인분이 운영하는 한국치킨 집이다. 우리 집에 전기와 물이 끊겼다는 소식을 들은 여사장님은 본인 집에서 샤워도 하고 핸드폰이며 렙탑을 충전하라며 환영을 해주셨다. 우리는 아점으로 갈비찜과 간장치킨 반 개를 주문했다. 사장님은 음료수와 치킨 그리고 백차와 커피, 음료수, 사과까지 서비스로 챙겨주셨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 그동안 말려놓았던 쑥 두 봉지와 마그네슘 건강보조식품을 드렸다.

K사장님이 운영하는 치맥하우스 레스토랑은 전에는 네덜란드 대사관저로 사용했던 곳이다.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에는 수영장과 식당 겸 바, 커피숍과 사우나실, 마사지실, 개인 살림집 그리고 사무실이 있다. 그전에는 2층까지 통째로 네덜란드 대사관저로 사용했지만 현재 K사장님네가 1층만 사용하고 있다.


오후 5시가 다되어서 집에 도착했지만 전기는 여전히 안 들어왔다. 더 기가 막힌 소식은 앞으로 변압기를 고치려면 한참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변압기의 부품을 쉽게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 에어비앤비로 집을 찾아야 하나, 게스트하우스로 가야 하나... 그러다가 남편이 물탱크를 확인했다. 그동안 세탁기를 돌리지 않아서 물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참이나 바가지로 물을 기르더니 작은 바게스에 끈을 달아서 길어 날랐다. 나는 그동안 밀렸던 설거지를 2시간에 걸쳐서 했다. 내친김에 김치냉장고에 있는 야채와 음식들까지 꺼내 버렸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던 몇몇의 야채가 문드러진 것을 보니 속이 상했지만 어찌 되었건 김치는 볶아 먹고 찌개로 끓여서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내일은 대형 냉동고를 정리해야 하는데 맘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5월 1일(수), 감사일기

1. 물이 나오면 설거지를 할 생각으로 그릇을 많이 쌓아놓았는데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 기약이 없다. 남편이 물탱크에서 길러온 물로 설거지를 하면서 회개를 했다. 그동안 얼마나 물을 아낌없이 사용했는지... 물을 물처럼 사용한 것을 깊이 회개했다. 깨달은 것을 삶에 실천하기로 다짐해 본다. 그래서 감사.

2. 남편이 헌신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허리가 무척 아펐을 텐데도 불평 없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남편이 있어서 감사.

3. 우리 가족에게 아낌없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를 해 주신 치맥하우스 사장님 내외분에게 감사.

4. 지하 물탱크에 물이 있는 한, 우리 가족은 집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빨래와 충전은 이웃집 한인분집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하기로 결정을 하니 맘이 편하다. 그래서 감사.

5. 딸들은 학교에서 렙탑과 스마트폰을 충전하기로 했다. 두 아이가 현재의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잘 이해주어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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