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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May 01. 2024

vs 영사실장




이전 화에 말했다시피 영화관엔 더 이상 영사실이란 공간이 필요 없어졌다. 기술의 발전, 인건비의 증가, 공간의 실효성 등 기존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영사 기사'는 사양 직업이 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좀 더 요즘과 가까운 이야기고, 오늘 나는 좀 더 예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직 필름이 영사기에 걸리던 시절, 우리 영화관 영사실엔 네 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었다.

실장과 기사 3명, 그중 영사실을 대표하는 실장은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했다. 입만 열면 본인 자랑에 취했고, 권위 의식 또한 강해서 본인 말에 토를 달거나 본인의 영역에 넘어왔다 싶으면 고성을 동반한 욕을 내질렀다.


얼마나 사람을 잡는지 신규 직원이 모르고 무전이라도 하는 날엔 무전기 저 너머로 어김없이 욕설이 들렸다.

그래서 그때는 천장에 수리해야 할 조명이 있으면 실장이 없을 때 요청하곤 했다.

(기사들 사이에서도 그 더러운 성격은 유효했는데, 당시 필름을 다루는 기술이 상당 부분 도제 방식이었는지라 불합리해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후 기사 1명과의 대화 중)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실장이 정면으로 부딪힌 적이 있었다. 영화 <완득이> 스크린 테스트를 하는데 소리 한 군데가 비어 보여 해당 사실을 무전으로 알렸다.

A 기사님이 "알겠다" 하고 얼마 뒤 무전 하나가 들려왔다.


"방금 무전한 새끼 누구야"





영화관 인원 구성은 크게 현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무실'과 영화를 상영하는 '영사실'로 나뉜다.

사무실은 실질적인 '수익'을, 영사실은 핵심인 '영화'를 관리하는데 한 팀이긴 하나 운영은 독립적으로 하는 경향이 은연중에 있었다.

실제로 입사를 하고 내가 느낀 건 같은 회사지만 사무실 vs 영사실 이런 구도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서로의 영역은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는데 내가 방금 그 선을 넘은 것이다.

 



날 것 그대로의 무전을 받은 터라 마음이 쫄렸지만 사고 나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 후 들려온 건 실장의 우레와 같은 욕지거리였다.


'감히'로 시작해 '새끼'로 끝나는 무전.


모두가 듣고 있는 무전에서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사무실에 있던 팀장이 실장에게 사과하고(대체 왜?) 결국 영화는 추가 조치 없이 상영되었다.


10분 정도 지났나, 관객 중 한 명이 소리가 이상하다며 클레임을 걸자 그제야 인지하고 조치를 취했다.

물론 나는 관 안에서 굽신굽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분개하며 하소연을 늘어놨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대신 변화된 영사 시스템에 적응 못한 실장은 쫓겨나다시피 퇴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그를 밖에서 만나지 않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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