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낚시로 잡은 싱싱한 감성돔을 맛볼 수 있는 곳
부산 송정 해변을 따라 횟집들이 많다.
하지만 진짜 로컬 맛집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법.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간 김에 친정 부모님께 식사 한 끼 사 드리겠다고 했더니 '남일횟집'이라는 곳에 가자고 하셨다.
남일횟집은 모르는 사람은 찾아가기도 힘들다. 네이버로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다. 해변가에 있는 게 아니어서 길을 가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위치는 시장 골목. 이런 곳에 식당이 있나 싶은 곳이다. 겉으로 보이는 빛 바랜 낡은 간판이 이 식당이 지내 온 세월을 가늠케 한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막상 들어가 보니 실내는 넓고 깨끗한 편이었다. 점심 시간이라 손님들도 꽤 있었는데 주로 모임에서 온 듯했다. 식사 메뉴만 주문해서 먹는 손님들도 좀 있었지만, 주로 모임이 많이 있는 곳인 듯했다.
친정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남일횟집은 '진짜 그날 그날 낚시로 잡은 고기만 내 놓는다' 고 하셨다. 만약에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그 날 문을 열지 않는 식당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내 놓는 회 치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 집이라는 사실을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그렇게 친정 부모님이 강력히 주장하셔서 선택한 이날의 회는 감성돔이었다. 역시 부모님 설명으로 감성돔은 도미 중 가장 깊은 물에서 잡히는 어종이라고 하셨다.
모든 생선회 가격은 시가였는데, 이날 감성돔 1인분은 4만원이었다. 여기에는 매운탕은 포함되었지만 공깃밥은 제외되었다. 메뉴판에 적혀 있듯이 모든 회는 시가였고 이날 감성돔 1인분은 4만원(매운탕 포함, 공깃밥은 제외)이었다.
부모님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회 맛을 칭찬하셨기 때문에 회 맛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회뿐만이 아니라 기본 상차림으로 나온 것들도 다 맛있었다.
삶은 새우, 고구마, 껍질 땅콩, 심지어 그냥 썰어서 내 온 당근과 무우조차 달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솔직히 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곁들임으로 나온 음식들로만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회가 나오기 전에는 배를 비워두어야 하는 게 불문율임에도 불구하고 땅콩과 고구마, 무, 당근을 집어 먹다보니 어느새 뱃속이 어느 정도 차 버렸다. 그때 즈음, 드디어 회가 나왔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엄지 척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나는 사실 회 맛을 잘 모른다. 이 날도 방어나 연어회를 먹고 싶었다. 우리 남편이 말하는 소위 '회알못'인 셈이다. 그런 내 입에도 남일횟집의 낚시로 잡았다는 회는 훌륭했다. 맛을 제대로 설명할 솜씨가 딸리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려 한다.
감성돔을 주문하면 부위별로 골고루 나오는데 특이하게 세로로 두툼하게 썬 회이다.
부위별로 맛이 틀리다.
어떤 부위는 쫄깃하고, 어떤 부위는 부드럽다.
처음 한 점은 회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와사비만 살짝 얹어 먹었다.
회를 모르는 사람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싱싱하고 살이 탄력이 있다.
두번째는 와사비와 간장을 같이 섞어 먹어본다.
세번째는 초고추장.
네번째는 쌈에 한번 싸서 먹어본다.
아, 행복하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회를 좋아하는 남편은 연신 '맛있다' 소리를 그치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장인 어른, 장모님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라 체면을 차리려고 애쓰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맥주를 한 병 시켰다. 술을 절로 부르는 상차림이라고 변명을 하지만 얼굴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래도 낮이라고 자제력을 발휘해 소주 대신 맥주를 시키는 모습이 나름 기특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나는 폭탄주를 만들어 마셔야겠다'며 서빙하시는 이모님께 '먹다 남은 소주 한 잔' 있으면 좀 달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사실 엄마는 이 식당에서 종종 모임을 하기도 해서 서빙 이모님과 친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인심 좋게 이모님은 자신가 마시려고 따로 둔 소주를 한 잔 따라 주셨다. 엄마는 그 고마운 소주 한 잔을 맥주잔에 퐁당 담가 폭탄주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낮부터 술판을 벌인 건 아니고 분위기를 살릴만큼 딱 한 모금만 드셨다.
어쨌거나 술까지 들어가 얼큰해진 분위기는 싱싱하고 얼큰한 매운탕으로 마무리지었다. 싱싱한 생선으로 막 끓인 매운탕 맛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깊고 시원한 맛은 예술 그 자체다. 매운탕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곁들여서 생선구이가 나오는데, 이름 모를 잡어다. 역시 낚시로 잡아올렸다는데, 싱싱한 고기를 튀기다시피 구워 내놓았다. 싱싱한 생선을 막 튀겨내었으니 얼마나 맛있을까?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이빨 사이에서 껍질은 바삭거렸고, 속살에서는 뜨거운 김이 올랐다. 활력이 몸 속으로 절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날 식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싱싱한 바다를 잔뜩 먹는 느낌이었다.
내가 어릴 때 송정은 관광객이 아닌 부산 사람들이 주로 찾는 조용한 해변이었다.지금의 송정은 완전한 관광지다. 송정 해변을 찾는 관광객들은 멋진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대형 식당으로 주로간다. 그런 식당은 보통 멋진 건물, 인테리어에 음식은 먹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담겨 나온다.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입이 아니라 눈이 더 즐거운 곳이다. 그런 곳들도 좋지만 진짜 부산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간다. 그들은 눈이 아니라 혀와 가슴으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간다. 비록 해변가의 멋들어진 건물은 아니더라도 한입, 한입, 진짜 바다 내음으로 몸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식당이다. 남일횟집은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는 바다를 맛볼 수 있다. 올봄에 부산을 간다면, 송정을 간다면, 한번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