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학 기초
마을의 프로 농부들의 움직임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프로들은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확한 시점에 목적에 맞는 일만 별로 힘들지 않은 듯 어느새 해치우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길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 풀밭에서 땀투성이인 나를 오며 가며 바라보는 동네 프로 농부 형님들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멀리서 봐도 맨날 허둥지둥 뻘 짓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초보를 보면 짠한 마음이면서도 내심 웃음을 지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그것이 초보로서 나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잡초와 씨름하느라 들이는 공허한 시간과 작물 재배와 수확에 쓰이는 생산적인 시간과의 비율은 프로 농부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하나의 지표이다. 물론 나의 주관적 견해지만 수긍하는 이 많을 것 같다. 여기서 잡초라 함은, ‘내가 심지 않았는데 허락 없이 내 땅에 자리 잡은 풀을 총칭한 대명사’이다.
영지에 솟아나는 식물 중에 영주로서의 주관적 판정으로 잡초로 치부하는 풀 종류를 세어보니 대문에 가히 ‘잡초 식물원’ 현판을 내걸어도 되겠다.
이른 봄부터 부지런한 꽃다지,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제비꽃, 소리쟁이, 쇠비름, 쇠뜨기, 여뀌, 바랭이, 애기똥풀, 망초, 토끼풀(크로바) 강아지풀, 고들빼기, 닭의장풀(달개비), 엉겅퀴, 사위질빵, 물봉선에 돌피에다 온갖 덩굴 넝쿨~ 거침없는 환삼덩굴, 질긴 돌콩 덩굴, 슬금슬금 올라타는 박주가리, 깜찍한 유홍초 넝쿨까지 세다 보니 숨 가쁠 지경이다. 약재로 쓰이는 우슬 마저 일단 지맘대로 솟아 나와 울창해지는 놈이니 내 땅에선 잡초로 간주된다.
클 테면 어디 맘대로 커보라고 그냥 놔두면 우악스럽게 내 키를 넘겨 자라나는 미국자리공, 명아주, 미국가막사리, 달맞이꽃도 모두 나의 영지에서 확인하여 장부에 적어놓은 목록이다.
바람에 날려오거나 혹은 새가 씨를 떨어뜨려 해마다 새로 자라서 매번 뽑아내야 하는 버드나무, 뽕나무, 상수리나무 찔레 등등이 잡초보다 나를 더 귀찮게 하지만 풀이라고 부르면 억울해할 나무들은 일단 잡초 목록에서 빼 준다.
잡초- 雜(잡) 잡자가 들어간 물건이나 행동이나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은 대개 귀하게 여기지 않거나 업신여겨질 수 있는 대상이다. 여기에 더욱 미워하는 맘을 담아 천한 느낌이 강해지라고 ‘개’ 자가 추가로 붙여지는 것도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 할 수 있다.
전원에서 취미 삼아 해찰하다 보면 저절로 늘어나는 것 중 하나가 잡초학(雜草學) 지식이다. 물론 지식의 확장은 전적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덕분이다. 나는 아직 호기심 많은 학생이다. 궁금하면 흙 묻은 손으로도 당장 스마트폰을 켜서 물어보면 바로 알려주니 세상 참 좋아졌다.
이른 봄부터 여기저기 반갑게 띄엄띄엄 보이던 온갖 녹색풀들이 어느덧 대지의 색을 바꾸고 무릎 높이로 자랐나 싶은데 어느새 허리 높이로 자라 좁은 산책길을 덮어 없애고 시나브로 영지의 절반은 점령당해 있다. 그래도 연륜이 쌓여서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푸르를 것 같은 왕성한 잡초도 바람 속에 서늘한 가을이 섞여 불어오는 처서(處暑) 무렵엔 한풀 꺾여 순해진다는 걸 안다.
다시 가을이 되고 갈색으로 변한 풀들이 갈 바람에 땅에 눕는다.
몇 년 전 겨울 눈 덮인 영지를 내려다보며 눈 아래 흙 속에 꿈틀거리고 있을 수많은 뿌리와 씨앗이 궁금해졌다.
한가해진 긴 겨울밤, 잡초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쌓아 놓고 다가올 봄부터 시작될 작전의 상세 계획 수립을 위한 이론 공부에 매진했다. 이미 전투를 치르면서 알게 된 익숙해진 놈들에 더해, 어느 골짜기에서든 매복해 있다가 불시에 솟아날 미지의 잡초 군단의 이름과 외양을 하나 둘 알게 되었다.
잡초를 마주하면 깜빡 잊고 호전적으로 변하는 나에게 스스로 경고도 할 겸 실존적으로 깨닫고 익힌 잡학 노트를 다시 정리해 본다. 잡초와 친해지고 싶고, 동시에 잡초를 상대로 팔뚝의 근육량을 늘리고 싶은 의욕 넘치실 전원살이 초보들께도 도움 되실 것이다. 이미 보고 들어서 알고 계신 슬로건 이겠지만,
1. 잡초와 싸우지 말자. – 아마도 시골살이 계명의 제1조가 아닐까 한다.
“어이~ 잡초를 뽑고 있는 것 같아도 잡초가 제거되는 것은 아녀~”
‘쳇, 기껏 이른 새벽부터 이슬에 젖어가며 뽑고 있는디 뭔 맥 빠지는 말씀일까?’
그래도 노인께 예의를 다해 말대답을 해드린다.
“뿌리째 뽑아버리고 있는디 무슨 말씀이당가요?”
“허허 한 뿌리 뽑으면 땅속에서 잠자고 있는 수백 개 잡초 씨앗을 깨우고 있는 것이여~”
그렇다.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수의 잡초 씨앗이 땅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엿보고 있다.
땅속에 신묘한 타이머가 장착된 자연 시계가 있고 각각의 씨앗을 깨우는 나름의 알람이 정해져 있다.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의 순서가 정해져 있듯, 잡초도 땅 위로 출현하는 순서를 정확히 지킨다.
봄부터 피워내는 하얗고 노란 작은 들꽃들은 귀엽기조차 했다. 장마가 지나고 키높이로 자라난 우악스러운 녀석들로 변해가며 영지의 이곳저곳에 군집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보며 비로소 상대해야 할 ‘적’으로 규정했다.
삼국지를 즐겨 읽었음에도 그새 망각하고,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가기 전 지피지기(知彼知己) 해야 한다는 것을 상대가 식물이라 우습게 보고 나름 억세다고 착각한 두 팔과 낫과 예초기를 들고 물리적으로 덤볐다.
‘나, 도회적 인간’은 잡초 앞에 낫을 들고 선 초라한 시지프스적 인간일 뿐이라는 철학적 깨달음을 얻기에 팔백 평의 영지는 충분히 넓었다. 뽑고, 베고 나서 돌아서면 다시 솟아나 있는 잡초의 왕성한 에너지를 빈한한 근육으로 대들었던 첫해의 전투는 앞으로 만만치 않은 ‘강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현실을 절실히 깨닫게 했다. 그렇다고 화학적 반칙으로 적을 무찌르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아 하는 자존심은 여전했다.
잡초를 상대하는 경험이 쌓이는 햇수가 더해지면서 점차 어떤 놈이 독한 악질인지, 어떤 놈이 순하고 만만한지가 나름대로 파악되고, 연중 대결해야 할 녀석들의 출몰 시기와 도전 순서도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다. 즉 이번 절기에는 어떤 놈들이 나의 스파링 파트너로 나설지 안다. 싸우지 말자 하면서도 상대를 보면 전의가 솟구치는데, 시간 들여 분명 두들겨 패고 있다고 착각하며 먼저 기진맥진 녹다운 당한다.
2. 잡초를 관리하자. – 영지 내의 온갖 잡초들이 어느 정도 눈에 익게 되면 효율적으로 잡초를 관리하고 싶어 진다. 즉 다스릴 요령을 익히고 싶어 진다. 각각의 악성 잡초들의 폭풍 성장 시기, 씨 맺는 시기를 알고 번식이 차단되도록 일상생활 속에서 운동삼아 관리하면 사지의 수고가 줄고 눈이 훨씬 편해진다.
상대해야 할 적들 중에 그래도 만만한 놈들 그룹 중에 단연 톱은 쑥이다. 봄날 어린 쑥을 캐어 국을 끓이고 떡을 해 먹으면 얼마나 맛난가. 그다음 쑥쑥 올라와 쑥대가 자라기 시작할 땐 내가 아무리 게으른 머슴이라도 예초기로 아니면 낫으로 한 번은 베어주면 그럭저럭 관리가 된다. 밭으로 뻗지 않게 뻗어 들어오는 건방진 뿌리를 걷어주는 김매기는 보는 대로 해줘야 편하다. 놔두면 감당 못할 고역이 된다.
6,7월에 베어낸 풀은 벤 자리 또는 부득이 밭에서 뽑은 자리에 그대로 뉘어 놓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하다.
지가 얼마만큼 자라는가 보자 하고 밭구석 쑥 몇 그루(풀을 그루로 표현하는 것이 민망하지만 맘껏 자라난 실물을 보면 그루로 세어줄 만하다)를 건드리지 않고 그냥 놔두니 3m가 넘게 자란 놈이 나왔다. 망초 몇 그루도 탐구하는 자세로 관찰하였더니 거의 3m 되는 놈이 나왔다. 명아주는 2m까지 정말 나무처럼 자라났다. 퇴비장 옆에 자라난 미국 자리공을 원 없이 자라게 놔뒀더니 밑동 직경이 내 팔뚝보다 굵어졌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주인 행세하는 놈들이 대개는 우뚝 솟아 신경 쓰이게 하는 키 큰 놈들이다.
이놈들이 무릎 높이로 자라기 전에 손을 봐주는 게 나중 일을 던다는 걸 명심하지만 매번 시기를 놓친다. 큰 달맞이꽃, 망초, 미국 자리공, 미국가막사리, 명아주, 코스모스(처음엔 화초였다가 나의 영지에선 결국 잡초로 정리되었다.) 같은 키 클 녀석들은 때를 맞춰 게임하듯 상대를 해주어서 싹둑 잘라야 한다. 이놈들은 그냥 나 두고 보자 하면 한정 없이 위로 솟구친다.
공사다망하여 폭풍 성정 시기를 놓치면 쑥과 망초와 명아주가 사람 키 높이 보다 더 높게 자라면서 그것을 타고 그것들 위로 돌콩과 환삼덩굴이 올라타고 위장막을 친 군대의 진지처럼 영지의 모습이 변해간다. 이쯤 되면 아무리 게으르고 너그러운 영주라도 일대의 무허가 건달들을 일제 소탕하고 싶지만, 부디 참을 일이다. 위장 막 아래에 혹시 애써 심어 놓은, 햇볕을 받아야 사는 나무나 작물이 있으면 그 부분만 숨통을 틔워주고 일대의 일제 토벌 욕구는 잠시 멈추고 겨울 날씨에 맡기는 게 좋다.
3. 잡초를 뿌리째 뽑으려 애쓰지 마시라. 웬만하면.
대개의 잡초 씨앗이 눈뜨게 하는 요소 중 중요한 하나가 바로 ‘빛’이다. 잡초는 대부분 광발아성(光發芽性) 식물이다. 빛을 가리고 있던 잡초를 뿌리째 뽑으면서 흙을 뒤집어 땅속 깊이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씨앗들까지 지표로 옮겨주고 햇볕을 쪼이게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잡초 하나를 뽑고 수백 개의 씨앗에 기회를 주는 셈이다.
그렇다고 뿌리를 그대로 두고 풀을 베거나 뜯어내면 어떨까? 잡초는 줄기가 베어져 성장점이 없어지면 밑동에서 여러 곁싹을 틔우고 최소한의 키와 몸집으로 더 많은 씨앗을 맺으려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뽑아도 안되고 베어도 안되고 진퇴양난이다. 답은 베는 게 뽑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는 것이다. 베어내고 곁싹에서 줄기가 나와 씨앗을 맺기 전에 다시 한번 쳐내는 수밖에. 한해살이 풀뿌리가 썩으면서 점토성 토양의 알갱이화(과립화) 개선에 좋은 효과를 준다고 한다. 그래서 살다 보면 풀을 잘라주는 예초기와 저절로 친해지게 된다.
귀촌 삼 년 차에 제초용 농약 사용에 매우 저항적이었던 생각을 좀 바꾸었다. 만약 잡초를 베어내야 하는 땅이 작물을 가꾸는 밭이 아니면 일단 자란 잡초를 베어낸 후 곁싹이 나올 때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분해되는 규정에 맞는 제초제를 한번 뿌려주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
땅속 깊이 땅속줄기를 뻗어 번식하는 것들은 그야말로 강적이다. 땅속 깊숙한 뿌리 곳곳에 성장점이 있어 땅 위의 전투와는 무관하게 뻗어 나간다. 그야말로 베트콩의 땅굴 진지인 셈이다. 귀촌 첫해 이놈들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고야 말겠다고 땅속을 파 헤치다 보니 땅속줄기가 끊어지고 찢기게 되고 분리된 뿌리 하나하나에서 싹을 내고 더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헛힘만 쓴 꼴인데 억새와 쇠뜨기에 대책 없이 무식하게 달려든 실패였다.
잡초씨앗에는 불멸의 생존 능력을 갖고 있다. 한 개체에서 생산되는 씨앗의 개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하나의 잡초 개체에서 수만에서 수십만 개의 씨앗이 맺혀 땅 위에 떨어져 다음 해 그 자리에서 일제히 싹이 튼다면 지들끼리 치어서 자라지 못할 것이다. 잡초는 휴면성으로 조건이 좋아도 일시에 발아하는 경우가 없다. 언제라도 싹을 틔울 태세지만 언제 발아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오묘하게도 그 들끼리만 통하는 프로토콜이 있다. 농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농토에 언제라도 발아될 태세에 있는 잡초의 종자 수가 1평방 미터당 거의 십만 개나 된다고 한다.
잡초 한 포기 개체가 맺는 씨앗 개수를 책에서 읽고 메모했는데, 강아지풀이 무려 10000개가 넘고 냉이 38000개, 쇠비름 52000개, 명아주 72000개 란다. 믿기 어렵지만 내가 직접 세어 볼 수는 없고 저명한 식물학자의 연구 결과이니 믿는 게 쉽다. 더군다나 잡초 씨앗의 토양 속 수명이 강아지풀 20년, 명아주 40년 등등이라니 발본색원은 아예 꿈꾸지 말일이다.
그냥 버려둔 밭, 휴경지, 경사지는 8월 입추가 지나면 어느덧 잡초밭이 아니라 돌콩 넝쿨밭이 된다. 나무든 꽃대든 모든 것을 두꺼운 이불처럼 사부작사부작 덮어나간다.
농촌 마을의 빈집이 이삼 년만 돌보지 않으면 마당까지 무성한 잡초로 뒤덮이고, 폐원한 과수원의 과일나무들이 이년만 지나면 잡초 덩굴들로 덮여서 저절로 자연 고사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곧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잡초의 생명력과, 동시에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돌보는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와 허망한 일인지도 함께 깨닫게 된다.