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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Apr 24. 2024

디지털 영사기의 시대



필름은 오랜 기간 동안 영화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영화라고 하면 나는 영사기에 필름이 돌아가는 게 떠오른다.


내가 처음 입사할 때 우리 영화관은 필름 상영을 했다.

그러다 더 선명하고 깨끗한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필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실 필름보다 훨씬 가볍고 일일이 편집하는 번거로움도 없으며, 무엇보다 배급 사각지대가 없는 디지털 방식은 정보화 시대에 당연한 변화였다.*



* 내 기억에 영화 필름은 파란 플라스틱 재질의 박스에 담겨왔는데 하나 당 15-20kg 정도 했다.

그렇게 영사실로 옮겨 가위(미용가위가 잘든다)로 잘라 필름과 필름 사이를 연결하는데, 이 과정에서 편집자(영사 기사)의 역량에 의해 극의 흐름이 결정 난다(어설프면 장면이 튄다).

필름이라는 게 당시에 수가 충분하지 못하니 '시외 지역' 극장에는 배급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도시에서 종영한 영화 필름을 받아 뒤늦게 상영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화질, 음질의 저하는 물론 필름 커팅이 많아 극의 내용이 어색하기도 했다.



우리 영화관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필름에서 디지털 영사기로 변경되었다. 그러면서 극장에 여러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영사기사의 입지가 좁아졌다.

필름 시대의 영사기사는 필름을 편집하고 영사기에 거는 전문적인 과정이 있었지만, 디지털로 바뀐 후엔 컴퓨터만 만질 줄 안다면 누구나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영사 기사들은 현장 관리자로 흡수되거나 아니면 퇴사를 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마치 조판공이 인쇄 기술의 디지털화로 사라진 것처럼 영사 기사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떠밀리고 있었다.

(물론 영화관을 운영하려면 영사 기사 자격증이 있는 직원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 어쨌든 영사 기사가 필요하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게 그나마 조판공과는 차이가 있다)


요즘 대부분의 영화관은 영사실이라는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구동 pc와 서버를 사무실 근처에 두어 관 내 영사기를 조정한다.


그야말로 낭만은 사라지고 효율만 남았다.



또 다른 변화는 현장에 있던 내가 디지털 영사기가 도입된 이후 하루하루 지옥 속에 살았다는 거다.

기기 안정화될 때까지 현장은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했다.


상영 중에 멈추고 끊기고 아예 시작도 안된다든지, 그럴 때마다 상영관에 들어가 관객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가끔은 너그러운 관객들이 아량을 베풀었지만 보통은 화가 난 관객들의 고성을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출근이 싫어져 갔고 사람이 무서워졌다.

(이때가 내 극장 생활 중에도 손꼽히는 위기 시절이었다)


그러다 잊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토요일, 그날도 (제발) 사고가 없길 바라며 관 체크를 하고 있을 때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가 살짝 끊기는 현상이 일어났다.

끝날 때쯤 일어난 거라 관람에 방해 정도는 아니었지만 직원으로서 쎄-함이 느껴졌다.

바로 점장에게 해당 상황을 말했다.

이러이러하니 영사기 재부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음 영화가 상영되었다.


<미션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점심시간임에도 관객들이 꽤 예매를 했다.

불안한 마음에 내부에서 스크린을 보는데 조금씩 조금씩 미묘하게 엇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시그니처 ost가 나오면서 톰 크루즈가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 응?

타들어가다 멈추고, 타다 멈추고, 타다 멈추고... 관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 진짜 절묘하게 사고가 났다.

관객들의 기대가 가장 높아진 구간에서 완전히 김빠지게 만들었다. 영화를 멈추고 황급히 사과를 드렸지만 관객들은 화가 많이 났고, 결국 점장도 상영관까지 찾아와 오-랜 시간 동안 응대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직까지도 오프닝 영상엔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 순간이 정말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 기기들이 안정되면서 직원도, 관객도 점점 디지털 상영에 적응해갔다.

그러면서 티켓에 적혀있던 "디지털" 문구도 사라지고, 홍보하는 안내 문도 없어졌다.


그렇게 필름도 디지털도 없는 극장엔,

이제 그저 콘텐츠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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