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확장기
나는 좋아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참 많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매사에 ‘감사’하며 사는 삶이 좋은 삶이라 생각하고 그 지향점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나를 조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했다.
당장 하는 일에서 엄청난 성과가 없더라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만족했으며, 하루의 날씨에, 무심코 흘러나온 노래에,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웃음에 나는 행복했다.
봄이면 꽃을 보고, 여름이면 바다에 가고, 가을이면 단풍을 구경하고, 겨울에는 눈을 보면 좋아하고. 일 년의 사계절이 바삐, 꽤나 충만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달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등 ‘나’의 존재는 자꾸만 희미해져 갔다. ‘나’가 옅어질수록 미래에 대한 기대 및 희망 또한 사라져 갔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을 달고 살던 나의 지나친 낙관주의는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좋아하시는 게 뭐예요?”라는 물음에 어찌 대답할지 모르겠는 때를 기억한다.
정말 슬펐다. 그토록 좋아하는 게 많은 나였는데, 왜 이렇게 됐지.
내가 나를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우울은 시작된다.
그리고 내가 나를 긍정하는 것에서부터 우울은 극복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맑은 날씨와 햇빛을 좋아한다. 지금 이 글 또한 해가 잘 드는 나의 집 거실에 앉아 쓰고 있다. 얼마 전 집 마당에 있던 두 그루의 나무를 베었다. 한 그루는 후박나무, 한 그루는 단풍나무였다. 단풍나무는 두 가지를 남겨두긴 했지만, 거의 집 전체를 드리우고 있던 두 그루의 나무가 사라지니 이렇게 집이 밝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사실 나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버리는 것을 잘하는 편이 아니기에, 나무를 베어낸다고 했을 때 아쉬움의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이 집에서 20년 이상 같이 살아온 나무인데… 아깝다…’라는 생각. 봄이면 새순이 나오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예쁘게 단풍 옷을 입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다는 것도 꽤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게 웬걸, 집 안에 햇빛이 촤르르- 하고 들어오니 매일 아침 눈 뜨는 것이 즐거워졌다.
무언가를 손에 꼭 쥐고만 있지 않고, 털어낼 때는 털어내는 것. 깔끔하게 정돈하는 것. 그것이 내가새로 사랑하게 된 일 중 하나이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좋아한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우스갯소리만이 아니다. 외출 시 이어폰을 챙기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가끔은 음악을 더 오래 듣고 싶어 빙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나다. 봄, 여름, 가을, 겨울뿐만 아니라 저녁, 아침 등 손수 만든 상황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는 나의 소중한 자산 중 하나이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딱 골라냈을 때, 멜로디나 가수의 음색, 혹은 가사가 나의 마음을 건드려 그 음악 속에 몰입하게 되었을 때, 그때의 쾌감과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 내게 새로운 음악 장르가 문을 두드린다. 클래식 이라고는 중학교 때 음악 듣기 평가를 위해 달달 외웠던 것 외에는 몰랐던 내가, 요즘은 클래식의 매력에 점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주로 좋아했는데, 이제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틀어 놓을 때가 더 많다.
여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곡을 찾아 듣는 것, 다른 사람들의 연주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내가 사랑하게 된 또 다른 일 중 하나이다.
나는 예쁜 것이 좋다.
나는 반짝이는 것이 좋다.
나는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클래식한 것이 좋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파자마로 갈아입는 그 시간이 좋다.
나는 추운 겨울날 두르는 목도리가 좋다.
나는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이는 반신욕이 좋다.
나는 오두방정 떠는 것이 좋다.
나는 유치한 게 좋다.
나는 화려한 구두가 좋다.
나는 커피를 내려 마실 때 집 안 가득히 퍼지는 커피 향을 맡는 것이 좋다.
나는 잘 정돈된 장소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나는 꽃과 나무와, 여러 식물들이 좋다.
나는 푸르른 바다가 좋다.
나는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이 많은 내가 좋다.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해 내는 것이 힘들다면, 그리고 이전에 좋아했던 것에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면, 가장 작은 무언가부터 시도해 보자.
과거의 나는 과거의 나대로,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대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그렇게 변해간다.
아니, 더 확장되어 간다. 나의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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