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격리

by 레드뷔

승환은 구급차에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짚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늘 있던 상사들의 멍청한 행동들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승환은 차가 멈추는 것을 느꼈다. 밖에 있던 군인이 구급차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린 김 과장과 승환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응당 병원일 것으로 생각했던 그곳은 빨간 벽돌 건물로 가득한 커다란 학교였다. 하지만 그들은 금세 수긍했다. 여름방학의 빈 학교만큼 격리에 적합한 곳은 없을 터였다. 구급차들은 물론 흰색, 노란색 방호복 입은 사람들이 빗속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방호복은커녕 월남전에 쓰였을 법한 허름한 방독면 뿐이었다.


군인 하나가 승환과 김 과장을 강당으로 안내했다. 강당 입구에는 급조한 듯 엉성한 비닐 커튼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탄창 없는 K2소총으로 무장한 군인 두 명이 엄숙한 자세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조악한 비닐 커튼, 낡은 방독면, 탄창 없는 소총, 그럼에도 꿋꿋이 진지한 군인. 그 광경을 지나며 승환은 불합리함의 집합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강당 안에는 위가 뚫린 하얀 칸막이 천막들이 6동씩 10줄로 총 60동이 설치되어 있었다. 군인은 승환과 김 과장을 입구에서 가장 먼 안쪽 구석 천막에 남겨두고 사라졌다. 천막 안에는 하늘색 담요 4세트가 놓여 있었다. 잔뜩 화난 보풀들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병원 이름, 그리고 강렬한 곰팡내가 담요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어후 냄새. 6.25때 담요야 뭐야.’


승환은 불만을 삭이며 대충 천막 바닥에 앉았다. 김 과장 역시 천막 안을 쓱 둘러보고는 승환 곁에 앉았다.


“과장님, 큰일은 아니겠죠?”

“모르겠네...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승환은 집안 절대 존엄 아내님께 여태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울렸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했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그는 불안했다. 하지만 아내가 평소에도 하찮은 자신의 전화를 잘 받지 않으시는 편이라 애써 아무 일 없겠거니 하며, 커져가는 불안감을 눌렀다. 그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승환/

[여보. 별일 없지? 하진이도 괜찮고? 울 회사에 전염성 뭐가 있어서 나 잠깐 어디 격리됐거든. 아마 기초검사 몇 개 하면 보내줄 듯. 금방 갈게.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말고]


승환이 문자메시지를 남기는 사이 김 과장은 아내와 통화를 마쳤다.

승환은 휴대폰으로 인터넷, SNS 등을 검색했지만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그는 노돈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군인들은 빈 천막으로 사람들을 날라댔다.


“아, 안 들어간다고!!”


강당 입구에서 50대 남성이 군인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시지 말입니다!”

“싫다고 새끼들아!”

“안 들어가시면...”

“안 들어가면 어쩔 건데? 총으로 쏘게? 쏴봐, 쏴봐! 총알도 없는 새끼들이.”


10여 분간의 대치하던 남자는 결국 추가로 달려온 지원병력에 제압돼 강당 어느 천막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그는 강당에 들어온 후에도 굴하지 않았다는 듯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욕설을 해댔다. 그의 욕설은 어느 젊은 모녀가 강당에 들어선 후에야 멈췄다. 아무리 화가 났다한들 3살 여자아이 앞에서까지 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새로 온 모녀는 승환과 김 과장 옆 천막으로 안내되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이름이 뭐야?”


김 과장이 살갑게 모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수진이에요 해야지.”

“......”


엄마 품에 꼭 안긴 아이는 낯선 환경을 잔뜩 경계했다. 아이 엄마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김 과장은 넉살 좋게 아이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수진이 안녕?”

“...... 엄마. 나 더워. 그리고 좀 머리 아파.”

“수진이 많이 아파? 미안해. 조금 있다가 군인 아저씨들 오면 엄마가 얘기해볼게. 조금만 참을까?”

“응...”

“애기도 힘들겠네요.”


승환은 두 모녀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근데, 어쩌다가 여기를...”

“저희는 편의점에 아이스크림 사러 갔다가 갑자기 주인이 쓰러져서 119에 신고했더니 무슨 전염병이라고 하면서...”

“엄마, 나 여기 더워, 덥다고!”


수진이 엄마를 채근 대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수진의 울음소리에 군인 세 명이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왔다.


“여기요, 아가 마이 덥고 힘든 것 같은데, 좀 시원한 데로 옮겨 줄 수 없어요?”


김 과장이 아이를 달래는 수진 엄마를 대신해 군인들에게 말했다.


“야, 뭐야? 누가 깨 있는 사람들끼리 붙여놨어? 서로 옮으면 어쩌려고? 저기 멀리 떨어뜨려 놔!”


소위가 병사 두 명에게 지시 후 천막 밖으로 나갔다.


“아니, 여 좀 봐봐요. 아가 힘들다 카잖아요. 물도 좀 갖다 주고!”


군인들은 요청을 묵살했다. 그리고 상관의 지시를 따라 모녀를 반대쪽 구석 천막으로 이동시켰다.

“와, 일마들 자비없네.”


김 과장이 열을 올리는데 방호복 입은 사람 하나가 천막 안으로 스윽 들어왔다. 비닐모자에 흰색 마스크, 흰색 방호복을 입은 왜소해 보이는 남자 간호사였다.


“저기요.” 김 과장이 그를 불렀다.

“......”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승환과 김 과장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거 여기 놓고 갈 테니까 요 양식대로 인적사항이랑 적으세요. 좀 있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다 해 놓으세요!”


유난히 하이톤인 남자 간호사는 행여나 그들과 접촉할까 잔뜩 경계하며 입구 바닥에 종이양식과 볼펜을 놓고 서둘러 나갔다.


“뭐꼬 절마 새끼. 사람을 무슨 벌레 보듯하노!!!”


김 과장이 들으라는 듯 크게 얘기했다.


“과장님, 그냥 얼른 쓰고 줘버리시죠.”


승환이 힘겹게 종이와 볼펜을 주워 김 과장에게 건넸다. 주소를 쓰고 가족란에 아내와 딸의 이름을 쓰던 승환은 잠시 펜을 멈췄다.


‘전화도 안 받고. 진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멀리서 칭얼대는 수진과 그녀를 달래는 엄마의 소리가 그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심장이 뛰며 명치 안쪽이 답답하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김 과장 역시 같은 마음이었는지 승환에게 말을 건넸다.


“허 대리, 걱정 많이 되제? 나도 우리 마누라랑 딸이 걱정이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가뜩이나 저희 딸이랑 와이프 몸도 약한데.”

“설마 이미 오만데 다 퍼진 거 아이겠제? 에이, 아이다... 너무 걱정 말자. 뭐 큰일이야 있겠나?”

“......”


멀리서 여러 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오와 열을 맞춘 발소리는 승환의 천막 앞에서 멈췄다. 승환은 긴장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천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아까 그 하이톤의 남자 간호사였다.


“다 썼죠? 이리 주세요. 볼펜은... 됐어요, 그냥 가져요.”


승환은 자신과 김 과장의 서류를 모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수술용 장갑을 꼈음에도 종이에 똥이라도 묻은 듯 두 손가락 끝으로 종이를 집어 들고는 황급히 천막 밖으로 나갔다.


‘다음에는 진짜 똥을 묻혀 줘야겠어. 억울하지나 않게.’


그가 나가자마자 크고 건장한 군인 3명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노란 방호복의 대위와 일반 전투복 차림의 병사 두 명이었다. 덩치가 승환만한 대위의 A급 노란 방호복이 후줄근한 병사들의 전투복과 유난히 대조되어 보였다. 대위는 자신이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임을 과시하듯 홀로 방탄모 대신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이어지는 그의 고압적인 태도가 이를 곧 증명했다.


“지침에 따라 휴대전화를 제출합니다.”

“일마 뭐라노?”


김 과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승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휴대전화 신속히 제출합니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이고 내껄 왜 주라마라 합니까?”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싫은데요? 이거 인권 침해 아녜요?”

“제출해주십시오!”

“허, 참 내, 못 줘. 못 준다고.”

“제출하십시오!”

“아, 못 준다고!! 어데 어린 놈의 자식이.”


김 과장의 큰소리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야, 뺏어와.”


명령을 받자 뒤에 서 있던 병사 두 명이 승환과 김 과장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새끼들이! 돌았나? 돌았냐고?”


김 과장은 휴대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병사들과 몸 다툼을 했다. 하지만 한창때인 젊은 군인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한편 승환은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나중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일마 이 새끼들 이거... 가족이랑 연락은 우에 하라고! 어?”


김 과장은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는 듯 거칠게 반말을 내뱉었지만, 그의 어깨는 이전보다 조금 좁아져 있었다.


“별도로 통화시간 드릴 겁니다. 그러면 지정된 장소에서 가족분들과 연락하시면 됩니다.”

“야, 잠만 줘봐.”

“안됩니다.”

“아 잠만 줘보라고, 다시 줄 테니까!”

“안됩니다.”

“아씨, 내 마누라 전화번호 몬 외운다고! 적어놓고 다시 준다고!”

“......야, 잠깐 돌려드려.”


병사가 김 과장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저기... 저도 못 외우는데...”


승환도 소심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들은 방독면 때문에 귀가 잘 안 들렸는지, 아니면 저항조차 하지 않은 자의 목소리는 무가치하다 여겼는지, 승환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사이 김 과장은 전화번호를 옮겨 적고 휴대폰을 병사에게 돌려줬다.


“저기요...!”


승환은 뒤늦게 조금 더 큰 소리를 냈지만, 군인들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천막을 떠났다. 승환은 저항한 자는 뭐라도 얻어내고 침묵한 자는 개털이 된다는 교훈을 뒤늦게 깨달았다.


‘쉬바...’


“니는 등치는 산만 해가 그게 뭐고?”

“아휴 과장님. 공권력이잖아요.”

“지랄한다.”

“그나저나 큰일 났네. 와이프 번호가 뭐였더라...”


승환은 아내의 전화번호를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5분 간의 격렬한 메가허리케인브레인스토밍 끝에 결국 아내의 번호를 생각해냈다. 그는 잊어버리기 전에 재빨리 수첩에 번호를 적었다. 승환은 현대 문명의 이기가 가져온 인간의 퇴보를 잠시 한탄했다. 아니, 사실은 자신의 얕은 기억력을 한탄했고, 소심해서 병신 같은 자기 자신을 한탄했다.


‘하아... 나 왜 사냐.’


승환은 천막 한쪽에 벌러덩 누웠다. 천장이 보였다. 강당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비 많이 오네. 이러다 물바다 되는 거 아냐?’


승환은 강당에 물이 차오르는 상상을 했다. 물건들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상상을 하던 그는 문득 오늘 꿨던 바다 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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