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거림은 죄악이 아니에요
총 10번의 심리 상담, 그 마지막이었다.
들어서서 앉자마자 선생님께서는 “지난번보다 얼굴이 훨씬 밝아지셨네요.”라고 하셨다.
마지막 시간인만큼 그동안 했던 상담을 통해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 그리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저는 사실 생각이 참 많은데, 그 생각들을 정리해 본 적은 많지 않아요.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일기 쓰기가 좋다고 해서 시작한 적은 많지만 늘 쓰다 그만두곤 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생각 정리가 되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참 좋았어요.
생각이 많을 때 예전에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했던 것 같거든요."
그 말을 하는데 감정이 북받쳤다.
"지금 어떤 감정이 올라오신 것 같아요?"
"제가 저로부터 도망쳤던 것 같아서요. 제가 힘들다는 것으로부터 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사실 저는 누군가에게 ‘나 힘들어.’라고 말해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여러가지 시험들을 준비할 때도, ‘그냥 해야지 뭐.’라고 생각했고요. 일을 하다가 짜증 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물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사건을 통해서 선생님이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한테 ‘나 힘들어.’라고 소리 내서 말한 게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생각보다 큰일이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말해도. 그렇게 힘들다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어요."
"왜 힘들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떤 롤모델이 있나요?"
"음, 저는 일 부분에서보다 저 자신의 성격적인 측면에 굉장한 완벽주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완벽한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사람이거든요. 단단한 사람이요.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리고 강한 사람은 힘들어하지 않으니까, 힘들지 않아야 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따로 롤모델은 없어요. 그냥 제가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인 것 같네요(하하)."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군요. 대쪽이 오히려 잘 부러진답니다."
인생은 고통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내던져진 존재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세상에 던져졌는데,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지함을 무시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
나는 어떤 고결한 존재가 되고 싶어 나의 힘듦을 무시해 왔던 걸까.
나는 어떤 강인한 존재가 되고 싶어 나의 나약함을 꽁꽁 싸매왔던 걸까.
'나 힘들어.'
누구에게는 쉬운 네 글자이겠지만, 나에게는 꽤 멀리 돌아온 네 글자이다.
징징거림은 죄악이 아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속에만 담아두며 살아가게 되는가.
서로 징징대고, 받아주고, 안아주면서. 그렇게 사는 것.
삶이 고통이라면, 그 삶을 계속 살아나갈 수 있게끔 해주는 유일한 통로는 이것뿐이다.
고통 속에서 단번에 부러지는 대쪽이 되느니,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홀씨 나부랭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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