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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Nov 27. 2020

꽉 찬 가을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겨울이 오고 있지만 선생님은 아직 가을을 보내지 못하고 있어. 겨울이 오면 정말 한 해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이 마음에 밟혀. 선생님의 올해 계획은 영어공부, 책 출간하기 그리고 너희에게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주기였어. 안타깝게 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아 겨울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어


너희의 2020년은 어땠니? 2020년을 시작하면 다짐했던 계획은 모두 실천했니? 아마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계획과 다른 1년을 보낸 친구들이 많을 거야. 코로나로 집에만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됐고, 답답한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우리 난생처음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좌충우돌 일도 많았다. 코로나 때문에 너희와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줬네. 


가을을 보내려니 너희와의 봄·여름이 떠올라.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기 전 우리 반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첫 인사하던 날이 떠올라. 어떤 친구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빨리 만나보고 싶기도 했어. 씩씩하고 예의바르게 통화하는 목소리에 너희를 만날 날이 너무 기다려지고 설렛어.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너희들 사진을 보며 얼굴을 외우던 3월의 어느 날도 떠오른다. 계속 통화도 하고 얼굴을 익히려고 해서인지 너희가 학교에 왔을 때 이름을 외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어. 그런데 다른 반 친구들 이름은 너무 안 외워지더라. 선생님 마음은 온 통 너희를 향해있나 봐.

서툰 글솜씨로 매일 글을 쓰고 읽는 선생님 때문에 종례가 한참이나 길어졌지만 불평 없이 참고 들어주던 너희에게 고마웠던 순간도 떠올라. 게다가 박수라니. 얼마나 고맙고 또 고마웠는지 몰라. 너희에게 지루한 글일 수 있겠지만 진심을 담자는 마음으로 늘 글을 썼는데 그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 행복했어. 그리고 너희에게 진정 위안이 되고 있다니, 선생님은 매일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일이 전혀 수고롭지 않게 느껴졌어. 


고맙고, 사랑해. 


몇 번의 언어보안관 이벤트 참여로 맛있는 간식타임도 가졌고 얼마 전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트리도 만들었지. 이런 활동을 할 때 마다 적극적인 참여로 선생님을 따라주는 너희에게 또 고마움을 느꼈어.  학교 축제 때는 삼삼오오 모여 음식도 만들어 먹고. 이것저것 챙겨올 것들이 많아 귀찮을 수도 있는데 불평불만 없이 따라주는 너희가 너무 예뻤어. 코로나로 모든 활동이 조심스러웠던 상황에서도 우리는 소소하게 추억을 쌓아갔구나. 그리고 선생님은 매 순간 너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행복을 선물 받았네.

가을을 보내기 싫지만 이제 겨울이 오겠다니 보내줘야 할 것 같구나. 그렇게 선생님은 너희를 키우고 보낸다. 사랑하는 우리 반 아이들아. 서툴고 부족한 선생님을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맙다. 담임으로서 역할이 끝나는 날까지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할게. 더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마지막 인사로 아껴두며 글을 마친다. 건강 조심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렴. 수고했다. 안녕.


2020.11.27. 너희가 보고 싶은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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