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꿈꾸지 않는 자

by 레드뷔

오늘 아침 출근길도 평소처럼 덥고 습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승환은 살짝 들떠 있었다. 지난밤 ‘꿈’이라는 것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뭐야 별것 아니네.’라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꿈’ 때문에 아내에게 큰 봉변을 당할 뻔했음에도 말이다.


사실 승환은 오늘 아침까지 꿈을 꿔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말이다. 남들이 가끔 꿈 얘기를 했지만, 승환은 그것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프로이트는 꿈이 무의식에서 기인함을 발견했고, 학문으로까지 발전시켰지만, 승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는 꿈을 그저 자면서 하는 상상 같은 것이려니 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승환에게는 그저 ‘누워서 눈을 감는다 → 잠든다 → 암전 → 시간이 흐른 느낌이 든다 → 알람이나, 아침 햇살에 괴로워 눈을 뜬다’ 정도의 수면 과정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승환은 가끔 그 기이한(?)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단지 타인과의 공감 차원에서 말이다. 그것은 가위에 한 번도 눌려보지 않은 사람이 (그리 강렬한 바람은 아니나) 약간의 호기심과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사회에 나와서 그의 비밀은 더욱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고된 직장에서 지난밤 ‘꾸지 않은 그의 꿈’ 따위는 햇빛에 떠다니는 먼지보다 무가치한 것이었다. 그 역시도 그 무가치함에 대해 공감했기에 굳이 타인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꿈을 꾼 것이었다.



******



어느 바닷가. 승환은 서 있었다. 바람도 파도도 없었다. 차분하고 또 고요했다. 묘한 느낌이었다.


‘여긴 어디지?’


승환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 하늘, 한낮의 커튼 친 방 안처럼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늘. 태양은 없었다. 구름이라 부를만한 것도 없었다. 흠 없고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잿빛 하늘만이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승환은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발가락 사이로 고운 모래가 느껴졌다. 조개껍데기나 작은 조약돌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모래였다. 그것이 그렇게 그저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일몰 전 도심 빌딩 위로 유난히 크게 보이던 그 붉은 태양 색이었다. 승환은 그것이 잿빛 하늘색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다는 미동이 없었다. 굳어버린 촛농 같았다. 바다에는 섬도, 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호수처럼 미동 없는 붉은 노을 색의 바다라... 바다? 나는 왜 저 파도도 없는 붉은 색 물을 당연히 바다라고 생각하고 있지?’


신기하게도 승환은 생전 처음 보는 이 비정상적인 풍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원래의 하늘이, 원래의 바다가 그랬던 것처럼.


‘여긴 어딜까? 어떻게 여기에 왔지? 기억이 안 나네. 기억상실? 아니면 최면?’


여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승환은 그제야 그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 이게 바로 꿈이라는 거구나!! 신기하네. 내가 꿈을 꾸다니... 드디어 꿈을 꾸다니!’


승환은 신났다. 쌈바라도 추고 싶었다. 그는 얼른 이 역사적인 사실을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곳에 없었다. 상관없었다. 그는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이 ‘신비한’ 경험을 만끽하고 싶었다. 승환은 한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풍경은 금세 싫증 났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헉!! 저게 뭐지?’


모래섬 중앙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하얀 맹그로브 나무가 서 있었다. 지름이 족히 500m는 더 되어 보였다. 뿌리부터 가지까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나무는 섬 전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는 어찌나 큰지, 나무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뿌리와 함께 섬 전체가 같이 들려 일어나버릴 것만 같았다. 승환은 나무의 위용에 압도되어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특이하게도 나무는 겨울나무처럼 잎이 없었다. 대신 눈부신 흰색 줄기와 가지가 잿빛 하늘과 붉은 바다를 더욱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나무 근처로 드문드문 회색 조약돌 같은 것들이 보였다. 섬의 동쪽 해변에는 진한 검정색 사각 바위 하나가 기둥처럼 서 있었다. 해도, 달도, 나침반도 없었지만, 승환은 그 바위기둥이 있는 곳이 왠지 동쪽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왠지 말이다. 그리고 승환은 이 모든 기이한 것들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검정 바위에 호기심이 생긴 승환은 그곳까지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한참을 달렸지만, 힘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 실제로 다리가 뻣뻣해진다던가, 숨이 차지는 않았다.


‘꿈이란 건 정말 신기하군...’


바위는 높이가 5미터는 되어 보였다. 언뜻 자연석처럼 보였던 그것은 가까이서 보니 누군가 거칠게 깎은 인공물임이 명확히 드러났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길쭉한 사각기둥을 거꾸로 처박아 놓은 듯한 모습을 보며 승환은 오벨리스크를 떠올렸다. 그는 바위 위로 올라가고픈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는 바위로 더 다가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도 닿을 수가 없었다.


‘이야, 이거 희한하네. 이게 왜 안 닿지? 이렇게 가까운데? 뭐, 어차피 표면도 미끄러워 보이고 게다가 역경사니까 사다리 없으면 올라가지도 못할 거야.’


승환은 이야기 속 신포도 여우처럼 투덜대며 화끈하게 포기했다. 바위에 흥미가 떨어지자 그는 슬슬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저 흰 나무로 가볼까.’ 하는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삐삐-삐삐-삐삐-”


‘무슨 소리지?’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것 같으면서 또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삐삐-삐삐-삐삐-”


승환은 비로소 그것이 자신의 휴대폰 알람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곧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승환은 침대 위에 있었다. 얼떨떨한 기분이 잠시 지속됐다.


‘아! 드디어 나도 꿈을 꿨다!! 흥, 뭐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승환은 애써 덤덤한 척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들떴다. 아니 들떴다기보다는 약간 우쭐해졌다. 승환은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옆을 돌아봤다. 하지만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나?’


그때 부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 끓는 소리 같았다. 승환은 방문을 슬쩍 열어 부엌을 내다봤다. 그의 아내가 요리 중이었다. 그것도 이른 아침에 말이다. 순간 불안한 감정이 스쳤다.


‘설마... 내 일기장이라도 봤나?’


승환은 불현듯 몇 년 전 자신이 썼던 일기가 떠올랐다.


[연애 시절 입버릇처럼 ‘결혼하면 내 아침은 꼭 든든히 먹이시겠다’던 아내님은 신혼여행 후 일주일간의 조찬을 끝으로 ‘조금 더 주무시기 위해서’라며 당당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공약을 철회하셨다. 아내는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셔도 손색이 없으신 훌륭한 분이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나에게는 다섯 가지 비타민과 철분, 그리고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젖은 박스 맛의 다이어트 시리얼, 물과 우유의 중간 맛인(그래서 물과 우유를 한 번에 섭취하는 매우 효율적인 느낌이 드는) 저지방 우유가 있기 때문이다. 근래, 뉴스에 나오던 혼밥족이 멀리 있지 않다] 는 내용이었다.


승환은 불안했다. 하지만 어쨌든 오늘 그의 아내는 4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 이것도 꿈이구나! 연속으로 두 번 꿈을 꾸다니... 없던 꿈 복이 터졌군.’


승환은 이것 역시 꿈이라 확신했다.


“여보!”

“응, 일어났어?”

“이거 꿈이지?”


승환의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아뿔싸, 저 살기...’


승환은 오랜만에 큰마음 먹고 일어난 아내에게 몹쓸 말을 뱉어 버린 것이었다.


“뭐라고 했어?”


아내 손에 들린 국자에서 뜨거운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국자는 음속의 미사일처럼 승환의 이마로 날아올 준비가 된 것 같아 보였다.


“아니,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꿈을 꿨거든.”

“그래서?”

“그래서 이것도 꿈의 연장선인가 해서. 허허허... 맛있는 냄새 나네? 콩나물국이야?”

“어, 얼른 먹고 준비해.”

‘쉬바... 죽을 뻔했네.’


승환은 콩나물국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간이 많이 짰다. 그럼에도 승환은 억지 미소와 함께 아내에게 따봉을 드렸다. 그릇 가득한 콩나물국을 보며 어떻게 다 먹나 막막해하던 그는 불현듯 꿈속 노을빛 바다가 떠올랐다.


‘참 말도 안 되는 꿈이지. 빨간 바다에 하얀 나무. 근데 나무는 왜 그렇게 큰 거야? 그 시커먼 기둥은 또 뭐고. 이런 걸 개꿈이라고 하나?’


승환은 돼지가 품에 안겼느니, 커다란 복숭아를 치마로 받았느니 하는 다른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본인의 꿈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꿈은 원래 이런 건가?’


승환은 젊은 시절 읽었던 프로이트의 ‘꿈은 소원성취다’라던 것이 기억났다.


‘요새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는데 왜 그런 꿈을... 아, 어제 야근하면서 장래희망 떠올렸던 것 때문인가?’


승환은 보통사람이었다. 보통 대학, 보통 회사, 무난한 직장생활,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흔한 연애와 결혼,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스러운 딸. 그는 ‘평범함의 집합체’ 같은 사람이었다. 딱히 불만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삶은 딱 그가 원하는 정도의 삶이기도 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많이 뒤처지지도 않는 삶. 그런 중간적 위치는 승환에게 적잖은 안정감을 줬다. 그는 눈에 띄거나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덩치를 제외하고는 그를 특정할 만한 신체적 특징도 거의 없었다. 미간에 붉은 점, 그것도 희미해 거의 보이지 않는 붉은 점을 빼고는 그저 덩치 큰 평범한 아저씨였다. 그 역시 자신을 그저 그런 시시한 사람으로 여겼다.


‘소원성취. 그래, 뭐 꿈 한번 꾸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이긴 했으니까, 이제 성취된 건가? 아잇 몰라. 밥이나 먹어. 아이 짜! 소금을 왜 이렇게 많이 넣으셨을까.’


승환은 밥을 콩나물국에 말았다. 바닷물보다 짠 콩나물 국을 해치울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내 요리를 남기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염장 공격을 당했지만 그는 즐거웠다. 모두가 꾸는 꿈을 꾼 덕에 그는 보통사람에 한걸음 더 다가간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출근길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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