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비가 그쳤다. 승환과 김 과장은 진이 빠진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매시간 혈압, 심박, 체온을 확인하는 간호사들은 물론, 군인, 경찰, 공무원들이 수시로 찾아와 오늘의 상황과 요 며칠간 특별히 기억나는 일들, 특별히 먹은 음식 등에 대한 질문들을 똑같이 하고 똑같이 사라졌다. 승환은 녹음이라도 해서 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 과장도 이골이 났는지 ‘다 모여서 한 번에 오라’며 화를 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소속이, 보고체계가 다르다, 윗분들이 궁금해한다는 등의 시답잖은 핑계를 대며 같은 질문을 해댈 뿐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승환과 김 과장의 질문에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한숨 돌리고 나니 승환은 다시 아내와 딸이 걱정됐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약속했던 군인들은 그 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개놈들.’
입구에 있던 군인들은 어느 순간 제대로 된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K2 소총에는 여전히 탄창이 없었다. 승환은 총알 없는 총을 보며 탈출을 상상해봤지만, 그래도 한창때인 이십 대 군인 한 무더기를 물리치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멀리서 분주한 무전소리가 들렸다. 곧 사람들이 강당으로 몰려왔다. 승환은 귀를 기울였다. 강당 여기저기서 인기척이 들리고 있었다. 잠든 사람들이 깨어난 것이었다. 곧 군인들의 무전 소리, 잠에서 깬 이들의 하품 소리, 바쁜 발걸음 소리, 의학용어들, 윽박지르는 군인들 소리가 섞여 강당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고, 별거 아니었네. 승환아, 곧 집에 가겠다.”
김 과장이 반색하며 말했다. 승환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승환과 김 과장이 당한 대로 온갖 검사들과 고압적 질문 세례를 받았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강당에 적막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왜 자신들이 여기에 있는지 누구 하나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화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평온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승환은 알 수 없는 찜찜함을 느꼈다.
옆 천막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경상도 억양에 유난히 커다란 목소리. 승환의 옆 옆 부서인 영업 2팀 최 부장이었다.
“야, 것 참 희한하네!”
“왜 그러십니까?” 같은 팀 명 차장이 물었다.
“우에 두 번이나 같은 꿈을 꾸노 말이다.”
“무슨 꿈이신데요?”
“엄청나게 크고 멋진 나무 꿈. 세상에 그래 크고 멋진 나무는 처음 봤다! 얼마나 멋진가 계속 넋 놓고 봤잖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게 오죽했으면 내가 ‘아, 여가 천국인갑따’ 했다 아이가.”
“설마요, 부장님 같은 분이 어떻게 천국 가요. 농담입니다. 근데 혹시 그 나무 완전 순백색 아닙니까? 끝도 없는 모래 밭 위에 있고?”
영업 2팀에 박 대리가 특유의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 맞다 우에 알았노?”
“헐, 저도 같은 꿈 꿨어요!”
“맞나? 진짜 신기하네?”
“아, 그리고 멀리 불그스름한 호수 있지 않았습니까?”
“호수? 모르겠는데. 나무에 가려가 그런가 그건 못봤다. 그라고 딴 데 볼라캐도 안 움직여지던데? 고개도 안 돌아가고.”
“와... 소름. 나도 부장님이랑 너랑 같은 꿈 꾼 것 같은데! 여기 닭살 보이지? 근데 그 나무 좀 특이한 나무잖아? 그 바닷가에 살고. 예전에 동남아에서 봤던가? 어쨌든 나도 편안해서 그거 계속 넋 놓고 보고 있었잖아.” 명 차장이 말했다.
“아, 맹그로브 나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 나무 새끼 낳잖아요!”
“아, 그래, 그거. 근데 너는 무슨 나무가 새끼를 낳는다고 하냐? 말도 안되는...”
“진짠데. 그 나무가 뭐랬더라, 어쨌든 작은 묘목 같은 걸 떨어뜨려서 번식 한댔어요.”
“뭐 그런 나무가 있노? 희한하네. 자식을 윽수로 사랑하는 갑네?” 최 팀장이 말했다.
“그러게요.” 명 차장이 거들었다.
“근데 차장님 나무 잘 아시나봐요? 어떻게 맹그로브 나무인지 아셨어요? 가지만 있고 잎도 없었잖아요.” 박 대리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바닷가에 사는 나무라 신기하다고 생각했었거든. 아, 나는 바닷물 속에 있었어. 아까 네가 붉은 호수라고 했던 거기. 물이 거의 입까지 찰랑거리고 있었거든. 야,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섬뜩하네. 그 상황에서 나는 왜 넋 놓고 나무나 보고 있었을까?”
“명 차장 니 싱거우니까 간 되라고 바닷물에 담가 놨나 보네. 농담이다. 알제?”
“에이, 부장님도. 명 차장한테 그런 농담을... 차장님도 빨리 나오셨어야죠. 몸도 안 좋으신 분이. 근데 차장님, 꿈에서도 짠맛이 느껴집니까?”
“그러게. 생각해보니 그러네.”
명 차장. 승환의 머릿속에 1년 전 그 날이 빠르게 스쳤다.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던 명 차장, 날카로운 비명, 피 범벅된 사무실 바닥, 구급요원들.
명 차장은 위암이었다. 사람들은 거래처 접대를 위한 과도한 음주가 원인일 거라며 수군댔다. 다행히 초기였기에 명 차장은 수술 후 복귀할 수 있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타 부서로 옮기길 요청했지만, 회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돌아온 것은 ‘가뜩이나 병가로 회사에 손실 입힌 마당에 타 팀으로 옮겨서 거래처 네트워크 잃어버리면, 니가 책임질 거냐!’는 호통뿐이었다. 이후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여전히 팀에 남아 이전과 같은 영업 일을 했다. 승환은 회사가 야속했지만, 그뿐이었다. 자신도 같은 처지였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었다.
“햐, 생각할수록 신기하네요. 어떻게 같은 꿈을 꾸냐. 설마 뭐 집단 최면이나 무슨 병 같은 건 아니겠죠?” 명 차장이 말했다.
“뭔 재수 없는 소리고? 이래 말짱한데... 그냥 팀웍이 너무 좋아가 그런 거 아이겠나!”
“그렇죠?”
승환은 놀랐다. 그가 난생처음 꿨던 꿈도 그들과 같은 꿈이었다. 그는 낯선 사람들과 변기를 같이 쓰는 것 같은 찝찝함을 느꼈다. 그냥 우연이겠거니 넘기려 했지만 찝찝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는 혹시나 하며 김 과장에게 물었다.
“아니, 내는 그런 꿈 안 꿨는데. 근데 와?”
“그냥, 옆에 영업 2팀 사람들이 같은 꿈 꿨다고 해서요.”
“뭐? 같은 꿈? 하이고, 낮잠도 같이 자, 꿈도 같이 꿔, 아주 일심동체 나셨네!”
“그러게요. 그나저나, 과장님. 사람들도 깨어났는데 내일은 보내주겠죠?”
“안 그러겠나? 다들 말짱하다 아이가? 오늘은 밤도 늦었으니까, 내일은 보내주겠지.”
여전히 조금 찝찝했지만, 사람들이 무사히 깨어났다는 사실에 승환은 안도했다. 덕분에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가 몰려왔다.
******
승환은 자기 전 화장실을 들르기로 했다. 화장실로 간 그는 세면대 앞 손 씻는 남자를 지나 소변기로 갔다. 한숨 자고 나면 내일은 집에 가리라. 용변을 본 승환은 세면대로 향했다. 남자는 물이 틀어진 세면대 앞에 발을 모은 채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세수를 하다 굳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팔꿈치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승환은 그가 얼른 비켜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 자세로 꼼짝하지 않았다. 승환은 속으로 ‘왜 이래?’하며 세면대 앞 거울을 통해 그를 봤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가락 사이로 번쩍이는 눈이 승환과 마주쳤다. 섬찟했다. 그 순간 남자가 저음의 괴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갑작스러운 그의 기괴한 행동에 승환은 당황했다. 그는 남자를 피해 서둘러 화장실을 나왔다. 하지만 강당 안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에 꼿꼿이 선 사람들이 그 남자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떼창하듯 동시에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를 반복하고 있었다. 불쾌한 저음 덩어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낯설고 기괴한 광경이었다.
“뭔 소리고?” 김 과장이 천막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승환은 재빨리 그의 곁으로 갔다. 멀리 수진 엄마와 욕쟁이 아저씨도 당황과 두려움 섞인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혹, 나선다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떼창은 2분여가 지난 어느 순간 갑자기 멈췄다. 일순 고요해진 강당에 위태로운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얼굴을 가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곧 꼿꼿했던 자세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김 과장이 용기를 내 그들 중 한 남자에게 조심히, 천천히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김 과장이 물었다.
조용히 서 있던 남자가 김 과장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김 과장은 한 걸음 물러섰다. 그가 김 과장을 빤히 쳐다봤다.
“괜찮습니까?” 김 과장이 다시 물었다.
“뭐가요?” 그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니, 좀 전에...”
“좀 전에 뭐요?”
“좀 전까지 얼굴 가리고..”
“무슨 말이세요? 제가 뭘 했다고요. 저 아세요?”
“아니, 그건 아닌데, 좀 걱정돼가...”
“이상한 아저씨네... 괜한 사람 붙잡고 말이야.”
그는 좀 전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말투였다. 이상한 것은 그가 김 과장의 눈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하여튼 괜찮으신 거죠?”
“괜찮다니까요!”
화장실 쪽으로 사라지는 그를 뒤로하고 김 과장과 승환은 천막으로 돌아왔다.
“사람들 단체로 뭐고?”
“그러게요. 엄청 무서웠어요.”
“지금은 좀 개안아진 것 같긴한데, 별 거 아이겠지?”
“네. 일단은...”
“새끼들 뭘 잘못 먹어도 단단히 잘못 먹었는갑네!”
사람들은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승환의 불안을 더 고조시켰다. 그들을 보며 승환은 한참 동안 찝찝함, 불안함, 불쾌함을 반복적으로 느꼈다. 승환은 한 시간가량 그들을 더 지켜본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큰 변화는 없었다. 승환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담요에 누웠다. 다시 피로가 몰려왔다. 강당 천장에 머물던 그의 시야가 흐릿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