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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Apr 06. 2023

'금화규'가 아니라 '닥풀' ?

"어머나! 정말요? 요즘 정말 핫한데? 이거 예뻐지는 차로 유명하잖아요. 꽃에 콜라겐이 많아서래요. 정력에도 좋다고 텔레비전에도 나오던데... 어딘가? 그 지역에선 특용작물로 재배하는 사람도 많대요. 그런데 정말 한 번도 안 봤어요? 어떻게 꽃박사 선생님이?  꽃도 정말 예쁜데..."


5년 전엔가? 바느질공방을 하는 동생이 참여한 프리마켓에서였다. 몇 사람이 모여 이야기 나누다 우연히 어성초(약모밀) 이야기가 나왔고, "텃밭에 있으니 몇 포기 드릴게요" 했더니 '금화규'라는 걸 주겠단다. "금화규? 그게 뭔데요? 처음 들어요!" 했더니 이처럼 말한다.


금화규 여덟 포기가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하지만 이미 심을 것 모두 심어 심을 곳이 마땅찮은 상황. 하룻밤을 궁리하다 부추 두줄을 뽑아내고 심었다. 하지만 며칠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온종일 사람이 없다 보니 텃밭에 있는 것들이 종종 사라진다)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유명한 것이었어? 한눈에 알아보고 뽑아가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닥풀 꽃(2021.9) -포토샵 처리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닥풀 꽃(2022.9)



사람 마음 참 그렇다. 심을 곳이 마땅하지 않아 주겠다는데 내심 귀찮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던 것을 도둑맞고 보니 아까웠다. 존재조차 몰랐던 것이었는데 특별한 관심이 일었다. 아쉬운 마음에 검색해 봤다. 역시나 극찬하는 글들이  많았다. 글마다 '아무리 봐도 같아 보이는구먼!' 싶을 정도로 비슷한 금화규 꽃 사진을 여러 장 넣어 꽃이 눈에 콕콕 박혀 들었다. 꽃들을 보며 몇 년째 동네 입구에서 보곤 하던 꽃이란 걸, '부용꽃인가?, 새로 생긴 접시꽃인가?' 생각하며 지나치곤 했던 그 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금화규인데 예쁘죠? 누가 콜라겐이 많아 여자들에게 특히 좋다고 줬는데, 아직 먹어보진 않았어요"


어느 가을날 동네 입구 그 집 앞을 지나며 나도 모르게 눈을 박았더니 그 집 안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처럼 말한다. 그렇게 금화규란 꽃 꼬투리 하나를 얻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나 잊었다.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재작년 봄(2021년). 쑥갓을 뿌린 화분에 이제까지 전혀 본 적 없는 싹이 하나 어느 날 문득 돋았고, 호기심으로 그냥 뒀더니 폭풍성장을 한 후 동네입구에서 보곤 하던 그 꽃을 피우면서 '아하!' 했더랬다.


"금화규라는 꽃이야. 콜라겐이 많아 차로 마시면 좋다네. 예뻐지는 차로 요즘 핫하대. 혈관건강에도 좋다고 하고..."


그리고 그해 가을, 파란 하늘이 청량하던 9월 어느 날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자매들과 올케, 고향친구와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E님과 친하게 지내는 몇 사람에게 사진 몇 장씩을 뿌렸다. 금화규꽃이라고, 이렇게 누가 내게 금화규라고 알려줬던 것처럼 설레발치며.





닥풀 꽃(2022.9)
닥풀 꽃(2022.9)


지난해 여름, 당시 찍은 금화규 꽃 사진 한 장을 쓸 일이 있어 폰을 뒤졌다. 그러면서 검색하게 됐다. 왜 검색까지 했나,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아마도 금화규 꽃 이야길 쓰고 싶기도 해서 했을 것 같다) 아무튼 했었다. 우연히 보게 됐다. '금화규와 닥풀 비교'란 글을. 그리고 알게 됐다. 지난해 우리 집에 피었던, 내가 금화규로 알고 있는 그 꽃이 금화규 꽃이 아닌 닥풀 꽃이란 것을.


년 전 그 프리마켓에서 만난 한 작가가 금화규라고 준 것이 어쩌면 닥풀이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꽃에 미치기 시작한 2000년대 초 막연히 궁금해했던, 실물이 보고 싶었던(닥나무와 닥풀로 한지를 만든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웠던걸 기억해 내며) 그 닥풀 꽃이란 걸. 새삼 반가움이 일었다.


닥풀과 금화규는, 아니 닥풀 꽃과 금화규 꽃은 정말 같아 보인다. 크기도, 꽃 색깔도 같다. 피는 시기마저 비슷하다. 누구는 꽃 수술이 어떻고 암술은 어떻다, 꼬투리 색깔이 약간 다르다? 금화규 꽃이 닥풀 꽃보다 약간 작다? 등으로 구분한다는데, 꽃으로 구분이 절대 쉽지 않다. 사람들에게 어떤 식물이란 것을 알아차리게 하거나 구분하는데 가장 좋은 꽃으로는 차이점을 모르겠다.


닥풀 꽃봉오리(2022.9)






견오백(絹五百) 지천년(紙千年)이란 말이 있다. '비단은 오백 년을 가고 종이는 천년을 간다'는 뜻으로 우리 종이인 한지의 우수성을 부각할 때 주로 쓰인다. 그런데 그냥 표현에 불과하지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천년이 넘은 종이기록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66년,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 그 주인공. 751년(통일신라)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현존하는 목판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발견되기 전까진 77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가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기록)


그렇다면 한지는 무엇으로 만들기에 그처럼 놀라울까? 한지의 주재료는 닥나무다. 그래서 닥종이(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 씨가 유명했었다)로도 불린다. 그동안 우리만 닥종이로 종이를 만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 <세계테마기행>(EBS)에서 봤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닥나무로 종이를 만든단다. 닥나무로도 종이를 만든다는 것이 짧게 언급되어서 다른 나라의 닥나무로 만든 종이들이 어떤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한지가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되었는데 닥풀 덕분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지를 연구해 온 전문가들에 의하면 천년을 가는 한지의 비밀은 이 닥풀 뿌리에 있다. 닥풀 뿌리의 점액질(콜라겐), 즉 풀처럼 끈끈한 닥풀 뿌리 성분이 닥나무에서 추출한 섬유질에 들러붙어 고루 퍼지게 함으로써 뭉치게 하거나 물속에 빨리 가라앉지 않게 한다는 것, 동시에 섬유질끼리 접착이 잘 되도록 해 질좋은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풀을 쑤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렇게 한지를 만드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즉 한지를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식물이라 '닥풀'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닥나무 닥에서 따와서 이름 지은 것이다.





신사임당 초충도 일부


옛사람들은 풀이나 나무에서 채취한 것으로 약을 삼았다. 이렇다 보니 어떤 식물이나 나무 설명에 그 효능이 언급되는 것이 흔하다. 닥풀도 이렇게 아플 때 저렇게 아플 때 쓰였다, 한방에서는 황촉규, 꽃은 황촉규화, 뿌리는 황촉규근, 열매를 황촉규자로 이럴 때 저럴 때 도움된다 등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아마도 한지를 위해서 재배하는 식물만이 아닌 여염집 모퉁이에서도 몇 그루씩 자라며 눈을 즐겁게 하다가 때론 약으로 쓰이기도 했던, 그래서  친숙한 식물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많은 그런 식물인 것이다. 그래서 신사임당도 초충도 그중 한 장으로 그렸던 것 아닐까? 그것도 흔한 만큼 친숙한 개구리와 함께.


닥풀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잘 자란다. '폭풍성장'이란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여름날 어른 키만큼 자란다.  그렇게 자라 상대적으로 꽃이 많지 않은 초가을에 피어나는데, 초가을에 피기 시작해 가을 내내 필 정도로 한 포기에서 맺어 피는 꽃수가 정말 많다. 꽃만을 보고자 심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마땅한 그런 닥풀인 것이다.


다만 아쉽다면 현재 금화규와 닥풀은 가닥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엉켜있다는 것, 그래서 제대로 불러주지 못하고 있는 그런 꽃이란 것. 이참에 제대로 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닥풀 잎은 이처럼 길게 갈라져 자란다.


금화규란 이름으로 재배되는 것은 이처럼 잎이 넓다. (출처:농업회사법인 모심)


■내가 구분헤 본 닥풀과 금화규 구분은 이렇더라

닥풀 꽃과 금화규 꽃은 꽃모양만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꽃 색깔도, 크기도, 피는 시기도 같다. 그래서 웹상에 닥풀과 금화규가 혼동된 경우가 많은가 보다. 닥풀 꽃이 금화규보다 약간 작다는데 둘을 따서 나란히 놓고 봐야 가능한 구분이다. 게다가 성장 환경에 따라 꽃 크기가 달라지기에 이런 구분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닥풀을 금화규, 금화규를 닥풀로 잘못 알고 쓴 경우도 많고, 닥풀과 금화규, 황촉규화, 노랑 히비스커스를 같다로 쓴 경우도 많다.  닥풀과 금화규는 다르다. 닥풀의 다른 이름은 황촉규화. 금화규의 다른 이름은 노랑 히비스커스이다. 웹상 효능 설명도 차이가 많다.

신사임당 표충도 중에 황촉규를 그린 그림이 있다. 개구리가 있는 그림이 그것. 이 그림을 보고 접시꽃을 그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접시꽃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돼! 소리도 나올 정도로 잎모양이 전혀 아니다.(접시꽃 다른 이름이 촉규화다) 아닌가? 몇백 년전 접시꽃 잎모양이 달랐나?

현재 닥풀과 금화규를 구분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잎모양이다. 닥풀은 잎이 길게 길게 갈라져 있다. 반면 금화규는 잎이 비교적 넓은 편이다. 닥풀은 비교적 어른 키 정도로 크게 자라고 금화규는 어른 허리나 가슴높이 정도로 자라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다. 일부 지역에서 특용작물 금화규로 재배하는 것은 아욱잎처럼 잎이 넓고 아주 크게 자라지 않는 것이다.



※금화규와 닥풀을 같은 식물로 말하는 '나름 전문가'도 있다. 같은 식물이어도 환경에 따라 달리 자라기도 한다. 그래서 혹은 생각하기도 한다. 같은 식물이 우리나라에서 오래 자라며 조금 바뀐 것은 아닐까? 히비스커스란 큰 테두리 안 금화규와 황촉규(닥풀), 이렇게 사촌쯤 되는 두 식물 아닐까? 그래서 이 글은 한편 조심스럽다. 그래도 따져보면 엄연하게 다른 닥풀과 금화규를 구분해 보는 사람들이 많길 바라며. 그 계기의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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