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장 한켠에는 손바닥만한 드로잉북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 instagram drawing’이라고 써있는 첫번째 드로잉북을 펼쳐보면 첫 장의 날짜가 2014년 1월, 이 글을 쓰는 지금은 2024년 2월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딱 10년을 채웠습니다. 10년이나 계속하다니, 드로잉북이 45권째라니 정말 엄청난 분량이지요. 그렇지만 저도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습니다.
시작할 때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며칠 잊고 건너뛰기도 하고, 다시 시작하길 몇 차례 반복했습니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채워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주 간단히 연필만 가지고 가벼운 스케치라도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한권을 채우고 두번째 권에서는 컬러 펜을 사용해보고, 색연필을 써보았습니다. 그렇게 몇권 쌓인 후엔 수채화물감을, 종이 꼴라쥬를, 오일 파스텔을 손에 잡았어요. 재료를 늘려나가는 것도 계획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습니다. 시작할 땐 그저 아무 계획도 없었어요. 계획이 있었다면 겁이나서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잊혀져버린 새해 목표처럼 지나가버렸을지도요. 아무 계획도 부담도 없었기에 여기까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